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는 짧은 정적이 흐른다. 병실에는 열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데다, 장비까지 들어와 있어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였던 곳이지만, 일시에 모두들 대화가 중단된 것이다. 침대에는 현우라고 불리는 남자가 누워있고, 그 옆에는 의료기기와 함께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 장비들이 연결되어 있다. 무슨 선들이 어찌나 복잡하게 널브러져 있는지 여기가 병실인지 실험실인지도 구분이 안될 정도다.
커튼을 친 창 밖에는 햇살이 비추다가 구름이 지나가는지 살짝 어두워지면서 누워 있는 현우의 얼굴의 명암이 변화하고 있지만, 그래도 비는 오지 않으니 다행이다 싶은 여전히 더운 8월 말의 오후다.병실의 천장에는 '쉬이익~'하는 에어컨의 바람 소리만 나직하게 들리는 것 외에, 눈을 감고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도, 그 옆에서 남편의 왼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채 긴장한 표정이 얼굴에 가득한 민서도, 그리고 그 옆의 담당의사와 소울뎁에서 나온 사람들까지 모두 일시에 말이 사라진 것이다.
"현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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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서야 왜? 왜 그렇게 다급하게 불러?"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의 입에는 호흡기가 끼워져 있지만, 옆에 있던 장비의 스피커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아.... 현우 씨!!"
흐흑하고 갑자기 눈물을 쏟는 민서다. 두 손은 떨고 있는 채로....
초저녁이 된 병실에는 이제 민서와 침대에 누워있는 현우, 그리고 옆의 장비만이 남아 있지만, 병실 밖에서 들으면 여느 가정집의 거실인 것 마냥, 그리고 그곳에서 들을 법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다.
"있잖아, 현우 씨, 지난겨울에 말야... 집에서 병원으로 오는 길에 재미있는 커플을 봤지 뭐야. 횡단보도에서였는데, 뭐가 그리 심각한지 남자는 꽃을 든 손을 내려놓고는 말야, 엄청 진지한 거 아니겠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 두 사람 사이에..."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뭔가 실수했는지 엄청 표정이 안 좋고, 여자는 팔짱을 끼고서는 건물 광고판을 쳐다보는데... 거기에 지나가던 길냥이가 남자 다리에 머리를 쓸어대고 있는 거야... 꺄하하아... 풍경이 얼마나 이상하던지... "
"웃기는 상황이긴 하네... 사진이라도 찍었다면 나도 볼 수 있었을 텐데... 재미있는 장면이었겠다... "
"그러게 말야, 얼마나 상황이 이상하던지 그 와중에 고양이는 계속 몸을 비비고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쳐다보면서 울더라구... 남자는 진땀 빼는 표정이었는데 말야.... "
그런 소소한 대화는 아까 오후에 병실에서 의사와 소울뎁 사람들이 나간 후 몇 시간이고 이어지고 있던 중이다.
얼마만의 대화인가!
그렇지 않아도 1년 넘게 하고 싶던 이야기가 쌓이고 쌓였던 민서인데, 그리고 그걸 항상 들어주고 같이 웃던 현우인데. 상대성 이론이라고 했나? 시계의 시간은 벌써 몇 시간이고 흘러 밤 10시를 넘겼지만, 민서에게는 10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코마상태로 누워있는 남편과의 대화는 그렇게 시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고, 민서의 표정은 어느샌가 작년 이맘때 즈음의 웃음기가 사라지지 않는 그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도 남편과의 대화가 이어지던 중, 간호사가 찾아와 말한다.
"지현우 씨 보호자님, 담당선생님께서 잠시 뵙자고 하네요."
남편과 대화를 하던 민서는 잠시 멈칫하고는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아... 네... 현우 씨 잠깐만 나 선생님 좀 만나고 올게. 쉬고 있어."
"그래, 내 걱정말고 다녀와, 민서야."
병실 밖을 나가니, 담당의사 선생님과 그때 그 소울뎁의 사람들, 이민성 상무와 김책임이라는 엔지니어 그리고 몇 명이 민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자는 말에, 교수 회의실로 장소를 옮겨 대화가 이어진다.
"주민서 님, 잘 지내셨어요? 어떻게... 표정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이민성 상무가 먼저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아... 네... 그런가요? 네,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요..."
"남편분과는 대화 많이 나누고 계시죠? 역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좋긴 좋은 것 같습니다. 하하하"
아, 맞다. 깜박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난 민서다. 남편의 의식을 다운로드하고 학습한 후, 대화를 나누게 될 때에는 모든 대화가 소울뎁의 서버인가에 기록된다고 했다. 그들도 이번 실험을 확인해야 하니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며칠간 나눈 대화가 혹시 사생활 관련이 있었나 하고 갑자기 조심스러워지는 민서다. 하지만, 남편의 의식을 다운로드하고 학습하는 내용에 대해서 합의했을 때에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했던지라 그것으로 뭐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 어쩌랴, 이미 며칠간 별별 이야기를 다 해버렸는걸...
"아... 네... 덕분에 오랜만에 남편과 많이 대화했어요...."
"어떠세요? 대화를 해보시니?" 의사가 중간에 끼어들어 물어본다.
"아... 그렇게 여쭙기 전에 뵙자고 한 목적을 먼저 말씀드렸어야 하는데, 주민서 님의 밝아진 표정을 보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엇갈리고 말았네요. 오늘 미팅 목적부터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여기 김책임님이 설명드릴 거예요."
