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core '엄마의 유산' - 2번째 편지
그리고 또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겨우 3회까지, 그것도 프롤로그에 이어 이제 1번째 편지를 발행했을 뿐인데...
'요즘 뜨는 브런치북'에 엄마의 유산이
4위로...
역시... 엄마의 유산은 브런치독자분들께서 키워주시는 글입니다.
그러니 제 글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글로 확산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집니다.
[프롤로그]에서 제안드렸던 바와 같이
'엄마의 유산 2 / 아빠의 유산'을 함께 이어가주실 누구라도 꼭 제게 말씀주세요.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엄마의 유산2에 함께 합니다.'라고
성함 / 연락처 / 브런치주소(없으시면 자신의 SNS) 보내주시면 되십니다.
그럼 2번째 편지 시작합니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진리란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너의 정신에 이 진리가 결코 움직이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어놓길 바래. 다시 말하지만, 꿈은 현실이 된단다! 누구나 이 진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거야.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면 '네가 꿈을 품고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는 마인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엄마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 진리를 논리적으로 네게 알려주고 싶어.
인간은 논리가 없으면 이해가 더디거나 어렵거든.
그렇게 '꿈의 현실화'에 대해 몇가지 논리를 말해줄께.
잘 이해해서 네 인식 속에, 그리고 무의식 속에 단단히 뿌리박아
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주인공이 되길 바래.
원인은 결과를 위해 작용하는 힘. 결과는 작용된 원인으로 드러나는 실재야. 네 주변의 사물들을 보렴.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지? 인과다. 후~ 불면 촛불이 꺼지지? 인과다. 뭔가를 툭 치면 넘어지지? 인과다. 책을 보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되지? 인과다. 그리고, 지금 너의 모습은 네가 지금까지 선택한 결과겠지? 역시 인과지.
모든 현상은 '자극'이라는 원인을 통해 '반응'이라는 결과로 드러난단다.
다시 말해 실재하는 모든 결과는 너의 사고, 즉 판단이 원인인 것이지.
인과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대자연이 움직이는 원리야.
너는 반응하는 존재일 뿐이구.
원인에 반응하여 결과를 이끌어 내는.
반응하는 존재.
춧불을 끄려면 그만큼의 입김이 들어가야 하지?
나뭇잎이 흔들리려면 그 정도 바람의 강도가 필요하겠지?
뭔가를 넘어뜨리려면 그만큼의 힘을 가해야지?
모르는 것의 정도에 따라 책읽는 양은 다르겠지?
여기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는 같은 크기와 질량을 서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또한, 전원인 후결과. 즉,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도 알 수 있지.
자, 이제 이 둘을 한꺼번에 바라보렴.
결과가 그리 나오려면 그리된 원인이 필요해. 그렇다면,
고 볼 수 있지.
이해되니?
원인을 이리 주면 결과는 이리 나오고 원인을 저리 주면 결과는 저리 나오지.
내재된 힘이 전제되어야 그 힘만큼 드러나잖아. 그치?
이 단순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인과의 원리에 의해 들어간만큼 나오게 되어 있고 나온만큼 또 들어갈 수 있어. 이러한 이치에 따라 바라는 것(꿈)이 네 내면에 투입되면 그것만큼의 결과(현실)가 드러나게 되어 있지. 반대로, 어떤 결과(현실)를 원한다는 것은 이미 결과를 드러내게 할만큼의 양질의 원인(꿈, 소망)이 투입되어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인간은 '논리'가 이해되면 그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거든. 논리적으로 이해됐고 감각도 그렇게 느끼는데 안한다? 그건 선택이니까... 뭐... 하지만, 너는 어리석지 않지. 너는 광활한 내면의 소유자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한다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란다.
이성적이지 않다는, 비합리적이라는, 그냥 번뜩이는 느낌일 뿐이라고 그 느낌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해. 너는 바보가 아니야. 논리가 이해됐고 감각도 그리 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네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것이야! 그렇지 않다면 번개같이 느껴지는 섬광을 발견했음에도 관찰하지 않은 그 이유때문에 한없이 초라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처지[주]가 될 지도 몰라.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며 욕구란 '바라는 바', 즉 꿈이야. 따라서, 꿈이 없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지. 그래서 꿈이 없으면 살아있는 시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지. 거듭 말하지만,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 진리이며 진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그 '누구'중에 너도 있길 바란다. 단,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만 좀 전 말했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위치하는 '반응'. 이 반응에 의해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이지만 아무나 이루지 못하는 것이지.
