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 - 몽테뉴
나는 이성으로 어떤 사물을
이렇게 결단적으로 그릇되고 불가능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하느님의 의지와 우리 어머니인 대자연의 힘에
한계와 제한이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를 우월한 처지에 두는 수작이며,
그리고
어떤 일을 우리의 능력과 역량의 척도로 다룰 수 있다고 보는 일은
세상에서도 가장 두드러지게 미친 수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중략)
우리는 사물들의 크기보다 그 새로움에서 원인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대자연의 무한한 힘은
더 한층 존경심을 가지고,
또 우리가 무식하고 허약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판단해야 한다.
믿을만한 사람이 증명한 것으로서,
진실일 듯싶지 않은 사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것을 믿지 못하겠거든,
적어도 판단을 유예해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일을 불가능하다고 결단을 내리는 것은
당돌한 자부심이며,
가능성의 한계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다고 잘난 체하는 것이다.(중략)
우리가 생각해볼 수 없는 것을 경멸하는 것은,
어리석은 당돌함을 품을 뿐더러 위험하고
중대한 결과를 이끄는 분수넘친 월권이다.(중략)
오만과 호기심은
우리 마음에 대한 두가지 천벌이다.
호기심은 우리들이 무슨 일이건 참견하려 하게 하고,
오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확실하지 않은채 두지 못하게 한다(주).
이성이 부리는 오만과 호기심은
우리 마음의 천벌이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를 참지 못하고
내가 결정하는 것에 확신을 가지고
주어진 무엇의 결과에 참견해왔던 호기심.
이는 그의 말대로 '미친 수작'이었다.
늘 판단하고 설명하고 선택하며 살았던 나였다.
하지만 실제 인간이 사고할 수 있는 범주는
신과 대자연의 위대한 힘 앞에서 얼마나 미천한가.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이성작용이 오만이었는지 인정했다.
알았다고 여겼던 모든 것들에서
모르는지도 몰랐던 것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판단을 내버린지 오래 됐고
판단이 없으니 선택도 없고
선택이 없으니
그저 내게 주어진 의무를 따르는 것밖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도록 내 일상은 짜여졌다.
느껴지는 자극에 순종적으로 반응하며
판단없이 그저 행동만 이어가는 요즘.
지금 '몽테뉴'는 5년전 읽었을 때와는
절대적으로 다른 힘으로 다가온다.
'판단'과 '선택'의 '제거'는
자연의 일부로서의 나를 무한한 가능성 앞에 세운 것이다.
해보지 않는, 살아보지 않은 시간들에는
가능성과 운, 내 의지를 넘어선 신의 의지가 나를 이끌기에
결과에는 무관하게 나는 오늘 무엇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만 집중한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내 능력이나 역량의 척도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알기에,
자연의 위대한 힘으로 나를 어찌 해달라고...
순종하며 오만과 호기심을 내려놓고
그저 지금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https://cafe.naver.com/joowonw/12681
[지담연재]
월 5:00a.m. [짧은 깊이]
화 5:00a.m. [엄마의 유산]
수 5:00a.m. [필사 - 사유의 손끝에 철학을 품다]
목 5:00a.m. [영혼의 노래]
금 5:00a.m. [나는 시골이 좋습니다.]
토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일 5:00a.m. [영혼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