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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pr 25. 2024

발아(發芽)를 시작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공개합니다

나는 딸하나, 아들하나. 연년생을 키우는 엄마다. 딸은 대학4학년,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은 지금 군대에 있다. 내게 두 녀석은 보물같은 존재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또 두 녀석을 위해 내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도 알게 하는 강력한 동기의 주체다. 딸아이는 내게 엄마같고 아들은 내게 연인같다. 


어려서부터 '우리 엄마~~'어쩌구저쩌구 하는 노래를 지어서 불러주었으며 엄마보다 훨씬 커진 지금은 엄마를 안아서 들었다 놨다 부비다 어깨에 손을 턱! 올려놓기도 하는, 진짜 연인같은 우리 아들...아들이 미국의 유수한 대학에 장학금까지 받고 간 나름의 개인역사에 대해 부모교육이나 부모독서토론을 할 때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왜냐면...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그런 루트와 전혀 무관했기 때문이다. 


아래는 아들에게 편지(2022. 2. 18. 대학입학을 앞둔 시점)인데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지만 이를 통해 엄마와 아들의 관계를 너머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엄마지만 '꿈' 하나 제대로 심어서 '한 아이의 꿈'이 아이가 어른이 되며 어떻게 이어져가는지를 간접적으로라도 이야기하고 다. 이유는... 글과 삶이 다른 것이 싫어서다. 이렇게 말하고 쓴다면 내 일상도 그래왔어야 한다. 매주 목요일 '엄마의 유산'을 연재했고 이어 '부모정신이 시대정신'을 연재하는 지금, 과연 글쓴이는 어떻게 아이를 키웠을까? 글처럼 아이를 키워도 될까?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이 편지글이 어느 정도는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때문이다. 




우선, 아들 고마워! 편지 공개 허락해줘서!!! 


엄마가 왜 공개하는지 네가 알겠지만 엄마 주변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그냥 몇년 앞선 동네 형아, 오빠가 이렇게 꿈 하나로 자신의 모든 환경을 이겨낸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아. 자신이 네모인데 세모에 맞춰서 사는 동생들도 많구 자신이 네모인지조차 모르는 친구들도 많아. 심지어 네모인 아이에게 세모처럼 살라고 다양한 이유들을 들이미는 부모들도 많아. 그래서 우리의 지난 십수년이 그들의 불안감을 조금은 덜어내고 용기를 줄 수 있을지 몰라...고마워, 아들. 그리고 덕분에 엄마도 너와의 시간들을 요리조리 떠올리느라 행복했어!!


할머니 표현대로 '조선팔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 사랑하는 아들과 떨어져 산지도 벌써 4년째. 어떻게 그렇게 어린 너를 아무 연고도 없는 그 깡촌으로 보낼 용기가 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우린 너무 용감했다. 그 때 우리는 분명 이성적이진 않았어. 그저 무언가가 이끄는 힘에 의해 그리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아. 엄마가 늘 말하듯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되어진'.

아들이 어려서부터 젤 좋아하던 동물병원놀이

지금까지 엄마가 성적표를 보자고 한 적이 있었나? 그래선지 엄만 네가 공부를 잘했는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어. 엄마 기억은 항상 너랑 거미잡으러, 도룡뇽알 나뭇잎으로 숨겨주러, 파충류샵에 놀러 갔던 기억들만 가득하니 말야. 한 때 아빠가 '수학을 이것밖에 못하냐'고 호통을 치고 네가 철철 울면서 엄마 등에 숨었던 기억이 있는 걸 보니 넌 결코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아니었던 것 같아. 그치?


엄마한테 수학보습학원 딱 1달만 다니게 해달라고 졸라서 엄마가 보냈던 기억이 있긴 한데 그 때도 왜 수학을 배우러 학원에 가지? 엄마는 이해하지는 못했었어. 그 흔한 학습지도 한 번 안해보고, 한글도 떼지 않은 채 학교에 들어갔던. 지금 생각하면 무지하게 용감했던 우리였다. 그치? 