반응은 감각으로 먼저 다가와. '수퍼맨'이 되겠다는 아이는 수퍼맨을 봤고(시각), 따라하니 될 것 같고(오감 및 초월된 감각) 그래서, 믿는 것이지, 수퍼맨이 될 수 있다고.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서는 높은데서 막 뛰어 내리잖아. 그러니까, 감각에서 관념으로, 관념에서 행동까지 '반응'하는 자가 꿈을 이루는 것이야.
'관념(觀念)'은 관성적으로 네게 자리잡힌 생각을 말하는데 관념이 네게 자리잡힌 연유가 과연 너 스스로 만든 것인지 남 또는 무언가에 의해 너도 모르게 자리잡힌 것인지 네 머리속을 한 번 들여다보렴. 우리는 이 관념이 실상과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주 잦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어.
경찰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관념화되어 있지만 실제 그러지 않은 경찰도 많고 배가 아주 많이 나온 여성은 임산부라고 관념화되어 있지만 다른 이유로 그리 된 것일 수도 있고 저 옷은 나에게 안 어울릴거라고 관념화되어 있지만 막상 그런 스타일이 잘 어울릴 수도 있잖아. 실제 아주 과거에는 비타민이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졌었어. 그러한 관념이 지배우위에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비타민을 안 먹었겠지. 지금은? 비타민은 챙겨먹어야 한다는 관념이 지배적이지. 혹 또 모르지. 이러한 이론적 진실이 또 어떻게 오류로 밝혀질지. 고대 로마시절에는 신의 원죄를 인간이 대신 치러야 한다는 지배적 관념때문에 신전에 서서 자신을 벌하기 위해 아주 가혹하게 스스로에게 채찍질을 했어. 지금은?. 또 아주 우습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 북한의 누구에겐 혹이 있는 줄 알았단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런데 자란 후 실제 사진을 보니 혹은 없더구나.
하려는 얘기는 이런 이유로 관념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는 말이야. 이렇게 일상속에서 우리는 관념을 벗어난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데 과연 관념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고덩어리인 관념을 배제시킨 채 네 앞에 놓인 현상을 제대로 다시 판단한 후 미지의 미래를 유추하는 것이 더 나을까?
기존관념을 배제시킨 후 너 스스로 새로운 사고를 주입시키면서 네 정신을 다시 정리해보길 바래. 정확하게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의 본질을 알 때까지 관념은 의심해야 할 대상이야. 관념에 따라 반응(행동)하게 되는 것이니 네가 스스로 네 관념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것부터 필요해. 기존관념 중 냅둘 건 냅두고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꿀 것은 바꾸고.
이런 관점에서 '꿈은 현실이 아니야' 또는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어려워', '꿈을 꾸는 것은 망상가, 몽상가나 하는 짓이야'라는 관념이 혹시 네게 자리잡혀 있다면 이는 네가 스스로 그리 주입시킨 것인지 아니면 너도 모르는 사이 네게 자리잡힌 것인지 쉽게 가늠이 될거야. 만약 너 스스로의 의지로 그리 관념화해 놓은 것이 아니라면 일단 배제시키렴. 그리고 네 주변에 꿈을 꾸는 사람, 꿈을 이룬 사람들을 떠올리렴. 그러면 너에게 새로운 사고가 등장할거야.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실현할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관념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겠지. 그렇게 자리잡은 관념대로 너는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겠지. 그리고 그 방향으로 인생이 만들어지겠지.
이 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꿈을 이룬 사람이 존재한다면 '꿈의 현실화'는 증명된 사실이지. 이 세상에 꿈을 이룬 사람을 한명이라도 아니? 그렇다면 너도 할 수 있는거야! 주변을 둘러봐. 한 사람만이 아닐걸! 수없이 많아. 네 관념 속에 '에이, 내가 뭐라고...', '에이, 엉뚱한 생각말자' 등이 네 꿈을 방해하는 것이지 네가 꿈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결과되어지기 위해 네 안에서 크고 있을걸! 앞서 얘기했잖아, 어떤 결과(현실)를 원한다는 것은 이미 그 만큼의 양질의 원인(꿈, 소망)이 투입되어 있다고.
