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Nov 28. 2024

피는 물보다 진해서 탈낸다!
엄마를 떠나렴!

Encore '엄마의 유산' - 14번째 편지

제목을 보고 혹 당황했니? 

아니면 좋아했니? 

이도저도 아니면 겁이 나니? 


제목에 당황했다면 엄마가 일정부분 널 속박했구나 싶고 

제목에 좋아했다면 엄마가 상당부분 널 속박했다 인정해야 할 것이고 

제목에 겁이 났다면 엄마가 네 전체를 속박한 것이니 너에게 당장 엄마를 떠나라고 말해야겠다. 


아이야... 엄마란 존재가 네게 어떤 존재여야 할 지, 또 어떤 존재로 있고 싶은지에 대해 몇가지 조목조목 네게 말하고 싶어. 이는 엄마로서의 나를 근사한 부모로 치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먼저 경험한, 먼저 산 자로서 네가 경험할 역할에 올바른 본보기가 되고 엄마의 경험을 네가 디딤돌삼아 이 담에 네가 올바른 부모가 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여겨주길 바란다.


우선, 엄마는 너를 '엄마의 자식'이 아니라고 여긴단다. 

너는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서 엄마의 신체를 통해 창조된 거대한 우주란다. 너는 엄마의 자식이 아니라 세상의 자식이야! 그러니, 가족관계에서의 질긴 인연이 끈적거리는 피처럼 네 인생에 질척거리게 해서는 안된다. 엄마가 기성세대의 관념에 의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네게 시대에 맞지 않는 요구나 주장, 견해를 내비친다면 과감히 거절하길 바란다. 더 큰 세상, 가보지 않은 미래는 엄마의 경험속에 없어. 엄마가 살아보지 않은 세상속으로 너는 엄마를 뒤로 하고 당당하게 미래로 걸어야 해.


둘째, 엄마는 너에게 설득당하고 싶단다. 

널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아마 엄마일거야. 

네가 원하는 '뜻'이 있는데 모든 것을 다 주려는 엄마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넌 세상을 설득하지 못해. 


설득은 근거와 논리로서 가능하단다. 

주장과 의견만으로는 설득이 어렵지. 

주장이 설득이 되려면 논리를 입혀야 해. 

논리란 이치에 따라야 하구. 이

치없는 논리는 비약이거나 미약이야. 

논리없는 주장은 우기기구. 

목소리 큰 놈, 힘센 놈이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은 설득이 아니라 위협이고 협박이고 어쩌면 유혹이지. 


그러니, 이치에 따른 논리로서 네가 원하는 것이 간절하다면 엄마부터 설득해내렴. 엄마를 설득하지 못하면 세상 그 어떤 것도 설득하기 힘들어. 모든 걸 다 주고자 마음먹은 이를 설득하지 못하는데 어떻게든 주지 않으려는 세상을 어떻게 설득해내겠니? 엄마를 설득하지 못하면 넌 설득당하는 인생을 살게 되니까 엄마를 설득하고 납득시키는 것을 통해 세상과의 거래를 배워보렴. 


엄마는 설득당하는 순간, 아주 행복할거야.


셋째, 엄마는 너의 유일한 경쟁상대가 되고 싶단다. 

사실 살다 보며 알게 되겠지만 어떤 누구와도 경쟁할 필요가 없단다. 

넌 세상에 유일하니까 네 경쟁상대는 없어! 

하지만 

엄마는 유일한 너의 경쟁상대가 되고 싶고 네게 지고 싶단다. 


먼저 산 사람이 더 나은 후손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엄마의 삶도 초라해 질거야.

너는 엄마의 삶을 위해서라도 무조건 엄마보다 잘.살.아.야.해. 

너는 세상이 필요로 해서 탄생된 존재란다. 

그리고 별로 잘난 엄마는 아니지만 엄마보다 나은 삶을 사는 주인이어야 해. 

그러니, 엄마를 이기고 세상으로 나아가렴. 

