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물리적, 심리적 경계 안에서 살아간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나의 physical boundary를 벗어나는 쾌감을 느꼈던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이다.
조별활동으로 친구들과 동네 소방서를 방문하는 것이 숙제였다. 5-6명의 친구들과 모여 열심히 소방서를 찾았는데,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대로를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소방서가 보이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잠원동성당 인근부터 한강아파트까지 소방서를 찾으며 걷던 우리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한남대교 남단을 도보로 가로질러 압구정까지 이르게 된다. 그때는 현재의 길과는 조금 달랐지만 어쨌든 건널목과 신호등도 없었고 경부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끊임없이 진입하는 차들을 눈치껏 피해 가며 10살 아이들이 길을 건너는, 지금 생각하면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 우리가 아주 신중하고 조심했기 때문에 실제로 아주 위험하지는 않았다. 와, 우리가 걸어서 여기까지 왔어! 다들 아주 대단한 모험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우리는 다시 가던 길로 돌아왔다.
그때까지의 나의 세계는 한남대교의 서쪽, 잠원동에 국한되어 있었다. 신동국민학교와 우리 집 한신아파트를 왔다 갔다 하며 대림상가에 있는 학원과 잠원역 근처 덤블링을 타러 다니고 주말이면 잠원성당에 다니던 일상이었다. 그날의 나들이 이후 나는 알을 깨고 나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물리적인 경계를 한 번 깨트리고 자유로움을 느낀 것이다. 아마 그날 이후 나의 세계가 급성장했을 것이다.
이후로도 나는 점차 자신의 물리적인 경계를 점점 넓혀갔을 것이다. 나는 서울시 지도책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모든 지역을 자세히 보고 또 보았다. 대학교에 가고 재수를 하며 평소에 절대 가볼 일이 없는, 지도에서만 봐왔던 곳들을 새로 가보는 것이 20대 시절의 큰 즐거움이었다.
직장을 다니며 세계 이곳저곳 다닐 일이 많아졌고 한국에서만 살았던 내가 연수를 기회로 전혀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1년을 거주하기도 했다. 이제는 어디를 가도 새로운 공간이 주는 설렘과 벅찬 행복을 더 이상 느끼기 힘들다. 한남대교만 가로질러 가도 가슴이 쿵쾅대고 벅차오르던 나였는데, 비행기를 타는 것이 기대보다는 불편으로 다가오는 때가 나에게도 와버렸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그런 것일까. 어떤 자극에도 감정이 무뎌지는 것. 그렇기에 점점 더 어릴 때, 순수했던 시절의 설레고 행복했던 기억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이 무뎌짐은 세월의 시간에 비례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극의 빈도나 양에 비례하는 것일까.
우리는 또한 심리적인 경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간의 세월이 물리적인 경계를 허물어가는 과정이었다면, 심리적인 경계는 그 반대 같다. 마음의 경계는 점점 내 안으로 파고들어 나이를 먹으며 오히려 도저히 못하는 것, 못 참겠는 것이 늘어간다. 편견과 아집이 나이를 먹으며 살아온 세월만큼 늘어간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렵다.
지금 안 하면 이제 다시는 못한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로 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살아볼 결심을 했다. 그 과정이 버거울 것이고 정답은 없기에 꼭 그래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 편안함에 안주하고 내 경계를 좁혀가는 것보다는 그 자연스러운 노화의 과정에 최대한 반항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