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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치하이킹, 해보신 적 있습니까?

일상과 사색

by 오영

여러분은 살면서 히치하이킹을 해 본 적이 있나요?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버린 내 인생에서 히치하이킹을 한 적이 두 번 있는데, 그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히치하이킹이란 것이 말 그대로 길에서 지나가던 차를 붙잡아 타는 것인데, 이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나름의 용기도 필요하고, 뻔뻔함도 필요하다. 그러나, 내 생각에 히치하이킹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절박함이다.

버스나 택시를 탈 수도 없고, 무작정 걸을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서 어디까지는 가야겠다는 그 마음이 용기와 뻔뻔함을 함께 만들어주는 것 같다.


첫 히치하이킹은 20대에 제대하고, 기회가 되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갔었을 때였다.

독일의 어느 소도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혼자 간 배낭여행이지만 당시에는 한국인들을 만나면, 그리고 여행지가 비슷하면 순식간에 일종의 파티가 만들어져서 짧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같이 다녔었다. 어떤 유스호스텔에서 다 같이 잠을 잔 후,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몇 명이었나, 아무튼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이었는데, 한참을 가던 중에 일행 중 한 명이 갑자기 소리치는 것이었다. 숙소에 짐 중 하나를 놓고 왔다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었다. 배낭여행. (출처 : 위키백과)

당시의 배낭여행은 요즘의 캐리어를 갖고 다니는 여행과 달리 진짜 배낭을 여러 개 짊어지고 다니는 방식이었는데, 그중 작은 배낭을 놓고 온 모양이었다. 비까지 내리는 오전의 버스에서 급히 내린 우리 일행은 다시 그 숙소를 가자니 외곽 지역이었기에 가는 버스가 한참 있어야 올 상황이어서 난감해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핸드폰이 있던 시절도 아니고...길가에 공중전화가 있을 리도 만무하고 말이다.)


보슬보슬 내리는 빗 속 멀찍이서 전조등이 보이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경찰차다. 무슨 용기였는지 나는 대뜸 손을 흔들어 경찰차들(세단과 승합차 두대였다)을 세웠고, 안 되는 영어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다행히 일행을 승합차에 태워주겠다는 거다.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이런 스타일의 차였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고마운 경찰분들 덕분에 다시 숙소로 가서, 일행이 놓고 왔던 가방을 무사히 찾았다. (독일 경찰분들 고마워요~)




두 번째 히치하이킹의 경험은 우리나라에서였다.

역시 대학생 때라서 한참 전의 일로, 다니던 학교가 본가와는 먼 곳에 있었고, 어머니 생신을 앞두고 본가에 가려던 때였을 것이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가물하다)

고속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한 거다! 나는 신경성 대장증후군이 있어, 오랜 시간 동안 화장실을 못 갈 상황이 되면 배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땐 젊어서 이 증상을 잘 알지 못했던 때였기에 조금씩 아파오던 배였지만,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참았다. 겪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게 참아서 될 일이 아니었다.


잠시 친구의 말을 인용해 보자면, '소변은 인간의 의지요, 대변은 하늘의 뜻' 이라고 했다.


일분 이분 시간이 갈수록 온통 신경은 배에만 가 있고, 급기야 식은땀이 나오기 시작했다. 버스는 톨게이트를 통과했고, 한참을 참던 나는 얼굴이 하얗게변하고(아마 그렇게 보였을 거다) 온통 땀에 젖은 상태가 되었다. 별 수 없이 큰 결정을 하고 힘겹게 운전기사님께 가서

하늘의 뜻이 오면, 이 거리를 걷기도 쉽지않다.

"차....차 좀 세워주세요~, 속이...." 라는 식으로 말하자 얼굴을 보고 바로 알아채셨는지 상당히 난감해하시면서, 섣불리 결정을 못하시는 거였다.

그렇겠지...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우는 게 말이 되는가.


운전기사님께 저 내리고 그냥 출발해 달라고 겨우 말하고 나니, 세워주시는 거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내렸고, 버스는 출발했다. 풀 숲으로 들어가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웬걸 내린 쪽은 너무 다 보이는 것이다! 급했던 나는 반대편을 봤고, 그쪽이 낫겠다 싶어서 고속도로 무단횡단을 했다! (여러분은 절대 하지 마세요... 그땐 저도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건너편에서 어찌어찌 해결을 하고 나니, 이제 다시 돌아갈 길이 걱정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히 톨게이트 통과하고 얼마 안 되어 도시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 어딘가에 버스 정류장이 있기를 바라며 터벅터벅 걷기를 한참.

차는 안 오고 날은 저물어가던 참 난감하던 상황이 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봉고차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앞서의 첫 번째 히치하이킹을 해본 지 1~2년이 지나지 않은 때라 용기를 내, 시도해 보기로 했다. 이번에도 다행히 자초지종을 듣고는 시내버스를 탈 수 있는 곳까지 태워주셔서 그렇게 두 번째 히치하이킹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십여 년 전에 제주도에서 렌터카로 여행 중, 더운 여름에 만장굴에서 힘겹게 걷던 젊은 커플을 태워준 적이 있어, 예전에 내가 받은 도움을 일부나마 갚은 적이 있지만, 요즘은 아마도 히치하이킹을 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오랜만에 앨범에서 찾은 독일의 어떤 길.(히치하이킹 한 길은 아닙니다)

길 가던 차를 붙잡기도 어렵겠지만, 모르는 사람을 잘못 태웠다가는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 때문이리라.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에 의한 사고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듣다 보면, 내가 '존윅' 급이 아닌 이상에야 남자인 나도 모르는 사람을 태워주기란 쉽지 않기 마련이다.


히치하이킹이라는 게 참 낭만적인 건데, 이제는 안전을 생각하면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고대의 유산 같은 것이 되어버렸달까?


낭만과 안전의 등가교환이 되어버린 요즘이 안타깝다.


지금도 더운 여름에 차를 타고 가다, 간혹 길가에 걷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예전 히치하이킹의 낭만이 떠오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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