엄마는 공부가 참 중요하지만 공부보다 네가 어른으로 살아갈 100년 이상을 위해 어른이 되기 전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너는 어릴 때부터 아주 천...천...히 가는 아이였어(달리기빼고). 유독 순수하고 성실한 우리 아들은 지독하게 낯선 것을 경계하고 인위적인 것들을 잘 따라가지 못했어. 말도 느렸고 한글도 느렸고 암튼 뭐든 느렸어. 친구들도 많이 다양하게 사귀기 어려워했고 태권도 다니면서도 줄곧 누구를 때리는 것 같아서 싫다했고. 특별히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그래서 조금 걱정스러웠던 그런 아이였지.


그런데 너는 참 다른 아이들이 하지 않는 짓들을 많이 했었어. 네가 초등학생일 때 어느 날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하며 빨리 오라고...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피흘리는 비둘기를 안고 용기내서 근처 부동산에 들어가 다급하게 엄마에게 전화했던, 엄마는 무슨 큰 일이나 난 줄 알고 놀랐었고... 어디서 주웠는지 검정비닐 안에 (지금 생각해도 끔찍한) 다 죽어가는 비둘기를 넣고 꼭 껴안고서는 얼른 병원가자며 울던 너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틈만 나면 들렀던 청담동의 파충류카페

암튼, 너의 순수함에 엄마는 쩔쩔 매면서 동물병원으로 차를 돌렸지. 물론 엄마는 어른이라 아무 곳에서도 치료받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런 말을 네게 해주는 건 어른으로서 부끄러웠었지. 그렇게 2~3군데 병원을 간 후에야 너는 포기하고 집에 데려가 상자에 넣어두고 네가 몇날몇일을 정성껏 치료해주는 걸 지켜봤지. 결국, 비둘기는 하늘나라에 갔지만 그 녀석은 행복했을거야. 생의 마지막에 네 품에서 지극정성어린 보호를 받았으니 말야.


친구들이 잠자리 꼬리자르며 논다고 식식거리며 분노의 울음을 터트렸던 기억, 친구들 집에서 죽어가는 올챙이들을 죄다 가져와 우리집을 개구리 왕국으로 만들고서는 걔네들 먹여야 한다고 살아있는 거미, 개미 잡으러 비오는 날 무지무지 돌아다녔던 기억. 네 키가 그 때 너무 작아서 높은 곳에 집을 지은 거미는 전부 엄마가 잡았잖아. 살아있는채로 잡아야 한다는 네 잔소리 엄청 들으면서. 그 때 네가 엄청 다그쳤던 거 기억나?


비온 뒤엔 냅다 밖으로 나가 비맞으러 길가로 나온 지렁이들을 손으로 잡아 풀밭으로 옮겨주는 게 일상이었고 게다가 마트라도 가면 거기 진열된 무슨 벌레부터 고슴도치, 이구아나 등등, 그 녀석들을 그냥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얘네들 온도가 안 맞는데.', '얘네 이렇게 가둬두면 안되는데'하면서 사육조건을 엄마한테 말하며 늘 눈물을 글썽거렸었어. 넌 그렇게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다른 아이들이랑 달랐어. 


근데 그 때 엄마가 마트에서 했던 말 기억나? '네가 힘을 갖게 되면 이 불쌍한 녀석들이 이렇게 아무렇게나 진열되어 사고파는 문화를 없앨 수 있는 기준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고. 어떤 공부든 나를 힘있게 하는 공부여야 하고 힘을 가지면 반드시 써야할 곳에 써야 한다'고 했던 말. 그 때 참 어렸었는데도 아들은 엄마가 하는 말을 참 잘 귀담아 들어줬었어. 그 조그만 입으로 뭐라뭐라 물어가면서.

