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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14. 2022

말보다 침묵, 침묵보다 글,
글보다 눈빛

'진심'에 대한 소고

쉿!,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다는 소리

딱!, 잠깐 멈추라는 소리

멍!, 억지로 나를 쉬게 하는 소리

야!, 흩어진 정신 붙잡으라고 날 혼내는 소리

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의 소리

아..., 정신을 때리는, 정신이 왔다갔다 하다 어디 걸려든 소리

쫌!, 그만하라는 건지 더 하라는 건지 나조차도 애매한 소리

습~, 감정참는 소리


진짜?, 극한 공감의 소리

그만!, 더 이상 이해못하는 한계의 소리

울컥!, 마음이 자기 봐달라는 소리

어쩜.., 그 다음 말은 하지 말라는 소리

짜잔~. 장난기 발동 또는 자랑할 게 생긴 소리


어이쿠!, 과하거나 모자라거나 핀트가 어긋났다는 소리

아뿔싸!, 개념치 말라는 소리

그랬군!, 어지러움이 가시는 소리

그렇지!, 서로의 수위가 맞아떨어진 소리

그래도..., 미련이 날 붙잡는 소리

조금만..., 미련이 날 붙잡았는데도 계속 미련떠는 소리

세상에!, 내게 없는 경험을 선물받은 소리


그리고

무엇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어떻게라도 해석될 수밖에 없는

아무렇게나 해석이 가능한

어쩔수없이 해석해야만 하는

침묵의 소리.


거의 말이 없는 내가 그래도 뱉는 소리들.

이 소리들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발견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이렇게 말을 안하고 사는구나 놀랐고

이런 짧은 음절로도 의미가 전달되는구나 놀랐고

말부터 배워야 할 수준에 놀랐다.


말을 못하는 것은 아니나

해야할 말을 못하는 것은 인정한다.

말에 논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논리따윈 쓸모없다는 것도 인정한다.

말에 내가 없는 것은 아니나

말에 나를 들이미는 순간 오해도 함께 온다는 것도 인정한다.

말에 힘이 없는 것은 아니나

힘줘서 말해봤자 목만 아프다는 것도 인정한다.


진심을 담기에 침묵은 말보다 낫다.

언급했다시피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우려가 있고

어떻게든 해석하려는 모험심으로 팽팽한 세상에서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긴장과 서두름이

내 침묵에 채색되지 않도록

오늘도 정신은 열어놓고 침묵하련다.


그러나,

침묵이 수많은 오류와 해석을 제공하기에

침묵보다 더 기능적으로 훌륭하게

진심을 담아내는 것은 글이다.

이제는 혀보다 손이 더 분주해졌고 더 익숙해진 탓이겠지.

말로 하자면 이래저래 부연해야 할 것들이 상당한데

글은 여러 쓰임있는 단어들도 많고 굳이 부연없이도

사람들에게는 기승전결이라는 소통이 버릇되어 있는지라

일단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중간에 강제로 끊어낼 수가 없다.

말을 하다가 끊기는 경우는 다반사이지만

글은 읽는 상대가 눈감지 않는 한 끊기지 않고 끝까지 전달이 가능하다.

글이 말보다 전하고자 하는 면에서는 더 낫다.

조용하기도 하고

다시 전할 때도 똑같은 단어와 똑같은 문장과 똑같은 흐름이라 똑같이 전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입 다물고 정신열고 글로써 나를 쓴다.

민망하지만 눈빛의 여러가지를 제 눈으로.

그런데

침묵이나 글보다 더 진심을 담기 좋은 그릇이 있다면 나는 눈빛이라 여긴다.

말은 당연하고 침묵도 오해를 업고 오며 글도 거짓을 달고 올 수 있지만 눈빛만큼은 그 어떤 짓도 못하게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듯 하다.

대화할 때 눈에서 눈을 떼지 않는 내 습성에

어떨 때엔 말과 글없이 눈빛만으로도 한참을 상대와 마주 앉아 있곤 하는데

그 때 눈물이라는 것도 자주 등장하는 걸 보니

눈빛만큼 강렬하고 진솔된 전달은 없는 것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교수님 특기는 5분안에 사람울리기'라고 할 정도니 적어도 말이나 침묵, 글보다 눈빛이 나의 것을 전하는 데에 탁월한 것이 분명하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눈으로 표현된다고 하면 아니라고 할 자 누가 있을까?

우리는 이를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왠지 꺼림직하면 눈부터 쳐다보지 못하니까.

아주 미세한 떨림이라도 눈빛이 흔들리니까.


작거나 적은 것을 큰데 담기는 쉬우나

큰 것을 작은 곳에 담기는

어지간한 압축이 아니라면 요술이나 묘기를 부려야할텐데,

그나마 진심과 진실은 부피없는 성질의 것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이 작은 두 눈동자에 커다란 내 마음의 요모조모를 담아낼 수 있으니...

내 손이 재주를 부려 퍼담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가슴의 다양한 감각이 이를 허락할 때만 눈빛으로 가는 길이 열릴텐데, 어쩌면 얼마나 다행인가! 

특별한 재주가 필요없고 내 양심과 진심과 심연의 깊이를 깊게 하는 것으로 가슴이 내 아양을 받아주니...

시간이 지나며 녹슬고 허술해지고 보기 싫어지는 것이 사물일텐데,

어지간해서는 손볼 필요없고 내가 내 눈빛을 보지 못하니 보기싫어질 리 만무하고

몸에 딱 붙어 어디로 갔는지 찾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내 할일이라곤 뜨겁고 진솔한 가슴을 가지는 것외엔 그 어떤 필요도 없이 눈빛을 맑고 곱고 깊게 손보며

심지어 세월까지 담아내 준다니...


그렇다면

오늘도 입 다물고 정신열고 글로 나를 표현하며 내 눈에 진심이 담기길,

내 세포 곳곳에 진심이 입혀져 작은 구슬만한 단 두 개의 검은 자위가 이 모두를 대변해주길

간절히 청해보련다.




#김주원교수 #침묵 #글쓰기 #소통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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