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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미 Oct 09. 2022

소설 고라니7

미어캣

  “언니, 언니는 정말 훌륭하고 배울 점이 많은 것 같아. 나 앞으로도 언니랑 가깝게 지내고 싶어. 많이 가르쳐 주세요.”

  입사한 지 2년이 되던 해, 우리 팀에 신입으로 들어온 미어캣은 말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미어캣은 싹싹한 성격이지만 불합리한 처사에 대해서는 대놓고 의사표현을 하는 당찬 후배였다. 그렇다고 팀 내에서 문제를 일으킬 만큼 거칠게 표현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활짝 웃을 때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볼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는 귀여운 인상이 그 당찬 태도를 중화시켜 주는지도 몰랐다.     

  “언니, 여기는 어디예요?”

  내 책상에 진열해 놓은 풍경 사진을 보고 미어캣은 물었다.

  “피렌체야. 예전에 어느 소설책에서 봤는데 피렌체에서 가장 놓은 성당이 두오모 성당이래. 그 성당 꼭대기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면 주황색 지붕들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풍경을 묘사하는 장면이 소설책에 나오거든. 나도 피렌체에 가 본 적은 없으니까 실제로 어떤 풍경인지는 모르고 그냥 어렴풋이 느낌만 있었어. 그러다가 사진전에 갈 기회가 있어서 가 봤는데 거기 기념품 코너에 이 사진이 있었어. 이 사진을 보자마자 그 소설책에서 얘기한 게 바로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더라고. 그래서 사 왔어. 언젠가는 피렌체로 가서 직접 이 광경을 보고 싶어.”

  나는 부끄러웠지만 솔직하게 대답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나는 기뻤다. 그래서일까, 미어캣과 함께 있다 보면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둘이서 점심도 자주 같이 먹었고 야근할 때도 둘이 함께 했다. 어떤 때는 번화가로 나가서 같이 쇼핑을 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영화를 보기도 했다. 연애 같은 개인적인 문제가 생길 때는 상담도 해 주고 서로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면 둘이서 조촐한 기념파티를 열기도 했다. 휴가 때는 날짜를 맞춰서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내게 색다른 유대감을 가지게 했다. 회사생활은 변함없이 가혹한 나날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어캣과 보내는 시간들이 내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입사 이후 처음으로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꼈다.

    

  또다시 인사철이 되었다. 그 무렵 회사에서는 새로운 개편을 계획하고 있었다. 폭증하는 업무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서 팀을 조정하고 팀원을 재배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직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업무량이 많은 팀은 기피대상이 되었다.

  금요일이었다. 그날도 업무가 많아서 다들 정신없는 상황이었는데 오후 4시쯤에 갑자기 조정안이 발표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조정안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관심도 없었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해야 할 업무에만 전념하고 있었는데 모니터 아래 한 켠에서 메신저 대화창의 알림표시가 깜박깜박했다. 입사 동기들이 모여 있는 단체 대화방이었다. 대화가 끊기지 않는 듯 주황색은 계속해서 깜박거리면서 점멸했다. 나는 그 깜박거림을 더는 무시하지 못하고 내용을 확인하기로 했다.

  대화방에서는 조정안에 대한 대화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거기에는 새로 발표된 조정안이 파일로 첨부되어 있었다. 나는 그 파일을 열어 보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모두가 꺼리는 B팀의 명단이었다. 거기에 미어캣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나는 단체방의 대화를 처음부터 읽어 내려갔다. 몇몇 팀에서 인원을 빼서 B팀을 보강하기로 했고 우리 팀에서는 나와 미어캣이 고려 대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미어캣으로 결정되었다.

  깜짝 놀란 나는 순간 목을 빼고 건너편 자리에 있는 미어캣을 보았다. 미어캣은 열심히 모니터를 보면서 작업 중이었는데 평온한 그 모습으로 보아 아직 조정안의 내용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지금 한창 바쁘게 일하고 있는 미어캣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줘야 하나? 그런데 내가 뭐라고 설명을 할 수 있지?

