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빌로드 Sep 09. 2023

나르시시트 성향의 부모에게 희생양 scapegoat 됨

수치심의 원인(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5)

너는 no답이야.
어떻게 이렇게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혼자 그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해보려고 했어...... 네 말 들어 보니 아니야. 너는 부정적이고 감사할 줄 몰라. 부모님이 고생하고 키워주신 거에 고마운 마음이 없어? 이제 우리가 부모님을 챙겨드릴 때라고!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30의 미취업자인 내게 둘째 언니가 하던 말이다. 나보다 4살 위의 그녀는 어려서부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고 했다. 점쟁이도 둘째가 아들노릇할 거라고 했다며 엄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말 많은 그녀가 내게 '왜 이단교회에 갔는지'를 비롯한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그날, 나조차도 원인을 알지 못했지만 아무거나 떠오르는 대로 대답했었다. 가스라이팅 피해자는 극도의 인지부조화와 혼란 속에 빠져있고, 스스로를 불신하게 되는데 그런 것에 대한 인식이 없었고 나 스스로도 나의 의존성 성격장애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녀의 말발에 이끌리다가 또 한 번 병신이 되었다.


그즈음 자살충동이 한 번씩 올라와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 번은 정말 충동적으로 아파트 14층에서 떨어질 뻔했다. '아, 이렇게 자살을 하는 거구나.' 그 후 미친 듯이 검색해서 심리치료하는 곳을 물색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젓한 둘째 언니와 집에서 가장 어리고 철없는 나를 대하는 방식이 달랐다. 어릴 때는 영문도 모르고 그런가 보다 했겠지만, 나르시시트를 공부하고 나니 답이 보였다. 그녀는 골든 차일드(golden child), 나는 희생양(scapegoat)였다. 거실이 없어 안방에서 아버지가 자고 있을 때, TV를 볼 때도 그녀가 뉴스를 보는 것에 대해서는 격려해 주었고, 나는 그토록 보고 싶은 드라마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화를 내면 나는 놀란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벌벌 떨었던 기억이 난다. 한 번은 식당에서 머리카락이 나왔는데, 음식 머리카락저 애 거라며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흘겨보았다. 지금 바로 나온 음식에 내 머리카락이 들어갈 수도 있었을까?


나르시시트 부모는 수치심으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서 집에서 가장 못나보이는 한 명을 지목해 경멸을 통해 자신의 수치심을 투영한다. 경멸을 하는 동안 적어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희생양(scapegoat)이 된 어린 나는 그의 경멸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수치심은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49년생 김종표는 려서 공부를 하면 항상 1등이었다. 중학교를 보내라고 담임선생님이 집까지 찾아왔는데 할아버지가 지게를 지고 일이나 하라고 했다. 초등학교만 나온 그는 살아가면서 수치심과 열등감을 많이 느꼈을 법도 하다. 할머니정이 없었다고 하니 정서적 소통도 어려웠으리라. 나의 초등학교 때 아이큐는 1등급이었지만 고등학교 때 EQ는 꼴찌였던 걸 미루어보았을 때 그의 모습이 짐작이 간다. 공부는 잘하는데 뭔가 핀트가 맞지 않는 유형이라고나 할까


고맙고 고마운 그 아버지가 옆에 있을 때면 내 마음속에서는 '죽 싶다. 죽고 싶다.' 마음속에서 만트라 같은 외침이 지속되었다. 그는 습관적으로 엄마를 무시했고, 내 수능 점수를 본 이후 나를 더욱 적극적으로 무시했다. 편입을 전제로 전문대에 갔으니 편입시험 공부하는 내마음은 그를 향한 증오와 분노로 가득했다. 증오의 힘으로 4년제 대학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는 뜻은 내 주변 등수의 친구들은 다들 더 좋은 학교에 갔다는 뜻이다. 자존감이 낮았던 나는 더 좋은 학교에 지원하지 했던 것 같다.


나를 왜 나았어?


초등학교 때 나의 질문에 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내게 물건을 던졌다. 정말 궁금했다. 나의 삶의 이유와 목적을 정말 알 수 없었다. 내가 사춘기 때 둘째 언니는 학교에서 성적이 좋았지만 아침마다 엄마한테 소리를 지르며 성질을 냈다. 나는 아침마다 생각했다. 저렇게 공부하느니 겸손한 바보가 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공부를 잘해서 저렇게 교만해질까 봐 무섭기도 했다.


김종표의 사업이 잘 진행되지 않자 이하정여사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때부터 엄마는 아빠를 무시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수치심을 주고, 끊임없이 평가해 대고 둘째가 1등 하고, 인정받는 거 외에 딱히 할 말이 없어 각자 밥만 먹고 잠만 자던 그곳은 퍽이나 즐거운 우리 집이었다. 그래도 부모님 덕분에 먹고살았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지만 그 모든 희생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까? 한 번씩 아프다는 얘기를 들으면 걱정되었고 '엄마'라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공감도 정서 소통도 없이 무시와 수치심만 느껴서 인지 나는 받은 게 없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마 자살을 한들 '미친년이 멍청하게 혼자 죽었다'며 욕이나 했을 것 같다. 공감능력 제로인 그녀는 그럴 법도 다. 그래도 내가 자살은 안 할 거라고 믿어주었던 사람이다. 그에 감사하다가도 땍땍거리는 말투와 도저히 이해와 공감 없는 소통 방식은 한 번씩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에 얼마  선을 제대로 그었다. 나의 장문의 메시지를 받은 그녀는 아마 울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사과하지 않았다. 나도 그만큼은 충분히 울어보았을테고, 그녀는 내일이면 또 잊어버리고 나보고 '네가 예민한 탓이다'라고 할 게 분명했다. 6살 때부터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와 소아우울증, 소아무기력증을 갖고 몇십 년을 정신병자로 벙어리냉가슴 앓듯 버텨온 내게, 그 든 시간을 감사하기는 너무 힘이 드는 일이었다. 감사는커녕 용서도 안 된다.  번씩 잊고 있다 불쑥불쑥 그 집만 가면 떠오르는 고통을 애써 외면하느라 명절 때마다 힘이 들었다. 이제 그러지 않아도 된다. 이제 연락도 안 할 거란다. 그 후 며칠이 지났는데 날이 갈수록 얼굴이 밝아진다. 자가면역질환 루푸스 증상인 피부발진이 줄어들고 있다. 나는 정말 잘하고 있다. 파이팅.

이전 08화 엄마를 버렸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