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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Nov 09. 2023

배추밭에서 범죄와의 전쟁

 겨울 채소 - 배추

 겨울 채소는 배추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배추는 긴 겨울 동안 먹을 김장김치의 재료가 되고, 겨울 내내 상추를 대신하는 쌈 채소가 된다. 배추로 된장을 풀어 배춧국을 끓이고 겉절이를 하고 배추 전도 부쳐 먹는다. 겨울 배추는 정말 달다. 우리 집에서는 아이들 간식거리가 되기도 한다. 배추요리를 하려고 식탁에 씻어 두면 하나 둘 없어진다. 우리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며 배추를 줄기 째 마치 과일 먹듯이 먹어 치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리하고 남은 배춧잎은 냉장고에 넣지 않고 아이들 간식거리로 식탁 위에 그냥 두는 편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생배추는 겨울 내내 통째 저장도 된다. 무보다는 추위에 훨씬 강하다. 가온이 안 되는 마당 창고에 보관해 둔 무는 한겨울이 되면 다 얼어서 먹을 수 없지만, 배추는 그렇지 않다. 물론 배추도 꽁꽁 언다. 꽁꽁 언 배추를 따뜻한 실내에 들여놓으면 투명한 얼음처럼 얼어있던 배추줄기가 이내 하얗게 돌아오고 초록빛 잎도 원래대로 돌아온다.

 나는 늘 배추를 신문지에 한 번 싸서 종이박스에 넣어 마당 창고에 쌓아두고 한 박스씩 열어 꺼내어 먹는다. 어느 해는 보온에 좋을 것 같아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 두었는데 보관에 완전히 실패했다. 봄이 되니 종이박스의 배추는 살짝 골아 조금 쭈글쭈글한 상태였으나 스티로폼 박스의 배추는 모두 썩어서 썩은 물이 줄줄 흘렀다. 종이 박스에 넣어두었던 배추는 꽁꽁 얼었다가도 실온에 두면 되살아나는데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얼었던 배추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흐물흐물 내려앉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부터는 꼭 통기성이 있는 종이 박스에 넣어둔다.

 꽁꽁 언 배추가 되살아 나는 모습은 언제 봐도 정말 신기하다. 도저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돌덩이처럼 꽁꽁 언 배추를 따뜻한 집안에 두면 살살 되살아나는데 그 모습은 우리 민담 속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장면이 연상이 된다.

 우리나라 신화 중 바리공주 이야기를 보면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바리공주가 죽을병에 걸린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저승길로 떠나고 저승 서천 꽃밭에서 사람을 살리는 꽃을 가지고 다시 돌아온다. 그러나 그 사이 아버지는 이미 죽어 장사를 지냈다. 바리공주가 살살이 꽃을 살살 문지르니 새살이 돋아나고 피살이 꽃을 문지르니 따뜻한 피가 돌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숨살이 꽃을 문지르자 죽은 아버지가 숨을 쉬며 다시 살아난다. 이후 바리공주는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나에게도 이런 꽃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싸늘하게 식은 사랑하는 이의 몸에 따뜻한 피를 돌게 하고 생명의 숨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배추밭에서- 절도범들과의 사투

 손바닥만 한 텃밭이지만 배추를 빼놓기가 너무 아쉬워 매년 가을이면 배추를 조금이라도 심는다. 사실 마트에 가면 겨울 내내 언제나 싱싱한 배추를 살 수 있고 한 통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한참 동안 전으로 쌈으로 실컷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굳이 배추를 심는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안 심기가 너무 아쉽다. 8월 말 늦여름이 되면 시장에 배추 모종이 많이 나온다. 망설이다가 결국 올해도 3000원을 주고 작은 포트 모종 포기를 샀다.

 고추를 일부 뽑아낸 뒤, 거름을 듬뿍 넣고 배추 모종을 심었다. 물을 주고 나면 마치 마법이라도 일어나는 듯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아침마다 마법처럼 커지는 배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배추밭에서 범죄의 흔적을 발견했다. 사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매년 그랬으니. 나의 소중한 배추를 훔쳐 먹는 이들은 도처에 널려 있다. 메뚜기, 달팽이, 진딧물, 애벌레. 그중 가장 큰 손해를 입히는 이는 배추흰나비애벌레이며 가장 골치 아픈 녀석은 진딧물이다.


