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정신이 시대정신
파브르가 관찰한 막시류 곤충인 땅벌은 죽은 후에도 유충이 먹을 신선한 먹이를 마련하려고, 해부학의 힘을 빌려 자신의 잔인성을 키워 바구미나 매미를 포획하고는,
다른 생명 기능은 그대로 둔 채 다리 운동을 주관하는 신경중추를 놀라운 지식과 솜씨로 찔러, 그 마비된 곤충 주위에 알을 갖다 놓고는 알이 부화해서 유충이 되면 그 유충에게 온순하고도 무해하고, 도망치거나 저항할 수 없는, 그렇지만 조금도 썩지 않은 먹이를 제공하게끔 한다(주1).
방금 전 [엄마의 유산]을 탈고했다.
거의 1년을 훌쩍 넘긴 작업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두 아이를 키운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아이들에게 남기고 싶은 모든 것을 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20년에 가까운 작업이었다고 말해도 될 듯하다.
물론 지금 머리 속에는 [엄마의 유산 2]가 벌써부터 하나씩 떠오르고 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아이들을 키우며 나눴던 대화, 이룬 결과들을 총망라해서 한줄한줄, 그렇게 편지 한통씩을 써내려갔고 글보완작업을 거의 1년을 넘게 해오면서 최근 서너달 최종수정을 거쳐 방금 전 탈고했다.
나는 땅벌보다 더 지독한 엄마가 된 것도 같고 땅벌처럼 지독해지려면 아직 먼 것 같기도 하지만 땅벌과 나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면, 남기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는 것이다.
손에 쥐어주는 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엄마 곁을 떠나 각자의 삶 속에서 살게 된 '갓 어른이 된, 어른의 이유기를 사는 두 자녀'를 위해 그들이 앞으로 살면서 만나게 될 시간과 관계, 현상 하나하나에 정신의 숨결을 넣어준다면 우리 아이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어 즙이라도 짜내는 그 심정만큼은 땅벌과 내가 같은 듯하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의 관계에서
세대에서 세대로,
부모에서 자녀로,
우리는 물리적 연결를 뛰어넘어
정신의 연대를 이루고
시대를 연계하는 관계로 남을 수 있는 길을 만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이 [엄마의 유산]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우리는 그렇게 연결, 연대, 연계되어 있으리라는 확신도 든다.
이런 맘으로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다.
사실 자녀를 위해 시작한 편지가
MZ세대를 대상으로 쓰는 편지가 되었고
MZ세대보다 엄마들이 더 많이 읽는 편지가 되었다.
그렇게 1차가 발행되고 2차로 양이 늘어 발행되고 이제 책으로 엮어 곧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엄마의 유산]의 출간을 결심한 이유는 '엄마인 나'에게 묻는 질문과 '어른이 된 자녀'에게 묻는 질문들에 대해 스스로 해답을 찾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어른의 어른'이 되려면 나는 무엇을 더 배우고 쌓아가야 할 것인가?
'어른이 된 자녀'의 눈에 비친 '엄마라는 어른'은 어떤 사람으로 보여져야 할 것인가?
나중에 이 세상에 없는 '엄마인 나'를 자녀들이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는가?
그리고
너의 인생을 너답게 살지 않는다면 인생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겠니?
너의 삶이 너의 색으로 채색되지 않는다면 누구의 삶을 산다고 하겠니?
너를 위해 무상으로 베푸는 대자연의 신비와 이치를 알지 못한다면 네게 함수처럼 다가올 미래의 시간들을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해석해 나갈 수 있겠니?
글은 정신의 표현이다.
편지는 마음의 표현이고
글로 쓴 편지는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바치는 선물이다.
우리 모두는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아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존재일지 모른다.
미숙했던 내가 살아온 삶이지만 자녀의 두 손에 쥐어짐으로써 그들은 자기가 아는 자신보다 더 위대한 삶을 살아내길 간절히 바란다. 어쩌면 이런 맘으로 엄마의 유산을 이 지면을 통해 한통씩 매주 다시 꺼내놓을까도 생각중이다.
미숙했던 엄마로서의 나이지만 이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조금이라도 옳은 방향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며
또 미숙했던 청춘을 보낸 내가 지금 청춘을 사는 MZ들에게 강인한 정신을 알려주는 괜찮은 어른이 되어주길 바라며
이제 [엄마의 유산]은 내 손을 떠났다.
디자인을 거쳐 세상속으로 흘러가 자기 길을 가겠지.
그렇게 나는 글에 어울리는 삶을 또 하루하루 살아가면 되겠지.
글이 책이 되고 책은 나와 세상속 누군가를 또 이어주겠지....
주1>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