엄마는 항상 너와 치열하게 '잘 사는 삶'을 경쟁할 것이지만 계속 패하고 싶어. 

하지만 끝까지 '가치있는 삶'으로 진검승부를 겨룬 끝에 패하고 싶단다. 

그 때 진짜 행복하겠지. 


물론 이러한 경쟁으로 서로가 더 가치있는 삶으로 성장해 나간다면 승패는 아무 의미가 없어. 

말 그대로 공진화(Co-Evolution)인 것이니까!


넷째, 엄마는 네게 '닮아도 좋을 사람'이 되고 싶단다. 

크게 남길 것이 없어 안타깝지만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온 엄마는 그저 네게 '닮아도 좋을' 그런 어른이면 싶어. '엄마처럼 산다면 참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삶을 사는 자세와 정신을 네게 보여주고 싶단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물려줄 수도, 대단한 명예를 갖게 해줄 수도 없지만 삶을 올바르게 사는 정신과 자세가 어떤 것인지 보여줌으로서 네게 스며들게... 그렇게 닮아도 괜찮은 어른이라면 엄마는 행복할거야. 


옳은 것은 강하고 강한 것은 이롭고 이로운 것은 오래 가거든. 

엄마의 삶이 가랑비에 옷젖듯 네게 서서히 스며들어도 무해한, 오히려 이로운, 닮아도 좋을 어른이고 싶어.


그렇지만 혹여나. 

다섯째, 엄마가 널 고이게, 썩게 한다면 엄마를 거부하거라. 

물과 피. 

너의 신체에 결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2가지의 액체지. 

이 2가지가 없으면 생명을 유지할 수가 없어. 

엄마의 삶이 네 안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물처럼, 네 몸에 유유히 흐르며 영양소를 전해주는 피처럼 네 인생에 잔잔하게 스며들어 너의 생명력의 에너지가 된다면 너무 행복할거야. 


하지만 물과 피의 점도나 탁도에 이상이 생기면 네 생명에 상당한 타격이 오듯 

엄마와 함께 나누며 섞인 너의 정신과 자세가 혹 네 인생을 혼탁하게 어지럽히거나 정체된 채 고이고 썪게 한다면 과감하게 엄마에게 등을 돌려야 한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무용한 존재이기에 넌 과감해져야 할 거야. 그러지 못하면 네 인생은 더 큰 타격으로 힘겨워질테니 말이야. 


물론 엄마가 네게 최소한으로 개입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굳어버린 정신 속에는 고정된, 선입된 관념들이 존재하는지라 네게 도움은 커녕 방해가 되는 짓을 할 수도 있어. 

때론 나이를 들먹이며, 

때론 먼저한 경험을 들먹이며, 

때론 엄마가 널 안다고 주장하며, 

때론 엄마의 감정을 드러내며 네가 엄마말을 듣지 않으면 뭐가 큰일이 날 것처럼 떠들어대기도 하겠지. 


하지만 네 뜻이 선명해지고 또 그 길이 옳다는 확신이 섰다면 네가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엄마를 거부하는 것에 오히려 행복할 것이야. 엄마 말 잘 듣는 너보다 엄마를 거부하고 세상에 잘 쓰이는 네가 되길 더 바란단다.


여섯째, 엄마는 200년 뒤의 시선으로 널 바라볼거야. 

간혹 엄마는 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을 할 때가 있었지. 

엄마의 기준때문이야. 

엄마는 네가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하단다.

너 역시 너의 자식이 행복할 때 가장 행복할 것이야.

그래서 네가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장성한 모습을 보게 될 50여년 뒤, 그리고 너 역시 엄마처럼 네 자식이 또 그 자식으로부터 행복을 느낄 때까지. 또 50년. 이렇게 계속 보태니. 엄마는 단지 지금의 너만이 아니라 진정한 너의 행복을 위해 무려 200년 뒤의 시선으로 너를 바라보게 되더구나. 