파충류사육장 만드는 중

그것뿐만이 아니지. 처음 키우기 시작한 파충류로 인해 우리 집 냉장고는 핑키(핑크빛새끼쥐), 메뚜기로 가득차 엄마가 한동안 냉장고 근처도 가기 싫었던 기억. 택배상자 열었다가 온집안에 귀뚜라미가...아... 귀뚜라미 천마리가 그 안에 있었을 줄 누가 알았겠니... 그 때 한철 내내 우리집은 가을이었어. 귀뚜라미 귀뚤귀뚤 울어대는... 생각나지?. 


파충류집을 제대로 만들어주자고 근처 시골의 한 목재소를 찾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어떻게든 만들어냈던 시간들, 새들이 의외로 자기 집을 못짓고 아무 데나 알을 낳아 새끼들이 부화하지 못한대서 20개나 되는 새집을 만들어 긴 사다리 빌려다 벌벌 떨며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가 매달아줬던, 그렇게 알을 낳고 부화한 것까지 여기저기 자랑하며 기록했던 기억. 

직접 만든 사육장

이 모든 장면들을 가끔 사진으로 볼 때마다 울아들은 공부는 전혀 안하고 오로지 들로 산으로 벌레들, 파충류들 쫒아다닌 기억밖에 없어. 


친구들이 학원 안가는 널 엄청 부러워했지만 친구엄마들은 너랑 어울리는 걸 좀 꺼려하기도 했었다! 넌 모르겠지만. 

직접 달아준 새장에는 이렇게 아가들이...

그런데 아들, 네가 모르는 게 또 있어. 사실 엄마는 아주 갈등이 많았었어. 학교선생인 네 두 이모들이 '그렇게 키우다가 큰일난다', '학원이라도 보내라', '지금 그렇게 놀리면 나중에 크게 울일 생긴다', '파충류좋아하면 못 먹고 산다'. 둘 다 학교 선생이니까 무시할 수 없는 발언들이었고 게다가 아빠마저 '토할 정도로 공부해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며 엄마와 많이 다퉜었지.


기억할 거야. 네가 파충류키우는 거 아빠에게 허락받으려고 엄마랑 하루 종일 작전짰었는데 아빠가 오시자마자 너는 네 방에 들어가 쩔쩔매고 있었었지, 네가 원하는 거니까 엄마가 대변해줄 수 없다고 네가 직접 아빠에게 허락받아야 한다고 엄마는 단호했고. 너는 겁에 질렸었고. 암튼 그래서 엄마가 네 등을 쓸어주며 '네 진심을 아빠한테 말씀'드리라고. 그런데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아빠가 말씀하시는 조건도 네가 잘 들어야' 할 거라고. 그렇게 어렵게 승락을 받고 본격적으로 우리집은 파충류에 거북이에... 암튼, 그렇게 점점 동물원이 되어 갔지. 그치? 그래도 고마웠다. '뱀'까지는 키우지 않아줘서. 


다른 친구들 학원갈 시간에 파충류랑 산책하고 얘네들 키우는 게 일상이었던 아들


음... 가만 생각해보면, 엄마도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났는지 잘 모르겠어. 누나랑 너에게는 어려서부터 '꿈'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말했던 것 같아. 늘 '꿈이 있어야 한다.', '꿈을 위해 살아라.', '꿈이 있으면 뭐든 원하는대로 이뤄진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엄마에게 그리 만들었을까? 잡지에서 자신의 꿈과 관련된 다양한 사진들을 오려서 벽에 붙이기도 했었지(그 때 네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기억나지?


그 때 더 확실히 알게 됐어. '우리 아들은 정말 동물을, 파충류를 사랑하는구나.' 

그 때 엄마랑 약속했던 거 기억나? '치트완국립공원'에서 1달 살기, 갈라파고스군도 손잡고 가기. 엄마가 아직도 그 꿈을 너와 함께 이루지 못해서 미안하다. 하지만 꼭 하자! 꼭 가자! 울아들 꿈노트에, 엄마 꿈노트에 함께 적었던 그것들 우리 꼭 이루자!


