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필요한 것들
겨울이 중간에서 끝자락을 향할 때쯤이면, 나는 안동으로 간다. 꾸준히라고 말하기엔 다소 짧은 감이 있지만 어쨌거나 3년째, 겨울이 되면 안동으로 간다. 첫해는 혼자, 작년엔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올해는 주향이와 함께 혜진이를 보러.
겨울에만 안동을 가야겠다고 의도한 건 아니었다. 안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면, 우연이라는 게 늘 그렇듯, 겨울이었으니 말이다. 올해로 3년째니, 우연함을 넘어선 운명이라고 해도 되려나.
은근슬쩍 운명으로 포장한 나의 안동 여정은 시작부터 까다롭다. 창원에서 안동 가는 버스는 하루에 단 한 대. 버스로 세 시간(사실 기사님이 달리면 두 시간 이십분 정도 걸린다). 기차는 없다. 같은 경상도여도 남도와 북도의 차이를 여기서 실감한다. 이렇게 오래 걸릴 일인가. 하긴. 필연적인 운명으로 향하는 길에 험난함이 빠지면 아쉬운 법이니, 이런 까다로움은 '해마다 겨울의 안동으로 가는 나'라는 운명에 꼭 필요한 것일 테다.
운명에 완벽을 기하려면, 이유 역시 필요하겠다. 납득할만하면서도 운명이라 말하기 좋은 본능적인 그런 이유. 모든 운명은 험난함을 뚫고도 마음이 끌리는 법이니, 안동 역시 끌렸다는 말로 얼버무려야 할까.
아니, 조금 더 덧붙여야겠다. 내 마음속 고향이라는 말처럼 마음속 친구라는 단어도 쓸 수 있다면, 그렇게 도시도 마음속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안동은 내게 마음속 친구였다. 자주 보지 못하고, 특별히 연락을 하지 않아도 만나면 편한 친구, 오랜만에 봐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
안동을 찾을 때면 코끝이 시리고 겨울의 절정이 내 몸을 휘감아, 내 옷의 두께를 더했지만, 마음의 옷 역시 두꺼워지게 만들었다. 그렇게 춥지만 따뜻했던 안동이라는 곳. 그래서 외로움을 진득하게 느낄 수 있는 겨울이라는 계절에, 안동을 찾는다. 생각이 많아질 때만큼은 마음이 편해지는 친구를 찾는 법이니깐.
움츠린 마음이 안동에서 뒹굴거린다.
정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원래 운명은 횡설수설한 것이라고 둘러대야겠다.
그러니, 이 정도면 안동은 완벽한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