"안녕하셨어요? 뭐, 지난번에 잠시 설명드렸지만 그때에는 짧게 설명드렸었어서... 지난번에 2일에 한 번씩 미팅을 한다고 말씀드렸다시피, 앞으로도 계속 상호 임상결과에 대해 저 또는 저희 팀 인원과 이야기를 하시게 될 텐데요, 오늘은 세 가지 내용 말씀드리려고 찾아왔습니다.
먼저, 남편분과 대화를 나누신 결과에 대한 인터뷰, 그러니까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한 내용을 좀 나눌 거고요, 두 번째는 남편분 옆에 있는 장비를 휴대기기로 변경한다는 내용, 세 번째는 이게 젤 중요한데요, 변경될 휴대장비에는 카메라가 부착되어 있다는 내용 말씀드릴 겁니다. "
"카메라요? CCTV 같은 건가요?" 흠칫, 놀라는 민서다.
"아, 그런 건 아니고요, 세 번째부터 간략히 설명드리면 지금까지는 남편분의 사고 전 기억을 다운로드한 것을 기반으로 학습한 내용으로 대화를 하신 것이었어요. 물론 주민서 님 대화를 인식하고 지현우 님의 사고를 학습한 결과로 평소 생각과 같이 대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휴대기기, 저희는 이걸 마인드로그(Mindlogue)라고 부르는데요, 여기에 있는 카메라는 기존의 기억에 더해 주변 환경과 상대방에 대한 시각적 인식과 학습을 통해 더 심화된 인식 향상을 하기 위함입니다. 다른 말로 남편분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될 겁니다. 이제부터는 마이크 그러니까 귀로 들은 것과 눈으로 본 것들에 대해 인지하고 기억하고 사고한 결과로 대화를 하게 되는 거죠. 좀 어렵죠? 더 쉽게 말하면.. "
"아뇨, 알아들었어요. 지금까지는 과거 현우 씨의 의식만 있던 거라면, 이제는 보고 듣고 모두 한다는 거네요. "
"네, 정확합니다. 이제 남편분은 민서 씨의 표정도, 날씨도, 그리고 티비도 같이 보면서 생활하시게 되는 거예요. "
"혹시, 이것도 소울뎁에 모두 기록되는 건가요?"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사생활도 노출되니 대화나 장소가 더 민감해질 수밖에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문득 지난번에 사인했던 문서에 개인정보 사용에 대한 내용도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김책임 옆에 있던, 지난번 그 변호사라는 여자가 말한다.
"주민서 님, 그 내용은 지난번 처음 임상에 합의하실 때 설명드렸고, 사인하셨는데요... "
"네, 그건 기억났어요. 아... 뭐라 말할지... "
"그렇지만, 많이 걱정하실 필요는 없어요. 내용을 자세히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계약서의 내용을 요약해 드리면, 저희도 임상을 통해 데이터 확보를 해야 하니까, 데이터 취합을 하는 것은 맞지만 랩, 즉 저희 회사밖으로의 유출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내용은 계약서에도 명기되어이고, 순수 연구개발 활용에만 사용되고 다른 활용은 없도록 하고 있어요. 참고로 나누신 대화나 화면에 대한 기록은 저희 회사 내 제한된 인원만 열람하지만 실제 인공지능이 학습한 내용은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기에 저희도 상세 내용을 취급하지는 않습니다. 일종의 중단 스위치도 있어서, 잠시 보고 듣는 것을 멈출 수도 있고요.
덧붙여 말씀드리면, 임상이 좀 더 진행된 후 이야기입니다만, 사업화 될 버전에서는 흐음... 전문용어로는 '스탠드 얼론(stand-alone) 방식이라고 하는데, 향후에는 별도로 저희 회사와의 통신은 하지 않고도 마인드로그 스스로 학습하고 스스로 저장하고 동작하게 되어있어요. 물론 추가 학습이 필요할 경우, 고객의 동의를 받고 진행될 건데, 지금은 임상단계 실험이라서 이것까지 지난번 계약에는 포함되어 있어요.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음... 저도 계약서 내용을 다시 꼼꼼히 살펴볼게요. 조금 조심스러워져서요... 하지만, 남편과 제가 같은 것을 보고,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하니, 좋네요. 현우 씨가 나를 볼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다시 이민성 상무가 대화에 참여하고는,
"아무튼 앞서 김책임이 설명드린 것처럼, 몇 가지 인터뷰를 좀 기록하고, 새로운 장비도 설명드리겠습니다.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히 체크하고 들어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두 시간 넘게 지난 것 같다.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인터뷰와 새로운 장비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나니, 피곤해지기도 하고, 어질어질하기도 한 민서다.
병실로 돌아온민서는 속으로 걱정이 생기기도 했지만, 어쩌랴 싶은 마음도 생겼다. 이미 계약서에는 사인을 한 걸. 그리고 이미 남편과는 며칠 동안 대화도 많이 했고,소울뎁에서도 유출이 될 경우 그들 책임이 있다는 것을 계약서에 넣었다고 하니, 더 이상 걱정은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그리고, 이미 남편과는 너무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그리고 이제는 서로를 보면서, 세상을 보면서 밖에서도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데 더 좋지 않겠나 생각하니 앞서의 걱정이 조금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어차피 이미 시작한 걸... 현우 씨도 이해하지?'
침대에 편안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현우를 보며 속마음으로라도 이해를 구하고자, 아니, 현우라면 이해했으리라 생각하고 피곤한 몸을 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