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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10. 2022

인간 좌절시키기

'나태'와 '여유'에 대한 소고

 


악마 셋이 내기를 했다.

'인간 좌절시키기!'


1번 악마는 불의의 사고를 유발해 인간의 신체를 불구로 만들어 버렸다.

아뿔싸.

이 놈의 인간들은 신체따윈 아랑곳없이 불.굴.의.의.지.로 

좌절은 커녕 더 강해지더라!

1번 악마 실패!


2번 악마는 천재지변을 일으켰다.

홍수에 산사태에 지진에 가뭄에 태풍에

심지어 전염병까지 별의 별짓을 다했는데!

아뿔싸.

이 놈의 인간들은 그 뛰어난 머리로 

좌절은 커녕 뭐든 극복하고 복구해내며 더 강해지더라!

2번 악마도 실패!


3번 악마는 인간에게 속삭이기로 했다.

아주아주 달콤한 목소리로

아주아주 다정한 느낌으로

아주아주 친절한 말투로

아주아주 그럴싸한 설득으로

사~~알짝 마음에 대고 조근조근

'괜찮아, 넌 잘 하고 있어, 오늘만 날인가? 오늘 하루쯤 쉬어도 돼, 조금 더 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건 없어,

시간은 무한정이야, 언제든 네가 맘먹으면 그 때 하면 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오케이!

인간들은 하루, 하루, 또 하루.

계속 계속 미루고 또 미루다 

결국,

'아.... 시간이 이렇게 가버렸어. 그럴 줄 알았어. 난 뭘해도 안되는 놈이야!'

3번 악마 성공!


3번 악마에게 걸려든 인간은

해내야 할 방법을 찾는 대신

안해도 될 변명을 찾게 되고

당장에 큰 이변이 없으니

서서히 위로와 위안에 길들여져

스스로가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도 모른 채 

결국 좌절해버리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나태와 태만은

내가 잡고 노는 손이 악마의 것인지도 모르는

어리석은 정신의 일상화 현상이다.


1, 2번 악마는

외부의 것으로 인간을 공격함으로써 인간이 방어하며 그로 인해

더 큰 능력을 갖게 만들었다.

3번 악마는 

인간의 내면을 향해 서서히 회유를 시도했고 

가랑비에 옷젖는지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은 회유에 넘어가 스스로를 좌절시켜 버렸다.


인간은

육체가 무너지면 강해질 수 있지만

정신이 무너지면 육체까지 무너뜨린다.


"나는 나태하지 않아.

나는 충분히 쉴 자격이 있어.

나는 지금 여유를 부려도 될만큼 했어"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지금 내가 '여유'라 여기는 것이

나태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악마의 회유로 인한 착각은 아닐까?


진정 여유를 부릴만큼 최선을 다했다면

나태와 태만은 여유로 승격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여유라는 이름은 악마의 유혹에 완벽하게 빠져

나태와 태만에 젖어든 것도 모자라

이도저도 구분못하는 바보천치가 되어 가는

정신착란에 걸려든 것이다.


하지만, 

나태와 태만이 반드시 필요한 지점과 장소가 있다.

내 마음이 고요하게 여유를 가지도록 나는 

마음에는 한없이 나태함을 요구할 수 있어야겠다.

그래야 이것저것 세상이 요구하는 선택과 판단에 부지런한 정신이

정신줄놓는 나태함을 막을 수 있으니까.


여유와 나태는

종이 한장차이이며

유일하게 나만이 구분하고

나만이 배치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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