 배추밭에 오자마자 배추가 잘 자라는지 점검하면서 혹시 절도의 흔적이 있는지 찾아본다. 처음 배추를 심기 시작했을 때는 배추벌레를 찾느라 열심히 배춧잎 한 장, 한 장 들춰가며 샅샅이 뒤졌다. 몇 년의 텃밭 농사 끝에 이제는 요령이 생겼다. 슬슬 대충 보다가 동글동글한 짙은 초록 똥 덩어리들을 발견하면 집중 수색에 들어간다. 이 똥 덩어리들이 있으면 그 주변에 반드시 똥의 임자가 있다. 똥의 크기를 보면 대강의 나이와 신상을 알 수 있고, 그동안 훔쳐먹은 배추의 양이 얼마인지도 가늠할 수 있다. 색깔과 형태가 선명하면 바로 인근에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수색을 시작했는데 엉뚱한 녀석이 발견될 때도 있다. 똥 덩어리크기에 맞지 않는 작은 녀석을 발견했을 때는 재수색을 해야 한다. 이 똥은 그 녀석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수색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 다음날 다시 수색을 재개한다. 그 사이 몸도 조금 더 커질 테고 며칠 안에 잡힐 수밖에 없으니, 조바심 내지 않고 그날은 철수한다.

초록 똥덩어리 바로 옆에서 절도의 현장 포착

 배추 절도범 중에서 거미줄 같은 하얀 줄을 남기는 작은 갈색 애벌레도 있다. 거미줄 같은 줄이 보이면 반드시 수색해서 잡아내야 한다. 하얀 거미줄을 치는 이 녀석은 배춧속을 집중 공략하여 배추 한 포기를 통째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올 해는 초기에 거미줄 애벌레를 처치했기에 지금은 배추가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오늘도 곳곳에 남겨진 초록 똥 덩어리들을 보고 수색에 돌입했다. 드디어 찾았다. 이제 체포해야 하는데 얌전하게 순순히 체포되는 놈도 있고 도주를 하는 놈도 있다. 도주를 하는 놈들의 주특기는 바로 굴러 떨어지기이다. 잡으려는 순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재빨리 배추에서 발을 떼고 배춧잎 속 깊은 곳으로 굴러 떨어진다. 하지만 포기할 내가 아니다. 손가락을 비집다가 도저히 안되면 긴급히 나무젓가락을 만들어서 반드시 체포한다.

 오늘은 체포한 후 머그샷도 한 장. 사실, 체포한 후가 문제이다. 자기들도 먹고살려고 한 짓인데 용서를 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용서해 주고 그냥 바깥쪽 잎이나 갉아먹고 안쪽은 먹지 말라고 협상을 하고 싶다. 그러나 말이 안 통하고 협상이 안되니 어쩔 수 없이 응징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다른 놈이 발견되어 응징을 잠시 미루고 급하게 감옥을 만들었다. 큰 배춧잎을 한 장 뜯어다 감시가 쉽도록 잘 보이게 올려놓고 구속시켜 놓았다. 한 놈을 더 체포해서 오는 사이, 어라! 이 놈이 도주를 한다. 쇼생크 탈출이다. 애벌레 주제에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있다. 우리 집 텃밭은 주차장 위 옥상 텃밭이라 벽돌을 둘러쌓아 만들었는데 그 벽돌 담벼락을 기어오르고 있다. 그러다가 벽돌 사이 구멍 속으로 은신을 시도하고 있다. 못 본 척 눈감을 수도 있지만, 어쩌랴 이것이 인생인 것을. 사는 게 전쟁인 것을.

쇼생크 탈출. 담벼락을 기어 올라 도주를 감행하다.

 애벌레 체포 작전을 하다 보니 중간중간 달팽이란 놈도 보인다. 달팽이는 절도의 양이 작아서 주로 추방을 한다. 눈에 띄는 족족 멀리 마당 잔디 쪽으로 추방을 하는데 다시 돌아오겠지만 절도의 정도가 경미해서 아직은 추방만 시키고 있다.

 아! 그런데 두 포기에서 진딧물 집단 서식을 발견했다. 조금씩 있으면 괜찮은데, 이렇게 바글바글 배춧잎 뒷면을 모두 덮어 집단 서식을 하면 그 배추에서는 내가 먹을 게 하나도 없다. 고민된다. 어쩔 수 없이 생화학전을 감행해야 하나? 배추가 이미 알이 차기 시작해서 생화학전도 이미 늦은 것 같은데 포기를 해야 하나? 한 장 한 장 뒤집으며 마요네즈 난황유라도 뿌려 볼까 하는 무거운 고민을 안고 일단 오늘은 배추밭에서 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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