지난 10여년은 아슬아슬했던 시간들이었어. 항상 한국교육의 언저리에서 너라는 아이가 과연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자칫 엄마의 그릇된 판단으로 네 미래를 혼란스럽게 만들면 어쩌지? 혹시 꿈도 꺾이고 학교도 제대로 못가는 사회낙오자가 되면 어쩌지? 이 경계에서 엄마는 조금 힘들었거든. 그리고 너도 15살이라는 어린나이에 미국생활이 만만치 않아 방학에 한국올때마다 가기 싫어했었잖아. 두려워했었구. 그 때도 엄마는 또 심하게 망설였었지. 지금이라도 포기하고 한국고등학교에 보내야 하나 어째야 하나...과연 수업은 따라갈 수 있을까... 


양치질도 모르고 축구공을 난생 처음본 오지로 자원봉사떠난 아들 


하지만 엄마는 분명한 기준이 있었던 것 같아. 너의 순수한 파충류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고, 멸종해가는 이 녀석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도 인재가 필요할 것이고 이같은 업(業)은 본능적으로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못해낼 일이라는 것. 그러니 너는 파충류에게 참으로 필요한 인간이고 세상은 파충류가 멸종되도록 두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너는 세상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고. 그러니 네 꿈을 키워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라는. 어쩌면 엄마의 백마디 말보다 2년에 한번씩 만났던 제인구달, 최재천박사님의 정성어린 조언이 어린 네게 큰 꿈으로 심어진 것 같아. 


다른 아이들의 일상인 학교-학원-집-게임과 너는 전혀 다른 행보를 걸었지. 학교-들로 산으로-너의 꿈을 키워줄 어른을 만나러-세상을 보여줄 수 있는 오지로.... 그렇게 너는 조금씩 너의 꿈으로 한발한발 다가갔어....오로지 꿈으로 향한 길....


제인구달, 최재천박사님이 운영하는 재단에서 10여년 활동했던 아들


너무 단순한 논리 덕에 어쩌면 네가 미국의 깡촌으로 유학을 가는 길이 트였고 우리는 아무 준비도 없이, 정말 영어공부도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딱 2달의 고민 후 결정내리고 그냥 넌 떠났지. 엄마는 널 보냈구. 15살. 중졸.  어학연수니 그런 거 없이 바로 입학. 심지어 엄마도 없이 혼자. 

정말. 우리 단호했었다.


엄마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 넌 알거야. 늘 같은 래퍼토리니까.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말 그대로 '네 꿈'을 위해 넌 무시무시하게 낯선 길을 간거지. 엄마가 천만번도 더 얘기했던 것처럼. 세상이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남들은 이것이 어렵다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너무 단순하잖아. 네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심겨진 씨앗이 있을거야. 그게 세상이 너를 통해서 창조하고자 하는 현실이야. 


아주아주 네가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짖궂지 않았던 것은 네가 소심해서가 아니라 너는 남달리 생명에 대한 관심과 온화함이 깊었던거지. 함부로 개미조차 밟지 못하고 비온 뒤엔 사람들 발에 밟힐까 봐 지렁이 치워주러 온 동네를 다녔던 녀석이었으니까. 엄만 너의 그 성향이 정말 세상에 필요한 성향이라고 판단했거든. 그걸 도와주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믿었고. 

전세계 5위안에 드는 수의학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입학

네가 엄마한테 네 모습을 늘 자연스럽게 보여줘서 엄마가 볼 수 있었어. 그리고 너의 소중한 마음은 그 어떤 공부보다 중요한 것임을 엄마는 온가슴으로 느꼈던 것 같아. 결국, 넌 해냈잖아. 단 한번도 엄마가 가서 도와주지 못했지만 영어도 못하는 네가 그 낯선 환경에서 결국엔 수의학쪽으로는 미국 3위안에 드는 학교에 당당히 장학금 4천만원까지 받으면서 입학해냈잖아. 


