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2번째 편지
지금까지 3가지의 이유를 들어 꿈이 현실이 되는 논리를 네게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드문 것은 그만큼 어렵고 괴롭기 때문이겠지.
바깥으로 뱉어내지 않으면 고통스러운 것이
몸 속에 있기 때문에
꽃은, 핀다
솔직히 꽃나무는
꽃을 피워야 한다는 게 괴로운 것이다[주1].
장미는 장미가 되는 것만이 살면서 유일하게 해내야 할 숙명이지. 자신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것. 그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들이 가장 괴로우면서도 반드시 해내야 할 일이야. 너라는 존재도 너의 꿈을 통해 너를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가장 어려울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뱉어내지 않으면 더 괴롭기 때문에 뱉어내야만 하는 것이란다.
자기를 잃은 사람이 어떻게 사니? 무언가에 매달리고 중독되고.. 이 모든 것들이 '자기다운' 삶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런데 꿈을 향해 가는 이들의 생기넘치는 표정을 봤니? 너무나 힘들 것 같은데도 행복에 겨워하잖니.
오로지 자신이 되는 것.
오로지 자신으로 사는 것.
그것만을 위해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디는 것이지.
이렇게
꿈이란 세상에 드러낼 자신의 정체이며 현실은 꿈을 증명해낸 결과란다.
장미씨앗이 장미로서 자신을 증명하듯이 너의 꿈도 자신을 증명해내기 위해 어떤 비바람에도 견뎌낼 힘을 지닌 채 네 안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이미 네 주변에 가득해. 자연에게서 우리는 삶을 배울 수 있어.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니 모든 생명체에 무상으로 주어진 그것 역시 모두 네가 네 꿈을 위해 활용할 수 있어. 네가 그 흔하디 흔한 꽃이 주는 생명의 철학을 꼭 네게 적용하길 바래. 감사한 맘으로 겸허하게...
어려서는 수퍼맨이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축구선수가 되겠다. 수없이 많은 꿈을 꾸지. 꿈은 그런거야. 아주아주 많이 자주 다양하게 꾸기 시작하지. 그러다가 어느 하나가 네 가슴에 딱! 또는 서.서.히... 씨앗으로 심기면 꽃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것이 현실이 되게... 그러니 꿈이 네게 가는 것을 결코 막지 마. 나이와 상관없어. 죽기 직전에도 꿈을 꿀 수 있거든.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양에 상관없이 꿀 수 있어. 머리로 재단하고 가슴에서 밀어내지 말고 아주 다양하고 많은 꿈을 크게 꾸렴!!!
혹 이쯤에서 씨앗은 보이는 것이니 땅에 심을 수 있겠지만 보이지 않는 꿈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심냐고 네가 물을 수 있겠다 싶은데.. '창조'라는 개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창조는 기존에 없었던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야. 무형이 유형이 되는. 아이디어도, 컨텐츠도 모두 무형의 것이야. 우리 인간은 무엇이든 무형을 유형으로 창조하는 기능을 이미 지니고 태어났어. 네가 태어날 때 이미 너의 꿈도 함께 태어났단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 찾지 않고 알려하지 않아서 방치된 것이야.
네가 진정 원하는 꿈을 찾았다면 심어야 한다.
어디에?
너의 정신에.
더 구체적으로는 초월적인 정신에 심는거야.
장미씨앗을 심으면서 화려하게 장미가 꽃을 피웠을 때를 네 머리 속에 그리듯
너의 꿈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머리 속에 그리는거야.
그렇게 화분에 씨앗을 심듯
네 정신에 너의 꿈을 심으며 네 꿈의 결과를 상상하면 돼.
머리 속에, 마음 속에 깊이 꿈의 씨앗을 심는 것이지.
자, 네 주위를 둘러보렴.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먹는 것, 입는 것, 사용하는 모든 물건, 건물들, 모두 '상상'에서부터 시작된, 무형에서 만들어진 유형의 것들이야. 그리고 조금 보태자면, 이 유형한 것들이 다시 무형이 되지. 누군가의 호기심(무형)이 어떤 디자인의 옷(유형)을 창조했다면 그 옷이 유행하게 되고 문화(무형)가 되는 거야. 문화가 된다는 것은 보편화되었다는 의미이니 거기서 누군가는 또 독특한 무언가를 상상하고 창조하지.
