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강제 퇴사(정리 해고)를 한 이후 내내 임시직과 계약직을 전전하면서 근근이 먹고는 살았다. 그래서 25년도, 못해도 3월에는 이전 해에 그래왔던 것처럼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몇 개월짜리 알바라도 할 줄 알았건만, 겨울은 날씨뿐만 아니라 일자리도 꽁꽁 얼어붙게 만들어 나를 힘들게 했다.
정 안되면 생활비가 다 떨어질 즈음에는 어디라도 되겠지(왜냐면 그런 걱정을 하는 중에도 나는 열심히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직무계획서 등을 열심히 쓰고 있었으므로)라는 막연한 기대와 근거 없는 희망으로 불안한 겨울을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다.
구직 사이트에서는 내가 지원한 회사의 지원자 현황을 볼 수 있는데, 지원자들의 연령, 학력, 경력 이 세 가지 비율을 볼 수 있었다. 사십 대들의 지원자 비율이 높은 회사에는 지원을 했지만, 사십 대 그래프가 너무 낮거나 보이지 않는 회사에는 차츰 지원하기를 망설였다.
연령 구분을 명시하는 것이 위법이라 대놓고 '20대 환영', '30대 후반까지만 지원 가능'과 같은 차별성 문구를 쓸 수는 없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엄연히 내가 지원할 수 있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는 것도 늦은 나이에 알게 되었다.
어제는 삼 개월을 지원서만 써대다 기적같이 합격한 곳에서의 첫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나를 뽑아 준 회사는 대기업의 파트너사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해당 업계에서는 경쟁자가 없다 보아도 무방한 독점적인 입지가 있는 회사였다. 내게 있어 이쪽 업계가 낯설긴 했지만, 기존에 해오던 깨알 같은 지식과 잔기술 엮어 꿰는 '본질'은 다르지 않았으므로 여러 명의 후보자들 중 내가 선택되었다.(비교적 한 곳에서 길게 일했던 경력과 연봉을 낮추고 나를 헐값에 팔았으므로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아무튼 며칠을 기다려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백화점 중저가 브랜드에서 산 밝은 색 재킷과 검은색 슬랙스를 입고 신발은 약간 매니시한 스타일의 검은 로퍼를 신었다.
일 하는 곳은 집에서 빠르면 한 시간 십 분에서 늦으면 한 시간 이십 분 정도가 걸렸다. 교통편도 지하철과 버스를 각각 한 번씩 갈아타고 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동안 나는 직장 근처에 집을 구해 전세나 월세로 살았기 때문에 이렇게 긴 출퇴근 시간을 가져본 적은 없었는데, 업무나 내 포지션이 안정적이고 동료들도 좋다면 어떻게든 적응해 보고자 단단히 마음을 먹고 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