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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Jul 20. 2024

나는 악필이다

일상과 사색

나는 악필이다. 평생 글씨를 잘 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어려서부터 악필이었던 것 같다.


  혹자는 '천재는 악필이다.'라고 하던데 아이큐 108인 나는 천재가 아니므로 그냥 글씨 못쓰는 아이였고, 그대로 큰 어른이다.


  요즘은 손글씨를 거의 안 쓰는 시대지만, 나는 업무수첩에 그날의 계획을 적을 때, 그리고 회의 시 화이트보드에 글을 쓰는 순간이 유일하다시피 손글씨를 쓰는 때였다. 입사 이래로 거의 매일 업무수첩을 써왔고, 일기처럼 모두 보관하고 있어 짐정리할 때 볼 때면, 초기 업무수첩은 읽을 수 있는 수준인데, 그것도 악필이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최근에는 그 업무수첩조차 자주 쓰지 않는 데다, 미팅도 웹미팅을 많이 하다 보니 타이핑으로 대체면서 손글씨를 쓸 일이 거의 없어졌다.

나는 천재도 아닌 주제에 왜 악필일까?


  그 이유는 아마도 급한 성격 때문이 아닌가 싶다. 급한 성격 탓에 생각에 손의 속도를 맞추려다 보니 글씨가 날아가게 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는 급한 성격이 아니었어서 못쓴 글씨이긴 해도 남들이 읽을 수는 있었다. 일례로 군대에서는 차트를 쓸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글씨를 그리다시피 했어서 차트글씨도 잘 쓴다고 칭찬을 받았었다. 그런데, 회사생활하면서 성격이 급해져서 (그렇다. 나의 안 좋은 것은 회사 탓이다!! 그냥 그렇다고 하자!), 업무수첩을 연도별로 보면 한 10년 전부터 쓴 업무수첩부터는 암호 같은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해서 지금 내가 봐도 뭐라고 쓴 건지 모르는 글들이 있을 정도다. 그나마 업무수첩은 나 혼자 보니까 다행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일이다. 스케치를 하려고 만년필과 멋진 색상의 잉크를 구매했었는데, 마침 지인들에게 선물을 보낼 일이 있어서 새로 산 만년필과 잉크로 짧은 메모형식의 손 편지를 쓰는 게 좋겠다 생각했다.

만년필 자랑! 하!하!

  그런데, 쓰는 동안 내 마음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닌가! 글씨를 막 써버릇하다가 남들이 알아볼 정도로 쓰려니, 쉬운 글자도 자꾸 틀리고, 다시 적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처음에 'OOO님에게'부터 첫 문장까지 천천히 적어서 그나마 나은데 문장이 뒤로 갈수록 점점 글씨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거다. 그렇지 않아도 짧은 문장을 겨우겨우 마무리하고는

"쳇! 역시 손 편지 같은 건 쓰는 게 아냐..."

라고 혼자 궁시렁 댄다.


  악필을 벗어나려면 캘리그래피를 하듯 마음을 다스려야 할 텐데, 그건 성격상 못하겠으니...'에라 모르겠다. 타이핑이나 하련다!' 하고는 글씨 쓰기를 접는 오영 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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