네가 일군 결과는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기적... 꿈이 현실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은 우연의 연속으로 이뤄진 기적같은 행보지. 너는 '꿈'을 꾸면 이뤄진다는 것을 증명했다고밖에 말할 수 없어. 세상이 너라는 아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현실을 이뤄가는 중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어. 단 한번도 유학준비를 한 적이 없고 미국에 연고가 있거나 어떤 기가 막힌 정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이건 네가 읽은 파올료코엘뇨의 연금술사에서 말하듯 '간절히 원하면 우주가 소망을 이뤄준다는' 것을 네가 경험한 거야. 엄마가 이 책을 너 어렸을 때 읽혔던 거 참 잘한 것 같아. 우리는 이걸 믿었잖아. 아주 강하게.


아들! 넌 분명히 너 스스로 증명해냈어. 

영어도 못하고 아는 사람도 없고 능력도 없고 세상이 캄캄해도 '꿈'이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을. 

엄마아빠가 옆에 없어도 '꿈'꾸는 이에게는 어떤 방해물도 오지 않도록 세상이 널 보호해 준다는 것을. 

'꿈'이 있다면 못하는 영어도 극복하게 하고 외로움도, 두려움도 그 무엇도 널 방해할 수 없다는 것을. 

게다가 '작은 꿈'은 '큰 꿈'을 견인한다는 것도. 

'꿈'은 너의 '미래'를 더 키워준다는 것도. 


애초에 파충류가 좋아서 시작했던 작은 꿈들이 동물과학에서 야생동물수의사가 되는 것으로 네 꿈이 점점 커지잖아. 그리고 또, '꿈'은 돈도 벌어준다는 것도 알게 됐지. 장학금 4천만원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거든. 한국에서는 아마 네가 대학이나 갔을까 몰라. 미안.^^

중학교 때 여러번 읽혔던 파올로코엘뇨의 연금술사

아들! 꿈이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지.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고마워할 줄을 잘 몰라서 그 사실을 금방 잊어. 꿈이 현실이 될 것 같을 때, 그러니까 잡힐 것 같을 때, 꿈꾸는 미래가 내 것이 될 것 같을 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하다고 여기지만, 꿈이 있는데도 안될 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일 때는 현실의 모든 것을 원망하게 되잖아. 넌 겪어봤으니 엄마가 지금 하는 말을 잘 이해할 수 있을거야. 


결국, 삶을 이끄는 것은 '꿈'이야. 꿈이 잡힐 것 같기도, 잡히지 않을 것 같기도 한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계속 인간은 우왕좌왕하지만 먼 미래를 보면, '꿈'이 너를 이끈 것이야. 앞으로도 언제든 네가 경험한 이 증거들을 믿어야 해.


'꿈'을 꾸고 '꿈'이 너의 안에 터를 잡았다는 것은 그 '꿈'이 현실이 될 때까지 세상이 너의 스폰서가 되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것이고 자연이 너에게 모든 것을 지원해주겠다는 거래를 해낸 거야. 왜냐면, 자연은, 세상은, 인간 개개인을 통해 자신의 창조물을 창조시키거든. 사람들이 믿든 안믿든 자연은 그렇게 인간에게 씨앗을 심어서 세상에 내보내. 그런데 네가 너무 충실히 순수하게 그걸 잘 따라준거야. 그래서 네가 품은 씨앗은 발아한 것이고 믿지 않는 이들의 씨앗은 아직 발아하지 못한 거지. 그리고 발아한 씨앗은 이제 너를 통해서 세상으로 죽죽 줄기를 뻗어 나갈거야. 


한마디로, 

너는 너의 씨앗을 발아시키는 토양인 것이야. 

