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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Mar 06. 2024

6화. 주택살이-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문제들과 마주하다

주택 살이- 생각지도 못한 갖가지 문제들과 마주하다.

 어릴 때 시골의 농가주택에 살긴 했지만, 그때는 부모님이 집 관리의 주체였으니, 이 집은 내가 관리의 주체가 된 첫 주택이다.

 이사 후, 겨우겨우 짐 정리를 하고 생활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여러 가지 문제에 맞닥뜨렸다.    

  

첫째, 단열과 결로

 겨울 어느 날이었다. 장롱 안에 들어가 놀기 좋아하던 큰 아이가 나를 불렀다.

 “엄마 이불이 축축해! 누가 물을 쏟은 거 같아.”

 급히 장롱 안을 들여다본 결과, 사태는 심각했다. 모든 이불이 축축하고 벽 쪽에 가까이 있던 부분은 정말 누가 물에 담갔다가 짠 것 같이 젖어 있었다. 이불을 하나하나 들어내니 아래쪽에는 이미 거뭇거뭇한 곰팡이가 피고 있었다. 곰팡이가 핀 이불을 버리고 축축한 이불을 빨래해서 말리고, 당장 꼭 필요한 이불 외 나머지 이불을 차에 싣고 안동에 있는 동생 집에 맡겼다. 그리고 겨울 내내 장롱 문을 열어 두고 살았다. 결로 때문이었다. 수십 년 전에 시멘트 벽돌로 지은 집이 단열이 제대로 되어 있을 리 없었다.     


둘째, 아침마다 욕실 유리창에 붙어 있던 얼음판때기

 단열 때문에 겨울이 힘들었던 일은 또 있었다. 아침에 욕실에 들어가면 유리창 크기의 반이 훨씬 넘는 두툼한 얼음 판때기가 매일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욕실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저녁이면 따뜻한 낮 기온 덕에 조금 녹아서 작아졌다가 아침이면 밤새 유리창에 맺힌 이슬이 모여서 얼어붙는 바람에 다시 커졌다.  

 간단한 세면과 화장실 볼일 외에는 너무 추워서 욕실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주말 아침마다 아이들 둘의 손을 잡고 근처 목욕탕을 이용하였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나중에는 주말마다 아이들과 걸어서 동네 낡은 목욕탕을 다니던 것이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어린 시절, 욕실이 없던 시골집에서, 엄마가 가마솥에 물을 데워 큰 고무통에 담고 자매들을 한 명씩 씻겨 주곤 했다. 방 안이지만 외풍이 세서 하얀 김이 나오기 일쑤였기에,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을 연신 어깨와 등에 걸쳐 주던 우리 엄마. 온몸과 마음을 순식간에 무장 해제시키던 그 따스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다가 명절이 다가오면 동네 어른들과 함께 엄마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읍내 목욕탕에 가곤 했었다. 그때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나고 추억 여행하는 기분으로 집 근처에 있던 낡은 목욕탕을 주말 아침마다 다녔다.

 그 목욕탕은 정말 어린 시절의 읍내 목욕탕을 떠올릴 만큼, 옛날 목욕탕이었다. 파란 모자이크 타일과 거칠거칠한 시멘트 줄눈으로 된 욕탕과 콘크리트 바닥을 가지고 있었다. 후줄근할 수도 있었지만 그 이상의 정겨움이 있었다. 아이들도 목욕탕 가는 주말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마치 워터파크에라도 온 것처럼 따뜻한 물에 즐겁게 놀았다.      


셋째, 수도 동파는 기본

 주택 생활이 처음인지라, 아무 생각 없이 겨울을 보냈기에, 한파 뉴스에서 흔하게 보던 수도 동파도 당연히 우리를 비켜 가지 않았다. 갑자기 수돗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동파였다. 결국 수리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해결을 한 뒤, 겨울 내내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두어 동파 사고를 예방해야 했다.    

  

넷째, 정화조! 똥통에 빠지다.

 기막힌 일들은 계속 일어났다. 이것도 우리가 주택 생활과 주택 관리에 너무 무지해서 일어난 일이다. 어느 날 마당에서 놀던 딸아이의 비명에 놀라 달려갔더니 다리 한쪽이 냄새나는 오물에 뒤덮여 젖어 있었다. 발이 갑자기 땅속으로 쑥 빠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그곳에 정화조가 있었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도시의 오수처리 시설로의 연결 없이 개별 정화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뚜껑이 열려서 오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상태였던 것이다. 한 마디로 똥통에 빠진 것이다.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있어야 할 정화조 입구가 건물 옆 마당 수돗가 가는 길에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주변에 가면 냄새가 좀 나긴 했지만, 우리는 그때까지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한 번씩 위생차를 불러서 오물을 퍼내야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오물이 가득 차고 넘쳐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압력으로 둥근 고무 뚜껑이 열리고 뚜껑이 오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었다. 한쪽을 밟으면 바로 빠지는 상태였다. 놀란 아이를 달래어 씻기고 나서 위생차를 불러서 오물을 퍼냈다.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 뚜껑보다 훨씬 더 커다란 나무 발판을 구해 덮어 두었다.      


