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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29. 2022

꽃길만 걸어라?

소크라테스랑 부자랑 무슨 상관이람?

'소크라테스'라는 이름만으로도 고리타분하지요? 

원래 배우는 건 고리타분합니다.

진리는 단순한 명제속에 있어서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법이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당신이 부자가 되길 원한다면, 

그것도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당당하고 투명한 부를 축적한 부자가 되길 원한다면 

감히 소크라테스의 중용을 이해하길 권합니다. 


지금 이 글을 접한 당신이 원하는 것은

오늘보다 나은 내일,

지금보다 나은 나입니다.

더 많이 더 깊은 더 넓은 확장된 시선에서 당신이 원하는 바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보이는 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것을 얻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지요?


이는 어떤 수려한 방법이나 디테일한 모색에 있지 않습니다.

비결이나 노하우, 정답이 있을 리 없습니다.

단 하나의 원리. 

멀고 보이지 않고 지루한 길일 지 모르지만

그 원리의 길을 따라가며 차근차근, 차곡차곡 모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그 끝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채 길게 가난하게 사는 것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길고 지루한 길이지만 원리를 알고 부자로 내 인생을 옮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이런 이유로,

혹 소크라테스의 설파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왜 그가 지금까지 추앙받는지는 이해할 필요가 있지요.      

그는 시대를 거스르며 ‘현자’, 즉, ‘지혜로운 자’로 통합니다. 

다음의 구절을 먼저 읽고 이야기를 풀어나갑시다.   

사람들이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은 얼마나 묘한 일인가, 
그리고 쾌락의 반대라고 여겨지는 고통과의 관계도 또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쾌락과 고통은 동시에 같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일은 없으면서도
그 중 하나를 추구해서 얻은 사람은 대체로 다른 하나도 어쩔 수 없이 얻게 마련이기 때문이야. 
그 몸뚱이는 둘이지만, 머리 하나에 붙어 있는 셈이야. (중략)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뒤따르게 마련이지.’      
                                                                                                      - 플라톤 '대화편'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곧 ‘중용의 실천’입니다. 

‘중용’이란 이분화된 사고가 아닌 전체적인 사고로 현실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위의 소크라테스의 글에서처럼 쾌락과 고통은 반대의 의미지만 

하나를 얻으면 자연스럽게 하나가 따라오죠. 


조금 더 간단히 설명해 보지요. 

세상 모든 피조물에는 양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흑과 백, 육체와 정신, 선과 악, 원인과 결과, 긍정과 부정, 위와 아래, 앞과 뒤, 이상과 현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 팽창과 수축, 수직과 수평, 빛과 그림자, 본질과 현상, 오른쪽과 왼쪽 등과 같은 것이지요. 


이러한 양극은 하나가 없이는 다른 하나가 존재할 수 없어요. 

‘선’이라는 현상이 없으면 ‘악’이라는 단어도 존재할 수 없지요. 

자연, 물, 바다, 산, 강, 들, 공기와 같이 자연의 것에는 대립어가 없습니다. 


아! 만약 있다면 이런 것이겠지요. 

‘공기’의 대립어는 ‘공기가 아닌 것’. 이런 것일 겁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의 길 위에서 탄생한 것들은 모두 대립어가 존재합니다. 

더하기가 있으면 빼기가 있고 오르막을 오르면 내리막이 나타나는 것처럼 말입니다. 

즉, 이쪽은 저쪽을 견인하는, 긴밀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동이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주고 받고, 뱉고 삼키고, 때리고 맞고, 가고 오고 등 양면이 존재합니다. 

아프면 성장하고 불안하다 평안해지고 긴장하다 느슨해집니다.


중용은 

드러난 현상에서 그 이면의 대립극을 이해하는 전체적인 사고체계 안에서 

지금의 행동을 선택하는 실천을 의미합니다.    


이제 지식만으로는 위험한 세상입니다. 

교육열이 이렇게 높은 나라에 사는 당신이 

미래를 불안해한다는 현상만으로도 

이제 지식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은 확인된 것입니다.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의 로버트 기요사키는 ‘직장인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확언했는데 

우리 대대수는 직장인이 되기 위해 안간을 쓰죠.


우리나라의 긴 가방끈을 가진, 나름 공부 좀 했다는(말 그대로 지식이 넘치는) 이들 대부분이 

대기업에 취직하고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보편적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왜 부자를 꿈꾸지 않고 취직해서 월급쟁이가 되겠다고 자신의 미래를 정하는지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블랙스완'의 니콜라스나심탈래브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취직하지 말고 자산을 가져다 줄 직업을 구하라는 말을 신신당부하며 가장 강조했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부자가 되겠다면

불확실과 예측불가능한 이 시대를 통찰, 예측, 직관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지혜가 없다면 미래의 불안은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말초적인 이유만으로도 소크라테스의 지혜를 공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공’이라는 중요한 담론을 다시 이야기해 볼까요?

성공의 대립어는? 실패입니다. 

중용의 원리에 따라 성공을 위해서는 실패가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지요. 

시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을 겪어야 보람을 얻을 수 있고 

대가를 치러야 보상이 따릅니다. 


