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는다

나를 임상으로 삼다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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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판단력의 병폐는 다른 사람이 우리의 잘못을 밝혀 주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는 데 있다.

학문과 진리는 비판력없이도 우리에게 깃들 수 있으며,

비판력은 학문과 진리가 없어도 가질 수 있다.


사실 자기의 무식을 인정하는 일은

판단력을 가졌다는 가장 아름답고도 확실한 증거라고 나는 본다.

(중략)


나는 생각들이 아무리 산만하고 무질서해도,

그것은 내가 타고난 방식인 것을 사람들이 알아주기 바란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는다.

그러므로 내 글에 실린 것은 모르면 안될 재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해서 안될 제재(題材)도 아니다.


나는 사물들에 관해서 완전히 이해하고 싶다. 그러나 너무 값비싼 노력을 들여가면서까지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내 계획은 내게 남은 인생을 순탄하게, 그리고 힘들이지 않고 넘기는 것이다. 학문을 위해서라도, 그 가치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 때문에 머리를 썩여야 할 것은 없다.


점잖은 재미로 쾌락을 찾기 위해서만 책을 뒤적인 내가

공부를 한다면,

나는 그 속에 내 자신을 알아보는 일을 하며,

내가 잘 살고 잘 죽는 방법을 가르치는 학문밖에 찾지 않는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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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처음 읽었던 몽테뉴의

이 페이지에

'나도!'라는 메모가 여럿 남아 있다.


나는 그 때부터 지금과 같았나보다.

나 역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내놓는다.

그것이 이제는 편하다.

남들 인정을 받기 위해 말과 글을 장식하는 것이 내게는 훨씬 불편한 짓이 되었다.


나는 살펴서 보고

본 것에서 맥락을 되짚고

맥락에서 의미를 찾고

비록 보잘 것 없더라도

나만의 논리로서

나는 나를 꺼내 놓는다.


그것이

나의 말이고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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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나오는 것이 내 속의 날 것입니다.'


이런 말을 공공연하게 하는 나를 보면,

나 역시 몽테뉴처럼

순탄하게, 그리 애쓰지 않고


구조화된 일상 속에서

나는 나를 살펴,

나를 연구하고,

나를 시험하며,

나를 데리고 노는 재미가

곧 나의 학문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사는 방향과 결이

잘 살고 잘 죽는 것도 같다.


여전히 부족한 나이지만

나의 저 깊은 내밀한 곳에서는

그래도 믿어도 된다고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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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연구는,

학문은.

삶으로 들어와야 한다.


삶은

'일상의 구조'대로 짜여진다.


과거 뜨개질을 잘 했던 나는 안다.

겉에 이쁜 무늬를 만들기 위해서는

안쪽은 엉키고 매듭지고 색이 섞여야만 한다는 것을.


이제는 나를 임상삼아 연구하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보고 알고 찾고 만들며

숱하게 보냈던 시간을 믿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로

말하고 쓰는 구조를 지녔다.


몽테뉴의 바람처럼

이런 내가 나라는 걸 사람들이 그냥 알아주면 좋겠다.

적어도 나는 나의 무식과 무지를 알기에

여전히 읽고 쓰고 있으니,

이 공부가 나의 삶이니...

그저 지금 내 모습을 믿고 가는 중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내 글에 실린 것은 모르면 안될 재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말해서 안될 제재(題材)도 아니다(주).


주> 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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