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정신'이 '시대정신'
22년전 오늘 딸아이를 낳았다. 그러니까 오늘이 딸아이 생일이다. 50킬로그램대의 내 몸무게는 임신 3개월이 될 때부터 엄청나게 불어나더니 결론적으로 만삭이 되었을 땐 무려 90킬로그램대에 진입해버렸다. 임신중독까지는 아니었지만 마치 미**타이어와 같이 불어난 몸에 240인 발도 퉁퉁 부어서 270짜리 슬리퍼를 사서 신어야 할 정도로 나는 거구가 되었고 뒤뚱거렸고 무진장 먹어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시절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대단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팠고 기대지 않고는 앉을 수가 없었고 숨이 차올라서 오래 누워있지도 못하는, 말 그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편하지 않은 몸뚱이가 당시 내 몸이었다.
그래도 그런 뒤뚱거리는 걸음으로 태교라는 걸 하겠다고 뜨개질을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아이가 돌이 되면 아빠랑 세트로 입히겠다고 맞춰서 뜨고 모자, 망토, 작아진 내 옷을 잘라서 뜨개실로 어깨끈을 이어 만든 원피스에 가디건까지. 아무튼 뜨개책을 낼 정도로 뜨개질했던 기억.
20대를 온통 바쳤던 방송일의 불규칙성때문에 나의 위염은 늘 고질병이었는데 임신하자마자 염치없는 위장은 늘 구토와 헛구역질을 해대게 했지만 약을 먹을 수 없으니 위에 좋다는 양배추를 매일 먹어댔는데... 아마도 그 때 믹서기에 갈아먹은 양배추가 평생 먹은 양배추보다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땐 몰랐었다. 양배추가 젖말리는 데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나는 아이를 낳고 유축기로 아무리 젖을 짜도 늘 모자라는, 젖이 너무 빨리 말라버린 원인이 양배추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모지랭이 초보엄마였다.
그러다가 24시간이 넘는 진통끝에 탈장까지 되면서 결국 자연분만으로 낳은 아이가 벌써 22살. 남자들 군대랑 축구얘기만큼 재미없는 얘기가 여자들 임신과 분만얘기라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10달 내내 힘들고 아플 줄 알았더라면 시작을 못했을 일이었다. 그런데 어쩌리. 날 찾아온 아이때문에 고통을 없애는 방법은 건강하게 얼른 순산하는 길밖에 없는 것을.
이 이야기는 지난 22년 7월 삶을 힘들어하는 새벽독서 멤버들에게 쓴 글로 대신하려 한다.
우리는 강한 사람이다.
강한 여성이고 강인한 엄마다.
우리모두는 자신의 삶 곳곳에서 증명해낼 증거들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일단 병원에서 포기한 아이를 살려낸....
나는 그런 엄마이고 그 내용을 간단하게지만 잠깐 카페글로 대신하려 한다.
(카페글은 새벽독서멤버에게만 공개되어 있어 부득이하게 캡쳐하여 올립니다)
아이는 벌써 대학 4학년이다. 백일이 지날 때까지 2.5킬로그램밖에 안되는 아이를 0.1킬로그램이라도 키워내는 것만이 유일한 내 숙제였고 하루종일 아이가 먹고 싸는 것에만 집중해야 했던 그런 질긴 시간들이었다. 그렇게 내 몸은 너덜거렸지만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는(병원에서 포기한 아이여서 엄마인 나냐 신이냐. 이 갈림길에서 아이는 위태로웠다.) 그렇게 초등학교때까지 작고 삐쩍 말랐던 아이가 지금은 너무 건강한데다 매주 연주다니며 여기저기 여행다니며 학교 수업은 단 한번도 빼먹지 않을 정도로 자기 역할을 잘 해내는, 멋진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다.
언제 이렇게 커버렸는지 며칠째 친구, 선후배들과 생일파티다. 인기많은 딸은 여기저기 잘도 불려다닌다. 생일당일인 오늘도 친한 언니가 미역국사준대서 나는 미역국도 안 끓이게 됐다.
좋아해야 하나.. 섭섭해해야 하나....이제 붉은수수팥떡도 안하고 잡채도 안하고 아무 것도 안해도 되는 이상한 생일날이 됐다. 매년 생일마다 선물하는 그것만 사주는 걸로 퉁치잖다. 시원섭섭하다. ㅎㅎ
두 아이를 낳은 것이며
내 목숨보다 귀한 두 아이의 꿈을 위해 보편에서 멀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늘 7월이 되면 아프다.
몸이 쑤시는 것도 있지만 그냥 가슴이 아프다.
아이를 자랑삼지 말고 아이가 자랑스러워하는 부모가 되라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곳이 엄마의 치마폭이라는 누군가의 조언대로
그렇게 살아온 것 같긴 한데...
지금 나는, 앞으로의 나는 더 단단히 이 뜻을 지켜낼 수 있을까?
그렇게 아팠던 아이만 살려주면 뭐든 하겠다던 나와의 약속은,
아니 신과의 약속을 나는 얼마나 지켜내고 있을까...
* 부모라면 누구나 함께 공부하고 자신의 굳은 인식을 깨고 새로운 지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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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북살롱]
[지담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