그래선지, 

네가 어떤 관념에 휩싸여 판단할 때, 

현실의 위기에 몸을 떨 때, 

새로운 도전앞에 너를 작게 위축시킬 때, 

감사한 것에 감사한 줄 모를 때, 

배움앞에서 오만할 때, 

비굴/비난/비겁/불평/불만/불안/부정 등 'ㅂ'동네로 이사가려 할 때, 

가랑비에 옷젖듯 너도 모르게 흡수된 비혼, 둥지족, 딩크족, 뭐 이러한 보편적 현상에 길들여져 미리부터 너의 삶을 규정지으려 할 때, 

물질을 정신보다 앞세워 쫒을 때, 네 인생에 진입하려는 수없이 많고 다양한 성장의 파도 앞에서 엄마는 아주 단호하고 냉정해질 수밖에 없단다.

지금까지 엄마가 네게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해 얘기했는데 네게 공감을 얻고 싶구나. 서로 공감이 된다면 너 역시 너의 삶을 단지 너만을 위한 100년의 삶이 아닌, 더 큰 시선으로 너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지. 항상 더 큰 시선으로 지금의 너를 바라보는 습관을 들이렴. 그러면 그 위대한 시선이 엄마보다 더 현명하게 너를 키워주고 보호해 줄거야. 넌 위대한 세상의 자식이니까... 


피가 물보다 진해서 때론 너의 인생에 탈을 낼지도 모를 존재가 엄마야.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이 어딘지 아니? 

엄마의 치마폭이라잖아. 

엄마란 존재는 그래. 


그러니 궁극적인 시선에서 

엄마와 너의 관계는 물보다 피같아야겠지. 

세상 어떤 곳이라도 모이고 흩어지며 흐르는 물과 달리 피는 사람의 몸안에서만 기능하지. 또한, 흘러흘러 냇물이 강물로, 강물이 바다로 흐르는 물과 달리 피는 서로 섞이면 아주 곤란해. 엄마와 너의 관계는 어쩌면 피처럼 제한되어서 그 기능이 유지되어야 하고 엄마와 너의 관계가 지속적으로 건강한 피처럼 흐르게 하려면 서로가 독립된 개체로서 존재해야 해. 


엄마와 너의 삶이 마구 섞이면 서로의 인생이 아주 소란스럽고 곤란해지니까. 너는 너의 삶을, 엄마는 엄마의 삶을, 서로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기 위해 엄마와 너는 각자의 피를 자기 몸속에서 기운차게 유지하듯 따로일 때 훨씬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란다. 상호독립(inter-dependent)이어야 하지. 따로지만 유동적인. 


이를 위해 엄마는 엄마 인생을 잘 살아갈거야. 

네가 닮아도 괜찮을 어른으로. 

너도 위에 얘기한 6가지를 잘 기억해주고 네 인생을 엄마와 경쟁하며 제대로 삶을 일굴 것을 믿는다. 

이것이 엄마가 네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란다.

바로 

'지각있는 사랑'.


2년전 처음 연재를 시작한 [엄마의 유산]

브런치에서 깊은 사랑을 받았던 저의 편지가 독자들의 응원에 힘입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1. 아래를 클릭하시어 구입하시는 분께는 다양한 혜택이 있습니다!

   https://cafe.naver.com/joowonw/19878


2. 5분 이상모임에 저를 초대해주세요!

책을 읽으신 5분 이상이 모여계신다면 찾아가겠습니다.

[작가에게 제안하기]로 성함과 연락처, 내용, 모임의 성격 등을 알려주세요.


3. '엄마작가', '아빠작가'를 기다립니다!

엄마의 유산은 계승이 목적입니다. 저와 함께 '엄마의 유산2'를 이어가실 엄마작가(초보자라도 상관없습니다.)들, '아빠의 유산'을 써주실 아빠작가님들을 기다립니다.[작가에게 제안하기]로 메일주세요!



[지담연재]

월 5:00a.m. [감정의 반전]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목 5:00a.m. [Encore! '엄마의 유산']

금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지담과 제노아가 함께 쓰는 '성공']

일 5:00a.m.  [나는 시골로 갑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