그래서 한쪽만 추구하면 나머지 한쪽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대립된 두 개념 모두를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상을 꿈꾸며 현실을 제대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려면 ‘돈’, 

다시 말해, '물질의 부', '소유의 부'의 대립점에 있는 ‘이상’, 

다시 말해, '비물질의 부', '존재의 부'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전체적 사고 안에서 

지금 해야할 행동을 선택해야 

돈이 따른다는 논리를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아쉽게도

대립면에 존재하는 양극의 것은 동시에 오지 않습니다. 

연속적으로 옵니다. 

대가를 치른 후 보상이 따르고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드러나고

먼저 주어야 나중에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추구해야 돈이 따릅니다. 

비물질을 추구해야 물질로 보상됩니다.

이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인과율의 법칙이며 

이러한 양극을 전체적으로 보는 눈, 

즉, 삶을 통째로 보는 눈이 통찰입니다.      


진정한 초긍정의 마인드란?

자, 그렇다면 소크라테스의 지혜, 즉, 중용을 어떻게 나의 성공에 대입할 수 있을까요? 

아는데 실천하지 않으면 지적 허영만 부리게 꼴사나운 인간이 됩니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 역시 양극을 모두 가지는 것입니다. 

정신(머리)과 육체(행동)가 함께 움직이니까요.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며 이해를 해야 실천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성공자들은 모두 시련과 고통을 성공을 위한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치열한 시간들을 성공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인식하는 것이지요. 

즉, 현실에서 겪게 되는 부정적인 상황은 곧 다가올 긍정을 위한 메시지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긍정의 마인드입니다.      


좋은 말만 하고 좋은 일만 일어나길 바라는 것이 긍정적 마인드가 아닙니다. 

부정도 곧 다가올 긍정의 서막임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진정 긍정적 마인드이며 

이러한 마인드부터 갖고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중용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가끔 ‘꽃길만 걸으시길’과 같은 문구를 선물로 받습니다. 

사실, 꽃길만 걸으라는 이 말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 꽃길만 걷길 원한다면 도대체 흙길은 누가 걸어야 하는 것인지.. 

꽃길만 걸으려면 인생에 그 수많은 도전과 모험의 재미를 포기하고 살라는 말인지.. 

뭐 이러저러한 이유로 별로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문구였는데 

이제 그 깊은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꽃은 흙에서 자랍니다. 

따라서, 꽃길만 걷는다는 것은 흙길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진흙길을 걸어낸 자의 당당한 레드카펫이 꽃길이구나.를 알게 된 것이지요. 


강렬한 여름의 태양과 시리도록 차가운 한겨울의 냉한도 모두 이겨내야 씨앗은 싹을 틔웁니다. 

그러니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진흙길에서 다져진 용기와 인내에 대한 대가로 

꽃길에서의 향기와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는 보상을 받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요. 

또한, 누군가가 진흙길에서 헤맬 때 먼저 걸어가는 내가 꽃길 위의 아름다움과 충만함을 동기로 주어 

그를 꽃길로 인도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국, 꽃길을 걷는다는 것은 

흙길을 걸어본 자의 몫이며 

꽃길을 걷는 한걸음한걸음은 

모두 흙길을 걷는 걸음과 같은 것이기에 

‘꽃길만 걸으시길’이라는 말의 참의미는 

좋은 것만 취하는 것이 아닌, 

시련을 이겨내고 '역경을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참다운 성공자가 되십시오.'가 아닐까요?

꽃길만 걷길 바라면 비겁한, 일시적인 성공자는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자가 되고 싶다면!

많이 가지고 많이 나누고자 한다면!

먼저 대가부터 치르길 각오해야 합니다. 


‘각오’라는 말이 좀 겁나지요? 

그런데 얼마나 다행입니까? 

시작은 한 번만 하면 되니까요! 

시작을 하면 대립극에 뭐가 있지요? 

끝이 있지요!

내가 원하는 목표에 다다르는 것이 끝입니다. 

그 때까지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원하는 목표를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이니 얼마나 단순한가요?  


꽃길을 걷기 위해 흙길을 걸어라.

즉, 결과를 정하고 과정으로 입증하라!

이걸 하는 겁니다.


졸부말고 진짜 부자

그러니, 나를 진정 성공시키고자 한다면, 

부자가 되어 많이 나누고자 한다면, 

나를 세상에 증명해 보이고자 한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한다면, 


지금 내가 처한 모든 환경을 ‘앞으로 얻게 될 결과를 위한 원인’이며 ‘대가’로 해석해야 합니다. 

사고(思考)의 질서가 잡혀야

실천에 힘을 얻고 

실천이 반복되어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옵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용은 당신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원리이자 기준이 될 것입니다.  

(참고로 중용의 이래를 원할 때 

 소크라테스 외에 논어, 뤼디거달케, 에머슨의 철학에 대한 공부도 추천합니다.) 


중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상만 꿈꾸는 망상가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이상가로 당신을 유도할 것이며

부자가 되고 싶다는 간절함만 존재하는 당신에게 

당당하게 대가를 치르게 할 용기를 줍니다.

현실의 난해함에 괴로워하는 이에게 

그것이 긍정적 결과를 위한 신호임을 감지하게 하고 

실패의 좌절에 빠져 있는 누군가에겐 오히려 실패로부터 감사를 배우게 하는 철학의 실천인 것입니다.   


사고하지 않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비물질에 투자하지 않고 물질만 소유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을 외면하고 보이는 것을 획득한다는 것은

졸부가 되겠다는 것이니

우리,

진정한 부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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