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후 2달, 현재까지의 소회
3월 16일 첫 스터디 모임을 하고 3월 18일에 UWorld를 결제, 보기 시작했으니 본격적으로 USMLE 공부를 시작한 지 이제 딱 2달이 지났다.
절망했다가 용기를 내보았다가 해볼 만한가 싶다가 다시 절망하는 루프를 끊임없이 돌리며 지내고 있다. 어제는 절망 모드, 그리고 오늘은 다시 시작해 보는 모드이다.
나는 2007년에 의대를 졸업했다. 졸업 후 쉬지 않고 트레이닝을 받았고 트레이닝을 마치고도 계속 학교에 있으며 끊임없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그래도 뭔가 조금은 있을 줄 알았는데, USMLE 공부를 시작해 보니 nothing, 내 머릿속에는 그냥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완전히 인적이 드문 험하디 험한 첩첩산중에 길을 내는 과정이었다.
공부방법조차도 감을 잡지 못해 초반의 삽질을 고쳐가고 또 고쳐가는 연속이다. 현재의 공부 방법도 또 다른 삽질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스터디 멤버들의 존재, 그리고 자신이 가진 모든 노하우를 모두 전수하고 이끌어주고자 하는 USMLE 선배들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근근이 하루를 걸어가고 있다.
나의 첫 번째 삽질은 first aid를 biochemistry chapter부터 순서대로 정독했던 것이었다.
작년 12월, first aid를 구입하고 순서대로 보기 시작했다. Uworld가 족보라는 얘기는 어디에선가 들었으나 그건 Q(question) bank, 즉 문제은행이니까 문제를 풀려면 기본적인 내용은 알아야 하지 않나 싶어서였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느릿느릿 공부를 했는데, 진도도 문제였지만 본 내용이 그다음 날만 되어도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3월이 될 때까지 biochemistry도 채 끝내지 못하였다. 그리고 아마 공부한 내용의 문제를 풀었다면 정답률이 20%도 되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방법은 정말 피해야 할 최악의 공부법이다.
스터디를 만나고 UWorld를 시작하다.
내가 fisrt aid 생화학의 늪에 빠져 허우적 대고 있던 2월 초, 대한민국에 참담한 사건이 터진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의지할 동료를 얻게 된다. 일반적으로 내 나이에 USMLE를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쓸데없는 에너지와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런데 2024년 2월 이후, 그 불가능에 가까운 일에 희망을 가져야만 일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운명처럼 스터디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무슨 용기였는지 고민도 없이 연락을 드렸다. 그것 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생각 없이도 알 수 있었나 보다. 연락을 드리고 바로 그 주 토요일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우리 모임은 OB(old boy)로만 이루어져 있다. 졸업한지 20년 가까이 된. 처음 만났지만 몇 년 본 사람들 같았다. 10월 17일에 꼭 시험을 보기로 하고, 반드시 UWorld로 공부해야 한다는 주옥같은 가르침을 얻고 귀가하였다. 그날로 Uworld 1년 구독료 $559를 결제하고 바로 문제풀이를 시작했다.
나의 두 번째 삽질은 UWorld를 '문제-답'만 수박 겉핥기로 본 것이다.
아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1독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정말 모든 것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느낌이었다. 모든 문제는 case 중심이었는데 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는 것은 차치하고 환자에 대한 기술이 잘 읽히지도 않았다. 보기 역시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고 다 간접적으로 describe 되어 있어서 아는 것도 다 틀렸다. 일하는 틈틈이 문제를 보고 있으면 저녁이 되어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2-3주 이상 두통에 시달렸던 것 같다. 조급한 성격에 일단 대충이라도 한 번은 후딱 봐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 이런 문제가 있구나'하고 구경하는 식으로 보고 넘어갔다. 그리고 구경한 내용을 first aid에서 찾아서 밑줄을 긋고 내용을 보충해 메모하였다. first aid에 찾아 적는 과정이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반면 머릿속에 하나도 입력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시간을 들여 구경만 한 것이다. 이것이 무려 한 달을 지속한 나의 두 번째 삽질이었다.
Eirene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공부 방법을 한 번 더 바꾼다.
스터디를 구성할 때부터 우리는 YOG가 높았기에(나이가 많고 졸업한 지 오래됨) 우리를 이끌어 줄 멘토를 구하자고 했었다. 그러던 와중에 u-korea에서 활발히 활동하시고 개인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계시는 Eirene 선생님을 섭외하였고, 충남에서 직접 서울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방문해 주시는 열정을 보여주셨다.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지만 구경만 하는 식의 공부가 완전히 삽질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문제를 꼼꼼하게 읽고 선택지를 고르고, 내가 정답을 맞혔든 맞추지 못했든 submission 후에 나타나는 Uworld의 해결을 한 글자도 빼놓지 않고 꼼꼼히 읽어야 하는 것이었다. 특히 'educational objective'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읽었어야 했다. 오히려 시간을 들여 first aid를 대조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었다. 결국 4월 11일 이후에서야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격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3월 처음 시작할 때에 과연 내가 UWorld의 해설을 꼼꼼히 읽을 상태였나 싶다. 졸업한 뒤 15년 이상, 문제를 출제해보기만 했지 문제를 푸는 의대공부를 한 적이 없고 더군다나 영어로 된 문제는 풀어본 적도 없는 비루한 상태였다. 삽질을 하는 1달 사이에 더 이상 두통이 찾아오지 않고도 UWorld 문제를 읽는 것이 익숙해졌다. 첩첩산중에 나뭇가지 사이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한 틈이 조금 생긴 정도라 할 수 있을까. 아마도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UWorld 해설을 꼼꼼히 읽는 방법으로 공부한 지 1달이 되었다. 수치 상으로는 0.4독 정도 했다. 공부한 직후에는 다 알 것 같아도 며칠이 지나면 다시 새로운 상태가 되는 것은 또 다른 절망을 안긴다. 이렇게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과연 될까? 지치는 날에는 해설을 살짝살짝 선택적으로 읽고 건너뛰기도 하고, first aid를 다시 붙잡기도 하고, 그래도 1독을 빨리 해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급해지기도 한다. 익숙해지면 속도가 더 붙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제자리걸음이다. 10월에 과연 시험을 신청해도 되나 싶다. 아직은 모든 것이 미궁이다.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하루 쉬지 않고 타이어를 밀어 본다.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아도 되든 안되든 민다. 불가능할지 몰라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 희망으로 내 하루가 더 빛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