토양이 가장 중요한 바탕이니까 너는 너 자신을 잘 가꾸는 것에 집중해야 해. 결코 영양분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너라는 육신을 잘 가꿔나가야 한다구. 왜냐면, 네 꿈이라는 씨앗이 세상에서 널리 멀리 그리고 이롭게 쓰이려면 토양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잖아! 

미국에서 힘들 때마다 꺼내읽게 했던 오그만디노.

그 어떤 경우에도 자연은 자기가 선택한 너라는 사람을 결코 쉽게 내치지 않고 너를 곤경에 빠뜨리지도 않을 것이며 만약, 네가 곤란한 지경에 처한다면 그것은 자연이 더 토양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비를 뿌리는 것과 같은거지. 혹 네가 고통스럽고 두려움에 휩싸이더라도 자연이 인간을 더 강하게 하기 위해서 천둥번개로 겁을 주는 것과 같은거라구. 그러니 넌 어떤 상황에서든 보호받는 사람이 되는거야. 이 말, 이해할 수 있겠지? 


고통과 시련, 두려움과 좌절감 같은 것들도 너에게서 해야 할 역할이 있어서 너에게 가는거야. 왜냐면, 그걸 통해서 네가 없던 근육을 만들고 그 근육이 있어야만 그 다음 길로 갈 수 있거든. 고속도로에는 항상 터널이 있는 것과 같이 반드시 네게 필요해서 너를 찾아가는 감정들이니까 그 감정들까지도 감사히 받아들이는 어른이 되어야 해. 감사한 것은 소중한 것이지? 두려움이나 좌절감도 잘 보듬어서 잘 가게 해야 해.


사실, 너의 유학비는 만만치 않아. 그동안 엄마가 모아놓은 모든 자금을 다 써버리고 지금부터 들어갈 돈도 만만치 않지만 네가 가는 길이 너무 소중하고, 좀 전 말했듯이 세상이 너의 꿈이 현실화되길 원한다면 너의 꿈을 현실적으로 지원할 엄마도 거기 동참시켜서 결코 힘들게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엄마는 믿거든. 그래도 가끔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원망도 있어. 하지만 지금 아무리 되씹어봐도 후회는 없어. 원망은 있는데 후회는 없는, 이상한 감정이지? 그리고 너무 행복해. 그래서 이런 행복을 주는 너에게 너무너무 고맙구. 네 꿈이 소중한 것은 세상에 제대로 이롭게 쓰일 꿈이기 때문이야. 엄마도 너를 통해 덩달아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 된거잖아. 그러니까 너무너무 감사하지.


넌 '꿈'이 있는 사람은 자신과 관계된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친다는 것도 증명해 낸거야. 너로 인해서 엄마도 하루하루 허투루 살 수가 없어. 혹 우리 아들의 꿈에 지장이 될까봐 세상에 도움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엄마뿐이겠어? 큰이모도 작은이모도 이제는 알잖아. 어떻게 유학준비도 없이 훌쩍 떠나서 그 학교에 장학금까지 받고 갈 수 있냐고. 역시 아이들은 꿈을 키워줘야 한다고. 꿈이 있으면 잠재력이란 건 무섭게 드러나는 거라고 이제 말하잖아. 교사인 이모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모들도 교단에 설 때 그런 마인드로 학생들을 대할 것이고 학생들도 그 영향을 받을 것이고... 꿈은 이렇게 강력하게 전파돼. 넌 많은 어른들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그것을 정말 잘 알려줬어. 증명해준 것이지. 네가 네 꿈에 집중하는 그것이 주변을 변화시키고 있는거야. 심지어 어른들의 고정관념까지.


