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와 존귀함이 잉태된 자리

자기존재를 경멸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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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생명을 경멸한다는 사상은 그 자체가 우습다.

왜냐하면 결국 그것은 우리의 존재이며 우리의 전부인 까닭이다.


더 고상하고 풍부한 존재를 가진 사물들이라면 우리 생명을 비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경멸하며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천성에 반하는 일이다.

그것은 질병이다.

자기를 경멸하고 미워함은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일이다.


우리가 지금 있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허영이다. 이런 욕망의 결과는 그 자체가 모순되는 것이니, 그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다. 자기가 천사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를 위해서 아무 것도 한 것이 아니며, 그 때문에 조금도 더 나아지지 못할 것이다. 그가 없어진다면 자기를 위한 이 보수를 누가 즐기며 느낄 것인가?


한 생명이 죽음과 고통을 느낄 수 있으려면

그 불행이 생성할 수 있는 시간 속에

그가 존재해야 한다. (루크레티우스)

- 나는 무엇을 아는가, p. 41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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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생성할 수 있는 시간속에 존재해야 한다.

한 생명으로서의 내가 삶의 짐을 기꺼이 짊어졌다면 말이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이 없거나 약했을 때엔 - 물론 그 느낌을 언어로 표현할 재주는 없다. 그저 '존재'를 느껴본 자들의 동감을 구할 뿐이다.- 나의 경우,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느낌을 가졌을 때 그 속에서 잉태되어 자라난 감정이 바로 자기애 존귀함이었다.


내가 나를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정신.

내가 나를 사랑하며 소중히 여기는 마음.

내가 나를 고양된 정신세계로 옮기려는 태도.

내가 나를 인정하며 이미 마련된 나의 반석에 어울리려 나를 앉혀둔

지금 이 자리.


나는

천사같이 굴며 사랑을 구걸하거나

솜털같은 애교로 소유를 강요하거나

짐승같은 공포로 존재를 드러내는 비겁과 비굴의 질병에 걸리지는 않았다.


못나도 잘나도 그게 나이니

내 욕망은

나의 더딘 발걸음에 오히려 환한 웃음 지으며

스스로 정화하여

사랑을 키우고 존재를 단단히 엮는 나를

어쩌면 더 크게 자신을 부풀리며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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