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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14. 2022

뽀다구나는 할머니가 되려니
눈 2개로는 안되겠다.

'신독'에 대한 소고

참 다행이다.

나에게는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의견을 묻는 그녀가 있어서

결정을 앞두고  항상 허락을 구하는 그녀가 있어서

결과가 미심쩍을 때 살짝 미리 귀뜸해주는 그녀가 있어서.


그녀는 5년 뒤, 10년 뒤, 그리고 20년 뒤,

내가 원하는 그 곳에 열맞춰 대기하며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내가 원하는 시기에 딱!

내가 원하는 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그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항상 나에게 지침과 명령과 훈수를 내려준다.


그녀는 바로

미래의 나, 김주원이다.

나에겐 꿈이 있다.

꿈을 위한 장중단기 목표도 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도 있고

계획을 지켜내기 위한 스케쥴도 있고

스케쥴가운데 가장 우선순위인

'나를 키워낼' 매일의 루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곧잘 스스로를 의심하고

결과에 불안해하고

과정에 힘들어한다.


열정도, 의지도, 투지도, 별다른 탁월함도, 주변에 딱히 도와줄 이도 없는 이런 내가

어려워도 매일매일 정해진 루틴을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의 간절함때문이다.


'원하는 나'의 모습을 오롯이 갖고 있는 '미래의 나'

내가 원하는 딱! 그 모습의 그녀에게

붙잡고 매달리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가진 두 개의 눈(두개가 멀쩡한 것만으로도 감사)만으로는 부족하다.

시선이 바른 곳을 향하는지

시야는 넓고 멀고 깊은지

하나의 몸뚱아리 안에서 내 정신과 다리를 바라보자니

자주 흐려지고 탁해져서인지 오류투성이다.

게다가

하나의 몸뚱아리이기에 자주 육체가 정신을 이겨먹으려 한다.


그래서 필요했고

그래서 만들었다.

나를 밖에서 바라봐줄 제대로된 두 개의 눈을.


애덤스미스가 알려준 '공정한관찰자'이기도,

'퓨처셀프(futureself)'이기도 한 그녀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대로 '나그네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본다.


수년전 만들었던 2022년 그녀는 지금 여기로 나를 이끌었고 

지금은

2025년에 서 있는 그녀의 시야에  

자발적 감시를 당하고 있다.

관찰자이든 퓨처셀프든 어떤 이름이든 상관없다.

지금의 눈 2개로는 부족하니까.


나의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무조건 답이다.


'이쪽으로 가면 너처럼 돼?'라고 물을 땐

'아니, 그 쪽으로 가면 나처럼 안돼!' 하면 가지 않고

'그렇지, 그 쪽이야.'하면 힘들어도 가게 하며

정신이 육체를 이기게 만들어준다.


'지금 이 속도 괜찮아?'라고 물을 땐

'너 미쳤구나! 그 속도로 내가 되려 했어?'라고 눈물빠지게 혼내기도 하고

'너무 빨라, 좀 쉬어도 돼'라고 나를 쉬게 하면서

빨리 달리느라 지친 내 정신을 다시 질서있게 정돈해준다.


'이걸 잡아, 저걸 잡아?'라고 물을 땐

이쪽이다 저쪽이다 얘기해줄 때도 있지만 그녀는 항상

'둘 다 괜찮아. 하지만 반드시 한쪽은 놔야 해.'라고

잃고 나서 얻는 순리를 알려준다.


'나 잘못한 거 같은데 왜 안 알려줬어?'라고 따지려들면

'일부러 그랬지! 조금 기다려 봐. 그 잘못으로 인해 얻게 될거거든'이라며

나보다 더 먼 시야로 나의 잘못이 타당한 결과였고 연쇄적으로 원인이 될 것이라 이해시킨다.


여기저기서 의견을 구할 때

이때일까 저때일까 찔끔거릴 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더 나아가려 하지 않을 때

못난 내가 뭐라도 하려 애쓰는 그 모습에 내가 가여울 때


다행이다.

내가 바라는 그 모습의 그녀가 항상 날 감시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원하는 나의 그녀가 24시간 날 지켜주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녀를 내 인생에 등장시켜서.


그녀로 인해

나는 나에게 엄격하고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고

나 스스로 만든 기준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으며

나 자신을 나의 근사한 명함보다 더 믿으려 하며

나를 유혹하는 그 어떤 타협에도 내 패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니


나 혼자의 힘으로

신독.을 지켜나가기는 어렵지만

그녀를 주인으로,

내가 손님이 되고 때로는 하녀가 되니


신독은 오히려

그녀를 매개로 하여

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만들고 있다.


내가 신독을 지키려 애썼는데

신독이 오히려 나를 키워낸다.

내가 그녀를 만들고 따랐는데

그녀가 나를 만들고 키워낸다.


내가 그녀를 만들고

그녀는 내가 신독해내도록 나를 절제시키고

신독은 나의 간절함이 현실이 되도록 나를 키우고

나는 또 더 먼 미래의 그녀를 만드는, 

내 인생의 선순환.


내 인생에 줄세워진 저~어기 멀리 누가 서 있나?

바로바로!

'뽀다구나는 할머니!!!!!!'


나는 몸도 정신도 경제력도 지혜도 갖춘

뽀다구나는 할머니로 서있고 싶다.

자식, 손주, 그리고 누구든

살면서 어렵고 힘들고 누군가가 나타나주길 바라는 순간

나를 찾아와도 충분히 괜찮은,

뽀다구나는 할머니이고 싶다!


50줄이 넘어서인지

이제

자손들이 '참.. 우리 엄마, 할머니, 선생처럼 나이들고 싶다.'고 인정받을만한

그런, 뽀다구나는, 늘 편한 할머니가 되어야겠다.

인정받기 위해 사는 삶이 아닌,

인정받을만한 삶이어야 하겠다.


그래서 그녀에게 오늘도 묻는다.

"나 자격있어?

나 잘하고 있나?

나 이대로 괜찮아?

나 믿지?" 라고.



#신독 #나이듦 #퓨처셀프 #공정한관찰자 #애덤스미스 #발타자르그라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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