자연을 창조한 거대한 존재는 아주 치밀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거든. 인간의 지각으로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광대한 범주에서 이유(원인)를 드러내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자, 우리가 그 거대한 존재를 이해하기에는 버거울 수 있으니 일상을 예로 들어 볼께.
화분에 씨앗을 심어봤지? 심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니? 잘 자라주길, 예쁜 꽃이 피길 바라지? 씨앗은 원인, 꽃은 결과. 그 작은 씨앗을 한 번 떠올려보렴. 어떻게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앗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하늘로 오르고 잎이 돋고 꽃이 피고 비바람과 해충을 이겨내고 벌과 나비를 초대하고... 마지막에 씨앗은 자신의 결과물인 꽃을 떨구며 스스로 잉태한 여러 씨앗을 다시 땅에 뿌리지. 작은 씨앗 그 자체에는 이미 결과와 결과로 이어질 과정 모두가 알고리즘으로 잘 짜여져 있었던거야. 비바람과 해충을 이겨내는 능력까지 모두. 눈에 보이지도 않는, 사물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단위인 원자에 의해 세상은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자신만의 길위에서 창조되고 소멸되어 간단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후 수많은 단어들이 생성되고 소멸되었지. '진화해석학'적인 관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이라도 지금까지 인류와 함께 존재해 온 단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해. 인류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해 왔다는 것이지. '지혜', '창조', '소망', '가치'.. 수없이 많은 추상적인 단어들. '꿈'도 그 중 하나야. 이유와 가치가 없었다면, 인간에게 무용했다면 벌써 소멸되었을 언어야. 그래서, '꿈'이라는 단어에도 기가막힌 설계가 이미 알고리즘으로 짜여져 있다고 볼 수 있어.
'꿈'을 씨앗에 비유해 봐. 인간은 누구나 꿈을 지니고 태어나지. '인간의 본성은 욕구'에 있어. 무언가를 추구하는 동물이지. 배고프면 먹고 싶고 기면 걷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고 무언가를 보면 갖고 싶고.. 이런 본성적인 욕구. 꿈은 그 가운데 가장 큰 욕구야.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이지.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인 '꿈'은 누구나 손에 쥐고 세상에 나와. 누군가는 그것을 '삶'이라는 터전에 심고 '인생'이라는 길을 걷지. 하지만 누군가는 있는 씨앗을 심지도 않고 맨 손으로 걸어. 이 차이는 아주 다르겠지?
씨앗을 제 아무리 화려한 통에 고이 보관한들 토양에 심지 않으면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해. 꿈을 가지고 태어나도, 즉, 자신이 가지고 있어도 다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이와 같지. 가슴속에 간직하고만 있는 꿈은 그저 허상일 수 있어. 또한, 씨앗은 조건이 맞지 않아도 열매를 맺지 못해. 사막의 선인장이 추운 북극에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꿈도 그에 걸맞는 조건들이 필요해.
그리고 하나의 씨앗에서 많은 열매가 맺힌다면 그만큼 많은 씨앗이 창조되겠지? 이는 생명의 종족보존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욕구에 의해 그리 되는 것이야. 여러개 중에 어떤 것은 바람에 소실되기도, 어떤 것은 땅에서 말라죽기도, 또 어떤 것은 배고픈 녀석들의 먹이가 되기도, 그렇게 가혹한 운명들을 피해서 선택받은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거야. 잣나무 한그루에서 열리는 잣은 수백개가 넘어. 청솔모가 먹고 사람들이 주워가고 바위틈이나 돌 위에서 죽기도 하고. 그래도 남은 잣이 짜여진 알고리즘에 따라 다시 대지 위에서 뿌리를 내리고 수백개의 잣을 열매로 맺는 것이야. 너에게도 아주 많은 꿈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어. 이는 분명한 사실이야. 그 중 어떤 것들은 환경에 의해 소실되기도, 망가지기도, 좌절되기도 하겠지만 결국 강렬하게 꿈꾸던 그것은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지. 꿈은 꿀수록 커지고 하나의 꿈은 또 다른 꿈을 견인한단다.
지금까지 3가지의 이유를 들어 꿈이 현실이 됨을 논리로서 네게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꿈을 이루는 사람이 드문 것은 그만큼 어렵고 괴롭기 때문이겠지.
==> 이어지는 글, [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을 논리로 이해하렴 2]는
다가오는 일요일 5:00A.M.에 발행됩니다
[주] 자기신뢰철학, 랄프왈도에머슨, 2020,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