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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y 02. 2024

부모정신은
프로네시스(Pronesis)정신이어야

부모정신이 시대정신

여러 차례, 여기저기서 언급했던 말이지만

이제 지식만으로는 위험하다.


어제 코칭을 하면서 질문을 받았다. 

"왜 교수님은 경영학에서 지혜를 연구하셨나요? 경영학에서는 그런 연구 안하던데..." 

"음... 블라블라."


이렇게 넘쳐나는 경영이론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무너지고 개인이 가난해진다면 우리는 뭔가 놓치고 있을텐데.. 분명 이 구멍은 지혜로움의 결여일 것이고 이는 의식을 깨우는 본질적인 노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며 그래서 '경영인의 지혜'라는 개인에 대한 미시적인 연구에 발을 내딛고 주구장창 그 쪽으로만 개념잡고 철학에서 근거찾고 학습됨을 증명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고 검사도구도 만들고 학습결과에 대해 유효하다는 검증을 하고.. 

SSWB-ACT Coaching모델 (김주원)

이 과정에서 국내 최초 연구자라는 호칭도, 우수논문상을 연속3회 수상하는 쾌거도 이뤘고 23년 8/30일에는 '지혜로움의 습득', '의식확장'을 위해 개발한 코칭(SSWB-ACT Coaching)모델과 효과성도 경영교육연구 학술지에 게재됐다.


지금은 분명 불확실, 급변, 예측불가의 시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지식을 뛰어넘은 지혜로움, 초월적 지식, 허상이 아닌 

실천적 지식인 지혜(프로네시스) 

- 지금은 메타지식이라 불리는- 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정보와 지식이 넘쳐나는 세상. 이제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안다. 너무 긴 기간 배웠고 너무 많은 양을 학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건 지식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삶의 요소요소에서 우리는 결과를 성과로 얻기 위해 ‘원칙’과 ‘규율’을 만들었고 이에 준해서 ‘보상’을 받는다.하지만, 원칙대로보다 원칙에서 벗어난 융통성이 오히려 더 큰 성과를 만들어내곤 한다. 규율을 어기면서 오히려 기회를 만나기도 하고 계획에서 빗나갈 때, 내 생각밖에서 운을 접하기도 한다. 규율에 따라 일을 하지만 규율에서 벗어난 일탈이 오히려 사람을 더 가열차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프로네시스'라는 단어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분명 우리네 삶에는 지식과 지식을 연결하는, 지식의 빠진 것을 메워주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바로 이것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실천적 지혜(pronesis, 프로네시스)’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지혜롭지 못하면 삶은 어려울 것이며 아무리 원칙과 규율이 훌륭해도 융통성이 없으면 원칙은 강제와 복종인 것이다. 작금의 세상이 예측이 어렵고 급변하고 불확실하다면 우리는 더더욱 지식을 현실에 맞게 실천하게 하는 프로네시스를 습득해야 한다.


프로네시스는 ‘선(goods)', '미덕(virtue), '통찰(insight)', ’직관(intuition)'처럼 철학자나 종교인들이 주로 거론하는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에 실천을 입힌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인 플라톤 역시 지혜는 추상적이어서 특별한 사람들만 지닐 수 있는 능력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에서 지혜가 없이는 올바른 선택을 할 수가 없고 사회를 이롭게 이끌어 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설파하면서 

‘지혜를 실천하는 능력’ 즉, 

프로네시스를 

배워 익히는 것을 강조했다.


프로네시스, 실천적 지혜는 과학이다. 학문적으로도 지혜는 타당성이 입증되어 사회과학의 영역으로 진입한지 오래다. 이는 ‘진화해석학(evolutionary hermeneutics)’과 Zima(2007)의 ‘문화이론’을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론은 지혜를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구성주의적 관점은 실재의 본질, 즉, 지식이나 인간 상호작용, 과학의 본질을 파악하는 인식론적 관점으로서 실증주의와 과학주의로 대표되는 객관주의적 인식론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 가운데 하나이다. 


현 시대는 분명 ‘어지러운 혼란(Dizzying chaos)’의 시대다. 그래서 더더욱 다양성과 통일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전체주의(wholism)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전체주의적 정신은 바로 구성주의가 늘 표방하는 정신, 곧 분리나 구분이 아닌 연결과 통합의 조화와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시각에 의해 실증주의 과학관에서 비판받아오던 지혜라는 개념이 재탄생되었고 이를 시도한 분야가 진화해석학이다.


