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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Sep 07. 2023

이단교회에서의 가스라이팅

의존성 성격장애의 비애(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3)

 그 이단교회에 있던 2년 동안은
 늘 달고 다니던 감기한 번, 설사병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채워지는 게 있었던 걸까?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던 욕구가 채워져서였을까?




19살부터 2년간 가스라이팅을 당했던 이단교회를 나온 직후 내 정신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여기저기 폐허인지 상처인지도 모를 구멍들을 애써 감추려고 겨우 덧대어 놓은 누더기옷 같았다. 당시에는 그냥 혼란스러워했다. 그 누구에게 말을 할 수도 없었다. 6살 때부터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겪던 나는 심지어 이단교회에서조차 '영적벙어리' 소리를 들었다. 당시 그 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 마음에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그 신성한 교회를 욕보일 수 없기에 주변에 그동안 내가 뭐 하고 다녔는지, 어디에 다녔는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단교회 특성상 주변관리를 잘하라고 철저하게 세뇌기도 했었다. 적절한 상담이나 치유를 받을 생각을 못했기에 당시의 심리적 어려움은 그 이후의 인생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나는 늘 공부하러 다닌다며 집을 나와 교회로 향했다. 3.3.3이라는 법칙이 있었는데, 하루 성경공부 3시간, 기도 3시간, 전도 3시간이 목표였다. 때때로 초콜릿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 이단교회는 마치 통일교처럼 여러 기관을 만들어 하나님의 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는 중이었고, 나는 그 귀한 역사에 쓰임 받으려고 선택받은 주님의 자녀였다.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가 더 이상 실패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나 하나라도 바로서자' 매일같이 다짐했다. 큰언니가 월 140만 원 받으면서 아르바이트하던 월급 중 나에게 매달 20만 원을 학원비 주었는데, 나는 당시 전도사로 의정부 교회에 사역을 맡았고 고스란히 성전세로 들어갔다. 2년 동안은 죽어라 교회에 헌신했지만 도저히 그 이상은 회의감이 들어 못하겠더라. 이단교회에서의 2년이 끝나는 막바지. 수능을 한 달인가 앞두고부터 어찌나 수능공부가 하고 싶던지 교회의 초콜릿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애써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주변 선배 사역자들은 성전세를 내느라 카드 돌려 막기를 한다고 했다. 당시는 그 말이 너무나 무서웠다. 예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보다 대출을 받았다가 큰일 날 까봐 너무 무서웠다. 어디서 들은 건 있었나 보다.


스무 살까지만 살자


그 해 수능 시험을 보고, 그리고 전문대 야간에도 못 갈 수능 점수를 받고 그 이단 교회에서 오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인생을 걸었던, 내 영혼을 포기할 정도로 함께 이루고 싶다 했던 그 젓과 꿀이 흐르는 지상낙원의 이상향을 향한 내 다짐을 포기하며 엉엉 울었다. 세상이 끝난 것처럼. 그럴 만도 했다. 고3 때 그 교회로 매일 새벽예배를 다녔는데 당시 '20살까지만 살자.'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살아가는 의미도 찾을 수 없었캠퍼스의 낭만을 운운하며 대학만 쫒는 걸 속으로 비웃었다. 1년만 그곳에 모든 것을 걸어보자 생각했다. 하지만 1년은 고3이었기에 학생신분으로 사역을 하는 건 한계가 있었기에 '딱 일 년만 더' 라며 20살까지 갈아 넣었다. 나의 첫사랑은 하나님이었다. 세상의 유혹에서 벗어난 순전한 양처럼 나는 희생물이 되었다. 럼에도 그 교회에 있던 2년 동안은 늘 달고 다니던 감기한 번, 설사병 한 번 걸리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채워지는 게 있었던 걸까?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했던 욕구가 채워져서였을까?


나는 피폐한 정신을 갖고, 가정으로 돌아왔지만, 내 수능 점수를 본 가족들은 경악을 했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 아무 말도 못 하고 온 가족의 바보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도저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바보예요.' 그냥 받아들여야 했다. 1년 동안 하루평균 3시간을 기도하면서 어떤 영적인 감이 발달했는지 누가 내 생각을 하거나 걱정을 하면 한쪽 귀와 머리가 너무나 아파오기 시작했다. 언니들은 큰일 났다며 걱정해댔고 당시 머리가 너무 아팠다. 수능공부를 너무도 하고 싶었고, 삼수하겠다고 했지만 걱정하는 언니들로 인해 머리는 죽을 듯이 아팠다. 기가 죽고 머리가 아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하면 큰일 나는 줄 알던 언니는 단 지금은 갈 수 있는 전문대라도 가고 나중에 편입하라고 했다. 그렇 말하는 언니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지만 내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견딜 수 없이 머리가 아파오자 나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언니들에게 말했다. "그래 골라봐 너네가 가라는 데 갈게."


머리가 아픈 증상은 예전에 금쪽상담소에서 나온 가수 김윤아 씨의 증상과 비슷했다. 하루 기도 3시간을 하던 나는 초초 민감형의 인간이 되었던 것이다. 영적인 머리만 너무 커진 기형적 상태였다.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대중화된 게 최근인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단교회 피해자들 중에서도 이 단어를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탈퇴 후에도 계속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을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그랬다. 벌써 20년 전인데 이제야 그 피해에서 벗어나는 중인 듯하다. 내가 파악한 가스라이팅 피해는 다음과 같다.


1.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들은 부정, 모순, 잘못된 정보, 잘못된 방향, 심지어 진정한 정보와 사실을 사용하여 사람의 현실감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방향감각을 잃게 한다.


2. 가스라이팅을 당하면 극도의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지게 . 결국 자신의 온전한 감각을 의심하게 되고, 자존감이 크게 떨어다. 그들은 스스로를 불신하는 법을 배우고, 가스라이팅 하는 사람의 인식과 통제를 따르게 다.



결국.......

1. 스스로를 불신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2. 사람들을 정신 병동으로 이끌거나 심지어 자살까지 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붕괴를 일으다.

3. 불확실성과 자기 의심 속에 가두려 다. ​​




Narcissism Free의 설립자이자 임상최면 치료사인 Kaleah LaRoche는 학대와 트라우마의 피해자들과 함께 연구하 많은 이들이 트라우마의 결과일 가능성이 있는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것을 발견다. 유독한 관계나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것이 자가면역질환을 앓는 유일한 이유는 아니지만, 탐구할 가치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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