모든 유형은 무형인 상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야. 이렇게 유형-무형이 연결된 하나의 고리안에서 창조가 거듭되면 체계가 만들어지고 이 체계는 제도, 관습, 법을 생산해내고 이 모든 과정을 초월한, 탁월한 누군가는 예술로 승화시켜 어떤 경지로 그것을 끌어올리지. 무형은 유형으로, 유형은 다시 무형으로, 즉, 누군가는 무형에서 유형을 창조하고, 또 누군가는 유형에서 무형을 창조하는. 세상 모든 것은 창조에 의해 창조된단다. 이 창조의 시작은 개인의 꿈이고...
이런 이유로 너의 꿈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이미 지니고 있어!
창조는 모두에게 가능하지만 자신의 정신에 창조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가슴 깊이 믿는 사람에게서만 실재화된단다. 이를 위해 지식과 기술은 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길 위에서 필요한 도구나 방법이니 인생을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만 올인하면 결코 안돼. '목적있는 삶', '창의적인 삶'을 살아야 한단다.
지식과 기술을 꿈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꿈은 없는데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곧 한계를 만나거나 아니면
남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예를 자처한 사람으로 사는 격이지.
창의는 네 가슴에 심은 무형의 씨앗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너의 정신활동이야. '창의'라는 단어가 현대사회에서 최고의 능력이라 불리는 현상만으로도 우리는 '무형의 유형화', 즉, '꿈의 현실화'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그러니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으면 보이는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해.
자, 꿈은 현실이 된다는 것이 점점 더 네 머리속에 각인되고 있겠지?
결코 의심없이 믿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씨앗을 네 정신에 심고 가슴으로 믿길 바란다.
처음 얘기를 시작할 때 인과에 대한 얘기를 했어. 원인과 결과 사이에 네가 할 일은 '반응'하는 것이라고도. 어떠한 호기심이 생기면, 즉,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그것이 원인이야. 그리고 시작이지. 호기심이 네 꿈의 씨앗인거야. 좀 전까지 아무 것도 몰랐는데 방금 네 감각에 포착된 무언가로부터 네게 호기심이 생긴거야. 그치? 네 경험이나 머리가 아니라 어디선게 네게 느낌으로 전해진거야!
세상이 네게 자극을 보낸 것이지.
이 자극에 네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무시? 판단? 해결? 아니면...?
어떻게든 네 인식이 이에 대해 반응하겠지. 말했듯이 '꿈은 허상이야'라는 관념이 있으면 무시를 택할 것이고 '꿈은 현실이야'라는 관념이라면 소중히 가슴에 심겠지. 세상이 네게 보낸 자극, 호기심은 결코 무시하지 않길 바래. 네 인식에서 계산이나 비교따위를 하며 이 느낌을 거부하게 허락해선 안돼.
이것이 꿈의 시작이거든.
창조의 씨앗이거든.
앞서 거론한대로, '반응'은 관념을 행동으로, 행동은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데, 꿈이 현실이 되는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너의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믿음'이란다.
성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싶구나.
종교를 떠나 지금까지 말한 이치를 이렇게 근사하게 단 하나로 정리한 문장은 그 어디서도 볼 수가 없었거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주2]'.
'믿는다'는 것은 바라는 것(꿈)의 실상(현실)이요,
보이지 않는(꿈) 것의 증거(현실)라잖니.
꿈은 현실이 된단다. 그러니, 꿈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은 꿈이 있어야겠지? 그러니. 꿀 수 있는만큼, 꾸고 싶은만큼, 결코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크고 다양한 많은 꿈을 꾸렴. 그리고 그 씨앗을 네 정신에 심고, 믿으렴.
씨앗은 자체에 이미 모든 비바람을 이겨낼 힘까지 내재하고 있으니 너는 씨앗을 심고 너보다는 네 '꿈'의 씨앗이 자체적으로 지닌 힘을 더 믿어보렴. 너는 그 씨앗을 세상에 내보내는 든든한 토양이면 된단다.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이치에 따라 거대한 자연은 자연의 일부인 네게서도 씨를 뿌리고 열매가 거둬지길 바라고 도울거야.
네가 꾸는 꿈은 반드시 현실이 돼.
네가 꿈을 꾸면 너는 누군가의 꿈이 돼.
그러니, 네가 꿈을 꾸고 이루는 것을 대자연과 온우주는 바라고 있어.