진화해석학은 '몰입'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칙산트미하이(Csikszentmihalyi & Rathunde)가 지혜의 사회과학 연구의 타당성을 논증하기 위하여 진화인식론(evolutionary epistemology)으로부터 도출하여 사용한 용어이다. 진화해석학에서는 지혜의 과학적 타당성을 위해 2가지를 전제한다. 첫 번째 전제는 인간의 행동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인지적⋅사회적⋅도덕적인 환경과 조건들로 인해 매우 다양하게 변화되어 왔다는 것, 두 번째 전제는 과거와 현재를 인과관계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다양한 조건들 속에서 수없이 변화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덕⋅ 선, 자유⋅행복⋅지혜 등과 같이 인간의 존재이유와 관련된 개념들은 지속적으로 존재해왔다. 즉, 지혜라는 밈(meme)은 수세대에 걸쳐 비교적 변화없이 전달되어 오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방향을 제시한 의미요소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혜는 인간과 함께 존재할만한 

‘적응의 가치’

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진화해석학의 주장이다. 따라서, 진화해석학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진화과정에서 변이되었거나 약화된 개념들의 본래의 의미를 되찾기 위한 시도이며 이런 이유로 지혜 연구의 사회과학적 타당성은 인정되었다.


진화해석학의 또 하나의 전제는 ‘현재는 과거의 결과’로 규정하는 것이다. 진화해석학에서 진화의 범주는 유전자를 통한 생화학적인 것뿐만 아니라 문화적 학습을 통해 매개되는 행동지침이나 감각적인 영역까지를 모두 포함한다. 즉, 현존하는 추상적 개념들에 대한 비현실적인 부분도 인과관계를 통해서 충분히 타당화될 수 있다는 관점을 지닌다. 단, 진화해석학은 과거나 현재의 것이 상대 시기보다 더 우월하거나 유용하다는 등의 이분법적인 비교나 대립의 관점은 아니다. 한마디로, 지혜라는 개념이 현재 존재하는 이유는 인과관계에 의해 분명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진화해석학은 현존하는 개념들을 과거와 연결⋅통합⋅재탄생시키는 데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아울러, 이렇게 재탄생된 개념들은 현실에서 객관성을 지닌다는 것을 가정한다. 이러한 의미부여는 구성주의적 관점의 핵심적인 연구목적으로서 비객관적이고 비현실적이면서 비정량적인 지혜의 과학적 타당성의 근거가 된다.


아울러, 지마(Peter V. Zima)의 문화이론에서는, 이론의 시작은 관심을 유도하기 위한 담론에서 비롯되며 담론의 형성은 역사적⋅사회적인 자기 비판적 관점에서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이론의 시작은 암묵적일 수밖에 없으며 특히, 사회과학에서의 이론은 인간가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문화양식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논점은 인간의 생활양식, 사회현상으로부터 시작된 이론에는 반드시 현실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추정과 사고가 내재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드러나는 현상은 하나의 사고와 상반된 사고가 함께 존재하며 이들의 합의과정을 통해 사회적⋅문화적 정체성이 형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하는 구체적인 이론과 지식의 탄생은 상반된 추상적인 그것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로 볼 때, 인류의 역사와 사회, 문화적인 기원과 함께 존재해 온 지혜는 첨단과학의 시대에 합리와 객관, 구체화된 지식과 상반된 개념이지만 사회과학에서 논의되기에 충분히 타당한 개념이며 인간의 삶에 적용되어 실천으로 유도되어야 할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헵(Donald O. Hebb)의 이라는 보편적인(universal) 명제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행동과학의 유일한 문제는 

활동의 규명이 아니라 

비활동의 규명이다’


행동과학으로 대변되는 수많은 실용학문들에서 많은 검증들이 시도되고 이를 통해 수많은 담론이 탄생하지만 결국, 우리가 증명해내야 하는 것은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비현상의 개념들을 규명해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시대의 담론으로서, 시대적으로 급변하는 패러다임의 혼란 속에서 프로네시스를 실천도구로서 근거화하는 것은 충분한 타당성과 설득력, 정당성을 지닌다.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진화는 생화학적인 것과 문화적인 학습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는 광범위하다. 인간은 진화를 통해 현존하며, 인간의 존재를 대표하는 개념인 지혜 역시 진화에 의해 현존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지식과 문화를 대변하는 과학적 이론 역시 진화에 의해 형성 및 재탄생된다. 이렇게 볼 때, 모든 이론의 형성과정에 있어 추상적인 개념은 배제될 수 없는 필연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과관계에 의해 지혜 역시 과학적 연구로서 타당한 객관성을 지니기에 실천적 지혜인 프로네시스는 삶에 적용되어 계승시켜야 할 교육이며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성공인자인 것이다. 따라서, 부모부터 실천적지혜의 개념을 인지, 삶에 적용시켜 자녀에게 계승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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