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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Sep 07. 2023

나는 가스라이팅을 구걸했다

의존성 성격장애자의 비애(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2)

저 좀 가스라이팅 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스스로 온전하지가 않아요.




"주님, 저를 온전케 하소서" 내 마음속에서 늘 이렇게 기도를 하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기독교 교리는 나를 더 미숙하게만 했던 거 같다. 이단교회에서의 가스라이팅 이후, 의지할 어떤 대상을 찾아 방황이 이어졌다. 어린 시절 애정결핍이 심했기 때문이라 짐작할 뿐이다.


명상을 배우기 전까지의 나의 삶은 살아있는 송장과 다름없었다. 어린 시절, 애정결핍에서 비롯된 소아우울증과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불안장애를 6세부터 앓아왔다.  그러나 심리상담이나 지식이 보편화되어있지 않은 시대를 살아온 나는 그런 시간들을 원인도 모르고, 그냥 남들보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소심하고,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치우쳐 보는 시각들을 고스란히 견뎌내며 버티듯이 살아왔다. 결국 그 버팀의 무게에 지쳐 방으로 들어갔다. 은둔형 외톨이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를 어딘가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각은 고스란히 내면화되었다. 지적질하는 아버지 덕에 자신감은 어릴 때부터 부족했는데, 부족한 자신감과 열등감. 더불어 자기학대로 번져갔다. 그렇게 만성적인 자가면연질환 루푸스라는 질환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명상을 배운 건 32살 즘이었다.


그 전의 삶은 살았다고 할 수 없. 어린 시절 방치되듯이 자란 나는 사회성이 필요한 4~6세에 그냥 집에 혼자 있었다. 시골에서 그랬다면 얘기가 다를 수 있다. 마당에 나가 있으면 지나가는 강아지도 있고 동네 사람들도 있고, 하늘과 산이 보이는 곳에서 구름이 움직이는 거라도 볼 수 있다. 도시의 작은 단 칸방.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창문이 있었나 싶은 텅 빈 방 안에 멍하니 벽만 보고 앉아있던 아이는 소아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치여 살다가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우연히 만난 심리학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즐거움'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어린아이, 즉 소아우울증. 생각해 보니 딱 나였다. 최근 들어 보게 된 오은영 선생님의 방송을 통해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가수 현진영 씨가 나온 부분이었는데 그도 어릴 때 성장을 잘 거치지 않아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성인이 되어서도 나왔다.

나의 경우를 돌아볼 때, 4~6살 시기의 트라우마로 인해 나는 살아오면서 그 시기의 어린아이 같은 양상을 일부러 드러내려고 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토록 다니고 싶던 유치원을 못 간 한이 남아있었을까? 19살에 교회를 다니며 어릴 때 유치원에서 배우던 교육을 교회에서 받는다고 믿는다거나, 일부러 어린아이처럼 철없이 행동한다거나.......

아버지란 인간은 그런 나를 두고 초등학생만도 못하다고 무시했는데, 심리학적으로 보면 당연한 양상이라는 것에 큰 위로를 받았다.


어린 시절 지속된 가정의 불행은 어린아이로 하여금 '내 잘못이다.'여기 게 한다. 나 또한 그랬고, 어린아이라서 가졌던 죄책감은 '인간은 죄인이다'라 얘기하는 기독교 교리와 어딘가 치하는 측면이 있었다. 더불어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속감과 '주님의 선택'이라는 존재감마저 느낄 수 있었던 거 같다. 18살에 성경을 잘 알고 다고 기도했는데, 얼마 후, 기도의 응답을 받은 것처럼 '성경공부 관심 있냐'라고 제안하는 이대 언니를 지하철서 만났다. 그렇게 시작된 성경공부. 당시는 세뇌되어 몰랐는데, 거기는 이단교회였다. 거기서 2년,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곳을 나오고도 혼란은 10년 정도 더 지속되었다. 그냥 회의감에 나왔는데 그동안 그곳에서 받은 영향에 대해 어떻게 치료할 줄은 모르고 잘못된 인식의 오류를 계속 갖고 살았다.


한동안 억울해했다. 그런데 더 오랜 시간이 지나서 보니 나는 거기를 나와서도 20대 내내 여기저기 의존할 대상을 찾아 가스라이팅을 구걸하고 있었다.

저 좀 가스라이팅 해주실 수 있나요?
혼자서는 도저히 바로 설 수가 없어요


나는 온몸으로 외로움과 의존욕구를 뿜어내며 다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불안정애착 유형의 인간. 의존성격장애였다.

연애도 할 수 없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기본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없었으니 연애는커녕 인간관계조차 어려웠다. 30대 후반에 일도 인간관계도 쉽지가 않아, 심리학을 파다가  어린 시절 불안정 애착에서 답을 얻었을 때, 엉엉 울부짖으며 가족들에게 말을 했다. 엄마는 사람은 처음에는 "미안하다." 했으나 무언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 나를 두고 '네가 원래 못나고 문제다'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친척들만 오면 걱정이라는 명목아래 내 흉을 보곤 했고, 그 무게는 고스란히 더 큰 수치심으로 다가왔다. '걱정'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를 동원하여 나를 공격하는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한 번은 그런 거는 학교에서 배우는 거 아니냐며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생각했다.

 "아, 내가 말을 말았어야 했구나. 애초에 대화가 안 되는 인간들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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