그러니 아들.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그 어떤 의도도 갖지 말고,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말고 그저 꿈이 널 이끄는대로 따라가. 분명한 기준이 세워져 있으니 항상 그 기준으로 판단하면 돼. 기분말고 기준으로! 세상은 점점 인공적으로 변해가겠지만 반면 지켜야 할 것들을 잃지 않기 위해 엄청난 돈을 쓸거야. 특히, 생명체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보호를 할 수밖에 없어. 너같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이 뼈속까지 담겨 있는 전문가는 아마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몸값이 치솟을거야! 정말 '세상에 잘 쓰이는' 사람이 되는거지. 그러니 돈을 의도하지도, 직업을 찾지도 마. 그저 네가 좋아하는 그 일을 그 어떤 누구보다 프로답게 할 수 있게끔 너를 키우는 것에만 집중해야 돼. 지금처럼. 계속계속.


가끔 네가 흔들릴 때, 그러니까....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에서 대학가면 안되냐고 할 때, 대학가면 '이제 홈스테이도 아니고 기숙사 들어가면 난 더 아무도 없고, 두려워'라며 살짝 울음섞인 목소리로 엄마랑 통화할 때 엄마가슴도 찢어졌어. 저 멀리 타국에서 아들이 두려워서 우는데 같이 울어주지 못하고 단호했던 거 진짜 미안해. 하지만 이런 엄마여서 네가 아마 고민이 있거나 선택의 기로에선 엄마에게 조언을 들으려는 거겠지. 엄마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네가 원하는 너의 미래에 네가 잘 갈 수 있도록 네가 완전히 어른이 될 때까지 이끌어주는 어른이어야만 하기 때문에 네게 '엄마'보다는 '어른'으로의 역할을 해야 할 때가 있어. 한마디로, 냉정해야 할 때 냉정해질 수 있는 것은 엄마가 너로부터 동요되는 감정때문에 너를 약하게 만들고, 너의 미래도 희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널 많이 사랑하기 때문에 더 그래야했어. 

영화, 말리피센트

말리피센트라는 영화봤지? 아이의 삶이 필요로 하는 모험을 박탈하는 부모는 오히려 아이의 의식을 파괴하는 마녀인 거잖아. 엄마는 마녀되기 싫어! 


그런데 이제 네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엄마역할이 점점 없어져 가. 이제 너는 대학 1학기 보냈을 뿐인데 너무나 학교를 좋아하는 네가 신기해! 그 대단한 학교에 한국인은 네가 유일하지. 정말 지독하게 외로웠을텐데도 하고 싶은 공부가 이렇게 재밌는지 몰랐다고 들뜬 목소리로 얘기하며 고등학교때보다 더 공부를 열심히 하니, 공부 못(안)하고 들로 산으로 너의 꿈을 쫒았던 것이 얼마나 잘한 것인지... 


그래선지 매일매일 더 커지는 너의 꿈과 더 다양한 경험을 스스로 찾는 너의 행로에 엄마는 너와의 통화가 너무나 기다려지고 고마워. 네 덕분에 엄마도 '엄마의 꿈을 이룰 수 있겠다. 저 어린 아들도 했는데 난들 왜 못할까.' 이런 생각도 들고... 엄마에게 용기줘서 고마워. 군대에 가서도 그 동안 못읽었던 책이나 왕창 읽겠다며 매일 책을 곁에 끼고 사는 네가 너무 고마워. 엄마가 몇년전에 네게 물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여기에 네 대답은 '책벌레지'... 엄마는 아무것도 해준 것 없이 너무너무 미안한 게 많은데 그래도 네가 늘 책읽는 엄마 옆에서 늘 책읽는 어른이 되어가는 것도 너무 고마워.


지금까지 엄마가 쓴 내용을 죽... 읽어봤는데 참 다행이다. 너에게 쓰는 편지에 걱정스러운 글이 없어서. 이게 지금 우리의 현실이잖아. 앞으로 10년 뒤, 네 나이 30이네? 그 때 우리 아들이 한국에 있을지 미국에 있을지, 아니면 저어기 어디 밀림에 있을지 모르겠지만 너의 꿈이 현실이 되어 그 때도 엄마가 이런 기쁨의 편지를 쓰게 되길 바래. 물론, 엄마는 믿지. 엄마는 항상 너를 믿어. 