다섯째, 집수정 관리

 한 번은 마당 수돗가에 물이 빠지지 않아 발이라도 씻으려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배수구에 뭐가 막혔나 하고 아무리 막대로 쑤셔 봐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여러 날을 막대로 쑤시고 들여다보며 고심하던 차에 마침 아버지가 영주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 마당을 찬찬히 살피시더니 텃밭 한가운데에서 가로 세로 1m쯤 되는 큼직한 콘크리트 시설물을 하나 찾아내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때까지 그게 뭔지 몰랐다. 집수정이었다. 배수로 중간에 물이 한 번 모였다가 빠져나가는 시설이다. 뚜껑을 열었더니 모래가 가득 차 있었다. 아마 수년 동안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

지가 들어가셔서 삽으로 모래를 퍼내시니 수돗가의 물이 통쾌하게 콸콸거리며 바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여섯째, 공포의 간이 창고

 집과 담장 사이에 작은 공간에 처마가 올려져 있고 입구에 나무 판자로 된 문이 있었다. 어쩌면 아이들 자전거라도 둘 창고 공간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살짝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곳은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도대체 언제부터 쌓여온 것인지 도저히 분간할 수 없는 각종 물건들이 가득 차 있었고 도무지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몇 년동안이나 그렇게 봉인되어 있었을까? 십년 아니 이십년 정도는 봉인되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오랫동안 닫혀있던 곳의 봉인을 해제하고 들어가면 '비밀의 화원'이라도 펼쳐지면 좋을 텐데 이곳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는 곳이었다. 비밀의 화원은 커녕 봉인을 해제하면 공포영화를 한편 찍게 될 것만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무슨 일인가가 벌어질 것만 같았다. 영화처럼 갑자기 전갈들이 쏟아져 나온다든가 어쩌면 거대한 손 하나가 나와서 나를 끌고 들어가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들여다 보는 것 조차 포기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2년 동안 우리는 단 한번도 그 문을 열지 않았다.  


일곱째, 곳곳에 묻힌 건축폐기물과 쓰레기들

 마당을 정리하면서 손을 대는 곳마다 막걸리병이며 유리병이며 각종 쓰레기가 호미 끝에 끊임없이 걸려 올라왔다. 특히 담장 밑이 심했다. 아예 마당 코너 한 곳은 시멘트 덩어리와 건축폐기물들이 수북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있었다. 흙으로 살짝 덮여 있어 처음에는 몰랐으나 호미로 파보니 콘크리트 덩어리와 철근 조각 등이 작은 동산을 이루고 있었다. 이곳이 개인이 관리하는 주택이 아니라 관사이다 보니 공사 후 공사 폐기물이나 쓰레기들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마당에 묻어 버린 모양이었다. 담장을 따라 고구마를 캐듯이 쓰레기들을 캐내고 한쪽 코너 폐기물 동산은 도저히 방법이 없어 그냥 해바라기 씨앗을 심었다. 그렇게 하여 해바라기 동산이 만들어졌다.


 건축 쓰레기 더미 위에 만들어진 해바라기 동산


 도심 끝자락 주택살이의 소소한 즐거움

 구도심의 끝 자락에 위치한 주택살이의 소소한 기억들을 떠올려 보면 힘들었던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생각보다 소소하게 즐거운 기억들이 많다. 주말마다 목욕탕에 가던 일도 즐거웠고, 집 바로 앞에 짜장면 집도 있었는데, 이름처럼 “무진장” 맛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짜장면 집 이름이 '무진장 반점'이었다. 또 길을 건너면 영주에서 제일 큰 문구사가 있어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을 땐 아이들 손을 잡고 걸어서 문구사 쇼핑을 자주 했다. 이름이 문구사이지 각양각색의 문구는 물론이고 여러 가지 장난감이며 생활용품이 가득한 그야말로 백화점이었다. 매장 규모도 상당히 컸다. 갈 때마다 한 두 가지 작은 장난감을 골라 오고 스티커도 골라 왔다. ‘영문사’ 가자고 하면 아이들이 울다가도 울음을 딱 그쳤다. 한 번은 작은 아이가 발견한 유리구슬 하나를 두고 무슨 대단한 보물인 양, 서로 뺏길까 봐 절망적으로 붙들고 울던 아이들을 문구사에 데려갔다. 각각 500원을 주고 그물망에 들어 있는 유리구슬을 한 봉지씩 안겨 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반짝거리는 예쁜 유리구슬을 지금 당장 사주겠다’는 엄마 말을 믿지 못하던 아이들은 입이 딱 벌어지도록 놀라며 행복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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