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아도 돼.(무능력한 상사 밑에서)
(2)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서 ‘그래, 잊어버리자.’ 했다.
세 살 때 일도 기억하는 큰언니를 보며 “나는 기억력이 참 나쁜가 봐. 어릴 때 기억이 하나도 안 나잖아?”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실 꺼내고 싶지 않아서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묻어 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묻고 묻다 보면 정말 잊어버릴 수 있다고 말이다. 그렇게 스스로 기억력이 나쁜 사람이라고 믿고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묻고, 묻고 또 묻고….
그러다 보니 이젠 더 이상 묻을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이젠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괴롭히고 있다. 여태 잘 묻었으면서, 잊었다고 스스로 망각하며 살아놓고 이젠 그것조차 되지 않아 모르는 새 우울증은 왔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 기억들이 산사태처럼 무너졌다.
그로 인해 땅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표면 위로 올라오듯 그런 불안한 기억들은 태풍이 되어 몰아치고 있다.
괜찮아…. 나는 괜찮다….
왜 그렇게 힘들어해? 그냥 잊어버려. 그래야 편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그렇게 태연한 척을 하며 어른인 척했다.
마음이 쓰레기로 뒤덮여있다.
소각되지도, 썩지도 않고 그렇게 버려지기만 했다.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나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모른다. 인정하기 두렵다.
그렇게 인정하고 나를 돌보는 것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를 생각하는 것이 가장 두렵다. 사실 내가 나를 잘 모르는 걸 들킬까 봐. 나를 꽁꽁 더 숨겼다.
묻어두기만 했던 ‘내가’ 화가 났나 보다.
괜찮지 않다고 나를 봐달라고 제발 나 좀 보라고 비로소 마음이 아파 몸이 아파지고 나서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두려웠던 마음을 이제는 모르는 척할 수가 없다.
괜찮지 않다. 인정해야 한다.
불과 몇 주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게 느껴진다.
혼란스럽다.
과거의 내가 나인지, 지금의 내가 나인지,
변해버린 내가 너무 낯설다.
과거의 내가. 내가 아니라면 지금까지 해온 생각, 행동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지금의 나는, 내가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