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정신'이 '시대정신'
최근 내가 가장 집중하는 작업은 '엄마의 유산'의 출간을 앞두고 계속 수정수정수정하는 작업이다.
어제 북디자이너(참고로 나는 호주에 사는 최고의 북디자이너와 이번 작업을 협업한다. 그녀의 일러스트가 부족한 나의 글에 어떤 옷을 입혀줄지, 어떻게 엄마의 간절함을 표현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와 책의 디자인에 대해 잠깐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유산'이잖아요... 유산...
그 때 난 없고 얘들은 있고...
그러니 뭔가 없는데 있는 거?
비워졌는데 채워진 거?
그렇게 공백이었는데 여백으로 남은 느낌?
그렇게 남겨지고 싶어요..."
'엄마의 유산'은 내가 지난 5년간 새벽독서를, 지난 2년간 매일 글쓰기를 통해 알게 된 것, 정리된 것, 깨달은 것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알려주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인데 독자들의 반응에 힘입어 출간을 결심했고 나의 독자였던 북디자이너인 그녀 역시 같은 엄마로서 내가 자녀에게 주고자 하는 의미의 가치를 공유해왔기에 이 작업에 흔쾌히 동의하며 우리의 공동작업은 시작되었다.
며칠 전 새벽 독서토론에서 이런 얘기를 나눴다.
'내가 '어른의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보다 더 깊게 하게 된 계기는
때문이었다'고. 그냥 '엄마'니까 좋게좋게... 뭐 이런 거 말고....
(여기서 나는 한참을 멍... 하게 앉아 있는다. 그냥 심장이... 뛴다...)
그리고 예전에, 그러니까 잘 기억나지도 않지만 지금 대학교 4학년인 큰아이가 중학교때쯤 나는 유언장을 작성해서 아이에게 주었다. 장기기증서약서랑 함께였다.
이런 말을 당시 지인들에게 했을 때 '왜 그런 짓을 하느냐? 아이가 얼마나 무서웠겠냐?'고 하던데 난 전혀 그렇지 않았었다. 왜냐면 내게 죽음이란 차원을 달리하는 또 다른 삶으로 이미 자리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연장자들은 이 아이가 철학의 영역에서 될 수 있는 대로 진보를 이루도록 모든 면에서의 배려를 잊지 말기 바란다. 또 나의 매장장소는 정원 안의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곳이면 된다. 그리고 장례에 대해서도 묘비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지출은 일절 하지 말도록(주2).' 유언으로 대표되는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가 한 말을 당시 유언장을 작성하던 그 때의 나는 몰랐었다. 하지만 나의 유언장도 이와 내용이 비슷하다. 또한, 테오프라스토스와 함께 시대를 초월한 유언으로 후세에 길이 남겨진 에피쿠로스의 유언과도 내 유언은 비슷했다.
이 무슨 건방진 소리인가! 그들의 고양된 정신과 나의 미진한 정신은 하늘과 땅차이만큼 멀지만 그들도 나도 누군가의 부모로서 자녀(후손)에게 남기고 싶은 바가 같다는 데에 나는 든든한 힘을 얻었다.
그리고 유언이라기보다 '정신적 유산'인 '엄마의 유산'을 집필하는 내내,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의 아이들이 철학의 영역에서 자신의 인생에 최대한의 진보를 이뤄내길 바라는 맘이 차고 넘치도록 간절했고 간절하다.
그저 요즘 '엄마의 유산' 탈고를 앞두고 집중해서 수정중에 있어서인지 머리 속이 온통 '어떻게 남겨질 것인가!'라는 화두로 가득차 있다. 살면서 어떤 화두에 나를 꽂아놓고 깊이깊이 들여다보는 작업은 참으로 의미있다. 모든 실존하는 것들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구성된 하나하나에 관여하는 깊이에 따라 질적으로 다른 실존이 된다.
내 몸이, 내 정신이, 내 감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보내는 나의 하루하루가 내 아이들이 배움의 소중함을 알고 배움의 방법을 찾아 늘 배우는 자의 삶으로 나를 기억해준다면, 그렇게 남겨진다면 나의 삶은... 충분히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는 부자인데 개인은 가난하고
소유는 넘치는데 정신은 무너지고
기술은 우수한데 자연은 소실되고
교육열은 높은데 교육의 정수가 상실된.
이러한 작금의 현상을 두루 볼 때
자기정신이 자아를 담아내지 못한다면
이 정신으로는 자기삶이라 꺼내놓을만한 삶을 가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삶의 모순에 빠질 위험도 클 것이다.
자녀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자기존재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없이는
자기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남들의 삶에 기생하며 살게 될 것이다.
경제적, 기술적, 정치적 접근에 대하여 '깊이의 생태학' 저자들은 삶과 마음가짐을 전적으로 오늘의 산업주의와 과학기술문명의 테두리에서 빼어내어 보다 근원적인 것에로 복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나 경제 정책적인 제안보다는 철학적인 지혜가 근본이 된다. 노자나 장자의 철학이나 이슬람의 수피즘이나 헨리데이비드소로, 하이데거 또는 자연을 주제로 한 시인들이 경청되어야 할 텍스트가 된다(주4).
김우창교수의 말에 극히 공감한다. 다 이해하지 못했을지언정 도덕경, 중용, 바가바드기타를 비롯한 인도경전, 루미를 비롯한 수피즘, 데이빗소로우나 에머슨과 같은 초절주의자들, 애덤스미스부터 에피쿠로스까지 이름이라도 들어봤다 하는 철학자들의 책까지 심각한 갈증끝에 물마시듯 들이켰던 지난 5년간의 새벽독서.
나는 철학자들, 사상가들, 그리고 시대의 위대한 정신이 이끄는 길을 배우면서 얼마나 '자신의 삶을 진지하고 가치있게' 꾸리는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알았고 금은보화를 물려주지는 못할지언정 정신은 알려주고 싶어졌다. 정신을 다 알려줄만한 그릇이 내가 못되니 어떻게 정신을 고양시켜 자신으로 향하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나의 과정을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이 벌써 10여년전 나의 유언장에 쓰여 있었고 2년간 매일 쓴 글들은 그 간절함을 하나씩 담아내는 과정인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더 간절해진다.
싱싱하던 이파리가 낙엽이 되어 한세상 바람과 신나게 놀다가 딱 자기만한 크기로 땅에 떨어져 양분이 되듯 나도 싱싱한 이파리 시기를 보내고 낙엽같은 중년을 맞으면서 바람따라 노닐다가 그윽한 자태로 나이들어 그렇게 딱 내 크기만큼 자녀에게, 그 자녀의 자녀에게 양분이 되어주고 싶다....
그런.. 어른이.. 엄마가 되어
그렇게...
그들의 기억에 남고 싶다.
남겨져야 한다.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내게 남겨진 부모의 잔재와 잔상이 내 인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내 자녀들에게 평생 행복하고 풍요롭고 평안을 주는 기억으로 내가 남겨지는 것은....
자녀를 위해
지금부터 살아갈 내 인생의 너무나 소중한 의무같기도.... 하다...
주1>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보고 자신은 신의 잔치로 초대받아 가는 것이라 언급했다.
주2,3> 그리스철학자열전,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동서문화사
주4> 깊은 마음의 생태학, 김우창, 김영사
주5> '지담북살롱' 카페에 일부 옮겨적은 나의 유언 [일부 공개된 나의 유언]
* 부모라면 누구나 함께 공부하고 자신의 굳은 인식을 깨고 새로운 지성을 배울 수 있습니다.
https://guhnyulwon.liveklass.com/classes
[지담북살롱]
[지담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