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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로드 Sep 06. 2023

학대만큼 잔혹한 '방임'

나의 자가면역질환 원인 #1


우리는 대부분 정서적 학대의 형태에는 협박, 수치심이나 모멸감을 주는 일, 착취, 왕따 등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알아차리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감정적 학대의 형태는 따로 있다. 바로 오늘날 만연한 정서적 방임이다.

- 틸스완 저, 외로움의 해부학


유년기의 정서적 방임을 겪은 사람들 대부분은 이 같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는 철저히 숨기거나 아니면 자신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알고 싶은 절박한 심정으로 정신과 의사 또는 심리 상담사를 찾아간다. 이들은 대부분 깊은 자책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자기감정의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감정인데도 원인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된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적 방임은 받지 못한 격려다. 받지 못한 위로다. 받지 못한 애정 어린 지지다. 듣지 못한 애정 어린 말이다. 단 한 번도 느끼지 못한 소속감이다  받지 못한 이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라면 다들 자녀의 정서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데에 실패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실패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만성적으로 실패했을 경우에만 성인이 된 이후 자녀의 인생의 근간이 무너질 수 있다

- 틸스완 저, 외로움의 해부학




자살충동에 시달리다 정말 '순간적으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던 어느 날, 31살 겨울이었던 것 같다. 심리치료를 받기로 마음먹고 심리검사를 받았다. 당시에는 나름 큰돈을 썼다. 심리상담이나 치료에 병원만큼이나 자주 갈 만한 환경이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인식이 없었고, 지식도 정보도 부족했다. 만 더 빨리 찾았으면 좋았으련만 주위 사람들 눈치 보며, 사회적 시계에 맞춰가느라 늘 바빴던 것 같다. 빨리 인정받고 성공하려는 욕구가 지나쳤다. 자기애적 성격장애도 살짝 있었던 것 같다.


해외인턴쉽에 장학생으로 뽑혀도 불안에 잠식되어 가지 못하고, 가스라이팅을 구걸하며 때로는 이단교회에, 아는 언니에게, 때로는 친언니라는 존재에게 내 인생의 결정권을 줘버리던 나의 20대. 어린 시절 성장과정을 적절히 거치지 못해 내 인생을 살지 못하고 20대 내내 유치원 어린아이 같은 여리고 약한 마음을 벗어나지 못한 채 불안에 떨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겨우 버텨왔던 것이다.


이제는 알겠다. 내가 잘 못 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은 모두 각자 타고난 기질이 있다. 나 같은 아이의 기질을 타고난 아이가 누구라도 그런 정서적 방임, 때로는 정서적 학대 환경에서 자랐다면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조금 둔한 아이였다면 달랐을 수도 있겠다.


40대가 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 모든 시간들을 그냥 덮어버리고 잊는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반추해 보면서 '내 존재 자체가 문제.' '내 존재 자체가 잘못이다.', '내가 이상하다.'라는 그릇된 생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이해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하나씩 쌓여가면서 내 신체의 원인 모를 질병, 자가면역질환 루푸스라는 질환이 개선되는 걸 체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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