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너울 Oct 15. 2023

너 혹시 몇 시에 가봐야 돼?

관계의 공허함에 대하여

  그럴 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저녁까지 시간을 빼놓았는데 상대는 점심을 먹고 난 뒤 이제 가봐야 한다고 말하는, 그 사람도 나도 머쓱한 상황. 저번 주도 그랬다. 점심을 먹은 뒤 "몇 시쯤에 가봐야 해?"  물어보는 그 질문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다. 나는 너무나 해맑게 "저녁에!"라고 답했고 상대는 대화가 한참 이어진 후에서야 "미안한데 나 사실 이제 가봐야 해."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머리를 꽝 맞은 것 같았다. '아니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잘해야 반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사이였고, 내 딴에 우리는 서로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는 관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안 본 반년 사이 내가 상대의 마음속에서 더 멀어진 것인지, 혹은 상대에게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머릿속은 여러 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하지만 나는 '정말 괜찮다며' 최대한 쿨한 척 상대를 보내주었고, 텅 비어버린 시간을 홀로 때우며 밀려드는 서운함과 공허함을 느껴야 했다.


  관계란 무엇일까. 어디선가 관계란 두 사람이 붙들고 있는 실 전화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내가 놓아버릴 수도, 상대가 놓아버릴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놓아버린다면 그 관계란 남은 사람이 아무리 붙들고 이야기를 해보아도 이어나갈 수 없다. 관계를 이어나가다 보면 전화기의 실이 팽팽해져 상대의 목소리가 잘 들릴 때도, 느슨해져 희미해질 때도 있을 것이다. 상대의 목소리가 희미해졌을 때, 나는 주로 내 쪽에서 전화기를 먼저 놓아버리는 방법을 택했었다. 관계에 있어서 거절에 취약한 나의 특성 탓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이 느슨해진 상태로 전화기를 붙들고 있어 볼 예정이다. 이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앞으로 서로의 선택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겠지. 당장 행동을 취하기보다는 좀 더 마음에 여유를 갖는 연습을 천천히 해나가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 닿을 듯 말 듯, 반짝거리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