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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Sep 08. 2023

엄마를 버렸다

버림받은 무의식 (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4)

그녀를 마음에서 끊어내고
 '살았나 죽었나 만 확인하며 살자'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꿈이 하나가 있다. 한복을 곱게 입은 엄마와 큰언니가 보였다. 나는 무서운 사자가 있는 동물원 우리 안에 혼자 있었다. 그런 나를 두고 두 사람은 아주 밝게 웃으면서 인사하며 떠나갔다. 내 감정이 어떤지는 전혀 공감받지 못한 채 말이다. 나는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불안함에 떨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지만, 눈으로, 마음으로 끊임없이 그들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꿈속에서 조차 마치 가위에 눌린듯하였다.


6살에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 증상이 있었다. 아마 4~6살에 창문조차 있는지 모르겠는 집에 혼자 있으며, 때때로 부모님의 싸움을 보며 불안감이 생겼을 거라 생각된다. 이걸 알기까지 30년이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유튜브와 오은영 선생님이 없었더라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을 테니 지금이라도 알게 된 걸 감사하게 여겨야겠지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벙어리 냉가슴 앓듯 답답하고 쓰라린 기억들이 가득하다.


후에 그 꿈의 내용이 '버림받은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분명 우리 부모님은 날 버린 적이 없다. 찢어지게 가난하고 원하지 않았던 셋째 딸이었음에도 아이를 낳지 하는 독일 고모가 입양하고 싶다고 해도 아빠는 '내 자식은 내가 키운다'같은 고집스러운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나의 버림받은 무의식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엄마는 태어나기도 전에 내가 아들인지 아닌지 점쟁이들에게 확인하러 다녔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딸인 걸 알고 실망스러워 울었다고 한다. 내 위로는 낙태된 자녀가 있다. 그 위로 둘째 언니가 너무 울어서 도저히 같이 키울 수 없었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낙태를 결정했다.


인간적으로 보았을 때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무의식이 열려있는 태아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한 아이가 낙태된 이후, 그 자리에 생겨난 태아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죽임을 당할 수도 있구나 버림받을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무기력감과 절망에 빠진다. '버림받은 무의식'을 두고 낙태된 아이의 흔적을 내가 그대로 흡수했던 건 아닌가 싶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아빠의 성격상 울어대는 갓난아이인 나를 두고 "갖다 버려라"라고 쉽게 얘기했을 것이다. 태아 때가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버림받은 무의식은 유년기 내내 지속되었다. 


그 무의식을 가진 사람은 버림받고 버리는 패턴이 인생을 두고 지속된다. 인간관계에서도, 일에서도 버림받을까 두려워 먼저 선수치고 버리는 선택을 한다. 그러니 오래 지속되는 인간관계가 어렵고 일도 늘 중도 포기가 되어 제대로 하는 게 없었다. '버림받은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받아들여주면 흘러간다기에 나름 노력을 해보았다. 한결같은 남편을 만났으니 내 무의식은 어느 정도 정화된 걸까? 그럼에도 나는 끊임없이 갈팡질팡 마음을 잡지 못하는 거 같다. 아무래도 100% 정화된 건 아닌 듯하다.


그리고 엊그제 비로소 엄마에게 선을 그었다. 엄마는 버림받은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도저히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생각 없이 말을 내뱉고,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었는지 그녀는 알지 못하겠지만 난 지울 수 없는 상처들을 애써 참아오며 꼭꼭 눌러왔다. 그리고 그게 터질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런데 왠지 무의식이 정화된 기분이다. 53년생 이하정여사가 내게 했던 일들을 생각하며 괴로울 때는 입덧까지 겹쳐 어지럽고 매쓰껍고, 설사까지 했데, 에게 그간 힘들었던 모든 것들을 쏟아내고 나니 평온함을 찾았다. (30년 넘 선택적 함구증을 앓아온지라 말이 아닌 장문의 문자 메시지였다.)


생각해 보니 나는 살아오면서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회사 동료에게서 또는 친구에게서. 아마 내가 생각 없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못한 채 내뱉은 말이나 어떤 행동 때문이었으리라. 영문도 모른 채 버림받은 나는 슬픔에 잠겼고 비참한 마음 휩싸였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이런 말과 행동들을 나조차 통제할 재간이 없었기에 더욱 좌절했다. 결국 자기학대로 이어져 병까지 만들었으리라.


그런데 이제는 보인다. 내 그러한 생각 없는 행동들이 엄마의 업을 푸는 과정이었던 거 같다. 내 업보이기도 하겠지. 엄마는 어쩜 그렇게 다른 사람 입장을 생각하지 못하고 이해를 못 할까 싶을 정도다. 그걸 내가 그대로 닮았다. 버림받고 버리는 경험 끝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를 마음에서 끊어내고 '살았나 죽었나 만 확인하며 살자'했다. 내 버림받은 무의식의 근원을 뿌리뽑은 기분마저 든다. 원가정에서의 부정적 영향에서 비로소 벗어나게 된 것만 같다.


그렇게 선을 긋고 몇일이 지난 오늘 울긋불긋하던 루푸스 피부발진 증상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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