이제 대학교 1학년(비록 지금은 군대에 있지만)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네 꿈에 발동이 걸린거야! 

우리 잘해내자!!!! 

네 말대로 하고 싶은 공부는 너무너무 재밌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잔소리 쪼금 해도 되지?

엄마가 골백번도 더 얘기한 거지만  

무조건 하루 30분 이상은 책을 읽어 의식을 깊게 하는 공부를 해야 해.  

영양제 잘 챙겨먹어, 너는 아직 성장기고 거긴 엄마가 없잖아. 인스턴트에 길들여진 육체는 곧 정신을 파괴하고 그러면 너의 꿈도 사라지고 그렇게 애써서 키워준 세상에게도 네가 등을 돌리는거야.


세상에 쓰임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단 한순간도 떨치면 안돼. 이것이 네 꿈을 지키고 너를 이 세상에 당당하게 살게 할 신념이야. 그 어떤 것에도 잘하려 하지 말고 그저 너의 꿈이 세상에 이롭게 쓰이게 너의 하루를 잘 살아가는 거 그게 진정한 이타라고 한 엄마의 말, 꼭 명심해주길 바래.


그리고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고들에서는 자유롭길 바래. 가령, 얼마전 네가 말한 성소수자들에 대한 견해나 인권, 한국교육과 같은 문제들에 있어서는 벌써 네 사고를 정리할 필요가 없어. 너로서는 이해가 안되겠지만 세상은 수많은 의미를 담아서 다양한 현상들을 분출하거든. 그러니 네 사고를 경직되게 만들어 세상이 보여주려는 조화를 알지 못하게 네 시야를 막아서는 안될거야. 그냥 이해가 안되면 안되는채로 한켠에 냅둬. 그래야 어느 시점에서 네가 더 큰 시야로 세상의 모순들을, 그리고 다양함들을 포용할 수 있어. 지금까지 네가 본 세상은 아주 일부분일 수 있거든. 앞으로 세상이 널 깜짝 놀래키기도 당황시키기도 흔들어대기도, 경우에 따라선 너의 사고를 파괴시킬 수도 있어. 그럴 때 너의 정신이 제 일을 하게 하려면 지금 겪는 작은 현상들로 네 정신을 닫아서는 안돼.


엄마 잔소리 끝!

아들, 사랑해!!!


이상이 2022년 2월 18일,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대학입학을 앞둔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글이다(중간에 군대얘기를 지금 살짝 가미했다). 아들은 군대가기 전 대학 1학년때 전교 0.1%안의 성적을 받아 성적장학금도 받았으며 현재 제대까지 1년을 앞두고 있다. 아들의 꿈은 아무리 깡촌이더라도 야생동물을 보호해주는 수의사가 되고 싶어 한다. 동물 100마리당 수의사가 1명꼴밖에 안되는 나라라서 자기가 꼭 그 일을 하고 싶다며.... 대학졸업까지는 오로지 목표를 이루는 것에만 올인하겠다며 군복무중 책을 300권 읽겠다는 포부와 여태 맥주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는 아이. 내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꿈을 펼치는 젊은 청년으로 나는 이 친구를 응원한다!! 이 친구를 통해서 세상은 뭔가 이루려나 보다....


마지막으로 변명같은 말이지만 우려섞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아들자랑하는 팔불출로 오해를 살 수도 있겠지만 이 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바는

내 아이의 꿈을 응원해주길, 부모도 함께 꿈꾸길, 그리고 나는 브런치의 모든 글에서 표현하는대로 나를 살게 하고 내 아이를 키우고 있음을, 그렇게 실천하는 학자이자 작가가 되려 한다는 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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