  나는 다시 생각했다. 이건 결정권자가 업무 전반에 대해서 고려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걸 내가 설명할 이유는 없다. 더구나 설명을 하라고 해도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아직 팀장이 공식적으로 알리기 전인 사항이다. 내가 먼저 말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퇴근 시간 10분 전인데 사무실 분위기는 험악했다. 팀장이 팀원들에게 조정안을 전달했을 때 미어캣이 자리를 박차고 울면서 사무실을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두 명 정도가 미어캣을 위로해 주기 위해 따라 나갔고 나머지 팀원들은 이 분위기와 상관없다는 듯 하나둘 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를 흘끗 한번 보고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나갔다. 마치 내가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듯이 말이다. 나는 이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퇴근할 수가 없었다. 미어캣은 아직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지 못하고 서 있는 내 옆에서 비버가 일어서며 말했다.

  “아무튼 고라니 씨는 남게 돼서 다행이네. 신경 쓰지 말고 주말 잘 쉬고 와.”

  평소에는 내게 눈길도 주지 않는 비버였지만 이런 상황에서 내게 말을 걸어 주었다는 사실에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비버마저 퇴근해 버린 사무실에 나 혼자 남았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한참을 고민하면서 마냥 서 있다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서 사무실에서 나왔다. 복도에서 미어캣이 있을 저쪽 방향을 쳐다보다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미어캣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시간이 필요했다.

    

  심란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 아침, 평소처럼 일찍 출근한 나는 화장실에서 미어캣과 마주쳤다. 미어캣은 이미 사무실을 옮긴 상태였다. 아마도 금요일에 퇴근하기 전에 짐을 옮겼을 것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스러웠다. 미리 연습해 본 대사도 없었다. 이 순간이 내게는 갑작스런 마주침이었다. 나는 손을 씻으면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숨을 한번 크게 들이마시고 나서 내뱉는 숨에 태워 재빠르게 말했다.

  “지난주 일은 미안하게 됐어. 나 때문에 네가 힘든 곳으로 이동하게 돼서.”

  “언니, 그날은 나도 많이 힘들었는데 주말 지내면서 마음이 편해졌어. 언니가 그렇게 한 것도 아닌 걸. 나 괜찮아.”

  순간 내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아,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게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다 미어캣과 복도에서 만나면 서로 반갑게 눈인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복도 저쪽에서 걸어오는 미어캣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었는데 미어캣이 시선을 피했다. 처음에는 어쩌다가 미어캣이 얼굴을 돌리는 타이밍에 내가 손을 흔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어캣은 분명 고의로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횟수가 점차 늘어 갔다.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미어캣에게 물어보지는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입사 동기 한 명이 잠깐 보자고 연락을 했다. 잠시 머리도 식힐 겸 해서 만나러 나갔다.

  “미어캣이 네 얘기 많이 하고 다니더라. 너만 오해받고 손해 보지 말고 어떻게 좀 해 봐.”

  어느 선배가 미어캣과 내가 친하다는 걸 알고 같이 점심을 먹자고 했는데 미어캣이 그때 나에 대해서 안 좋은 말을 하면서 나랑은 같이 자리하고 싶지 않다고 했단다. 앞으로 어떤 자리를 마련하더라도 나는 빼 달라는 부탁까지 했단다.

  나는 머리가 멍했다. 이렇게 내가 말을 전해 들었을 때는 이미 회사 한 바퀴를 다 돌았다는 뜻이다. 나는 무슨 상황인지 알 수도 없었고 믿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미어캣에게 메신저를 보냈다. 그리고 어찌 된 상황인지를 물었다.

  “전부 언니 때문이야. 언니만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일도 없었어. 사실 나이 빼면 내가 언니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어. 내가 한 달 동안 매일 밤 울면서 기도했어, 언니가 더 심한 고통을 겪게 해 달라고. 나는 절대 용서 못 해. 용서 안 할 거야.”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게 왜 나 때문이란 말인가? 지난번에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얘기하고 난 이후로 계속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내가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란 말인가? 이게 도대체 뭐지? 미어캣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나? 업무에서도 내가 자신보다 못하다고 평가하고 있었단 말인가?

  나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치닫고 있었다. 내 존재에 대한 좌절과 분노, 이런 비슷한 상황을 나는 이미 경험했었다. 나는 그대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어차피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는 애초부터 혼자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마음에 빗장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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