네가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이치로 이해되길 바란다. 원인과 결과는 같은 크기로 이미 존재한다고 앞서 했던 말, 결과로 얻고자 하는 크기만큼 이미 네 안에 그 크기를 만들어낼 작용의 힘은 내재되어 있다는 엄마의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했지?
그렇다면 이제 너는 기능인이 되어야 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기능인. 즉, 씨앗에게 양분을 제대로 제공하는 토양처럼 네 꿈이라는 씨앗이 현실로서 열매맺도록 제대로 너를 도구삼아 활용할 줄 아는 기능인.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여 네 꿈의 크기에 적합한 능력으로 널 키우는 것이 네가 해야할 전부야.
과거 네가 바래 왔던 꿈의 크기의 결과가 지금 네 현실이야.
더 큰 꿈을 꾼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너보다 더 큰 네가 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야.
원래 큰 것 안에 작은 것이 들어있는 게 당연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단다. 작은 네 안에 광활한 더 큰 네가 들어 있단다. 하지만, 너는 네 안의 더 큰 너를 끄집어내야 할 숙제를 치러야 한다는 말도 되지.
그 숙제를 해나가는 과정이 '성장'이야.
네가 꿈을 심고 믿는다면 네가 해야 할 일은 '너를 키우는 것'뿐이야. 사람들은 뭔가를 바라면서도 심지 않지. 심었다 해도 믿지 않지. '될까?'하며 자꾸 의심하지. 그러면서 자신은 운이 없다고, 되는 일이 없다고 한탄하지. 꿈이 현실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심고', '믿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자학하지. 너는 결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잔소리많은 엄마라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즉, 원하는 바를 이뤘다면,
이제 '현실화된 꿈'은 세상이 키워줄거야.
세상이 키워주려면
'꿈'의 정체가 세상의 마음에 들어야겠지?
세상은 뭘 원할까?
어떤 꿈을 이뻐하고 키우고 보호해줄까?
일단, 모두에게 이로워야겠지.
좋은 것을 남에게 주고 싶듯이 이로운 것이어야 세상은 많은 이들에게 너의 창조된 꿈을 퍼뜨리겠지.
그렇게 한 번 펼쳐진 꿈은 스스로 몸집을 부풀리고 스스로 자라나.
그러니 너는 그것의 창조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에 나태하면 안된단다.
꿈은 인격의 크기만큼 자라거든.
세상은 결코 세상에 이롭지 않은 것을 그리 오래 널리 멀리 퍼뜨리지 않아.
그리고 또 하나, 자연은 오늘도 태양을 네게 보내고 철마다 꽃으로 네게 좋은 향을 느끼게 하고 멋진 배경을 네 시야에 포착시키고 서늘한 바람으로 네 땀을 식혀주지. 자연은 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무한정 제공해. 그런데 말야. 무한정, 무상제공이라고 공짜가 아닌 것이야.
자연이, 세상이 네게 원하는 게 있어.
딱 하나!
더 큰 꿈으로 이어나가라는 것이야.
꿈꾸기를 멈추지 말고 네 속의 커다란 너를 계속 끄집어내어
더 세상을 이롭게, 조화에 보탬이 되길 바라는 것이야.
결국, 지속적으로 꿈을 꾸며 살라는 것이지.
이 단 하나가 무상으로 무한정받는 모든 보상에 대해 네가 치러야 할 대가야.
결국,
꿈을 이루는 것은 네가 세상에 빚진 채무를 갚아나가는 것이야.
그러니,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것은 당연히,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지, 네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란다.
게다가 꿈을 이루는 것은 네가 '꿈의 현실화'에 또 하나의 증거로 보태지면서 누군가의 꿈을 위한 타당한 증명이 되기에 너의 잉여를 세상으로 환원하는 행위지.
그러니,
너는 꿈을 이루는 의무를 통해 꿈을 나누는 권리를 즐기는 삶을 누리렴.
오늘도 엄마는 믿는다.
너의 오늘이... 네 꿈이 현실로 다가가는 또 하나의 날임을...
[주1] 안도현의 시 '꽃'의 일부
[주2] 히브리서 11장 1절
엄마의 유산은 브런치독자분들께서 키워주시는 글입니다. 그러니 제 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글로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프롤로그]에서 제안드렸던 바와 같이 '엄마의 유산 2 / 아빠의 유산'을 함께 이어가주실 누구라도 꼭 제게 말씀주세요.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엄마의 유산2에 함께 합니다.'라고 성함 / 연락처 / 브런치주소(없으시면 자신의 SNS) 보내주시면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