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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Oct 25. 2024

믿음의 경계에서 배운 것들

내가 사람을 잘 믿지 못하게 된 이유는 단순한 의심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겪은 선택들과 그로 인해 마주한 결과들이 쌓여 만들어진, 나만의 이야기다.


대학교 시절, 두 번이나 룸메이트에게 방을 도둑맞았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체포된 건 내 룸메이트였고, 나는 충격에 휩싸였다.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잘 아는 교회 어른에게 전화했지만, 돌아온 답은 “그러게 왜 신고했어?”라는 말뿐이었다. 옳다고 믿었던 내 결정은 나에게 실망감만 남겼다. 그때 나는 세상이 항상 내가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는 걸 일찍 배웠다. 그때부터 나는 단단해지기로 결심했다.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도 결코 자연스러운 헤어짐이 아니었다. 그와의 관계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관계의 영원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또 다른 관계에서 나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라는 걸 배웠다. 사람은 상대가 보여주는 만큼만 믿을 수 있다는 것도.


믿었던 친구 역시 내가 가장 필요할 때는 곁에 없었다. 내가 거리를 두려 할 때면 다시 다가왔고, 나를 위하는 듯했지만, 그 깊이는 언제나 얕았다. 진심 어린 응원은커녕, 오히려 나와 비교하며 나의 성과에 무관심했던 그 모습들이 이제야 선명하게 다가온다.


이 모든 경험이 나를 조금 더 성숙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사람을 더 신중히 대하게 되었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상처는 피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상처를 통해 나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왔다. 사람을 믿는다는 건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은, 우리의 경험이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삶에서 겪는 아픔은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를 연마하는 도구일 뿐이다. 내 상처들은 내 일부가 되었지만, 그 상처들을 통해 나는 조용한 강인함을 배웠고,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다만, 가끔은 그런 상처들이 전혀 없었던 사람처럼, 더 명랑하고 가볍게 타인을 대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처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면, 관계 속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그걸 바라는 나를 보면 마음이 참 복잡하다.


어쩌면, 내가 가장 신뢰하지 못하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상처받은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 상처 속에서 내렸던 결정들이 틀렸다고 느꼈던 순간들, 그때의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이 남아, 다시는 그런 상처를 받지 않으려 방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불신은 결국, 내가 다시 상처받았을 때 충분히 견딜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다시 나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내 선택과 경험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자신을 지키며 견뎌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작은 결정들 속에서 내가 내린 판단을 존중하고, 그로 인해 얻는 성취감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실망하거나 상처받더라도 그 감정을 외면하지 않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가 다시 상처를 견디고 회복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완벽한 신뢰나 완벽한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 과정 속에서 조금씩 용기를 내는 것이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더라도, 나는 그 속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중요한 건, 그 걸음을 계속해서 내딛는 나 자신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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