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가끔 정말 숨고 싶을 때가 있다.
가장 낮은 기분으로
가장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가라앉을 때,
그 바닥에 있는 나 자신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
꼭 그럴 때 나를 발견하는 사람들은
하필 가장 큰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슬프게도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은 엄마였다.
휴대폰 화면에 ‘엄마’라는 두 글자가 뜨면
전화를 받기도 전부터 눈시울이 붉어진다.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는다.
허공에 수없이 ‘여보세요’라며 연습도 해본다.
내 마음을 다 알아줬으면 하는 절대적인 존재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사랑해서
내 그늘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나이를 먹으면서 깨닫게 된 건 엄마라는 존재는
나의 고통에 더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이제는 마음껏 울 수 없다.
눈물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떨리는 목소리를 붙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일부러 미소를 지으면 밝은 목소리가 나올까
억지로 입꼬리도 올려본다.
엄마라는 존재는 꼭 그 찰나의 떨림을 알아챈다.
엄마의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
‘응, 응, 그래- 알겠어’
짧은 대화만 오간다.
말이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쏟아져 내릴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냉정함을 찾는다.
의연하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마음을 가다듬어본다.
허공에 시선을 대고
대화 사이에 적당한 쉼표를 넣으며 짧은 대답만 반복한다.
이내 어색하고 빠르게 전화를 끊는다.
참았던 것들이 터진다.
모른 척했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전화를 끊은 뒤 마음에 가득 남는다.
모든 마음이 사방으로 흔들린다.
전화로는 차마 전할 수 없었던 마음이
뒤이어 몇 글자로 전해진다.
‘힘들지?’ ‘잘하고 있어’ ‘우리 딸 멋져’
간신히 버티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하염없이 무너진다.
나의 슬픔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슬픔이
된 것 같아 또 한 번 더 깊게 무너진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을 들켜버렸다.
마음에 흉이 진다.
힘주고 있던 것들이 무색 해질 정도로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아래로 무너지고 싶어 진다.
내가 구태여 말하지 않는 구석까지
모두 아는 이들이 건네는 큰 마음은
가끔 그 위로 무너지고 싶게 만든다.
절벽 아래로 추락한 마음이 사랑 위에 안착한다.
무너져도 괜찮을 것만 같다.
눈물을 참으며 지켜오던 마음이
납작하게 터져버렸지만 되려 가볍다.
안도감이 몰려온다.
나를 울리는 사람, 동시에 나를 웃게 만드는 사람.
나의 구원자. 나의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