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Dec 02. 2022

'거목'이 되기 위한
'묘목'의 길이라면 좋겠다.

'고립'에 대한 소고

'혼자가 되어 고독에 몸을 맡기는 것을 허가받은 지금, 

반은 타고나고 반은 터득한 이 재능이 나타났다'고 혼자 중얼거린 괴테처럼 

나도 그렇다.


나에게 외부와의 '의도적 단절'을 지시하고 '고립'을 택한 후부터 나는 나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고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던 나에게서 스물스물 올라오는, 잡히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놓칠까봐 매일 밤낮으로 그 환상을 쫒게 되었다. 반쯤은 타고난 것들이 내 속에서 참으로 오래동안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 나는 알아가고 있다.  


아직은 어줍잖은 글이지만 이 창작활동에 있어 '창작가는 항상 자신의 가장 훌륭한 덕목조차도 의식해서는 안된다'릴케의 조언은 내가 지금까지 사회적으로 만들어온, 나를 대변하던 것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켰다. 이로써 나는 오로지 나 자신과 만날 방법을 터득하여 기회를 획득했고 나를 들여다보며 내 안에 숨을 죽인 채 나의 눈길과 손길을 기다리는 그 희미한 실루엣을 발견해가고 있다.


거창하게 '내 깊은 곳의 영혼, 근원과의 조우'라고 아직 말하기엔 나 자신부터 코빵귀가 절로 나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 자체를 하나의 세계로 바라보며 내 속에서 나를 찾는 활동에는 어느 정도 낯섦이 사라져가는 느낌을 갖는다. 내부로부터 드러난 창작물이어야 하나의 예술로 승화된다는 진리. 이 진리에 근접해가는 것이라면 나는 지금 잘해내고 있는 듯하다. 지금의 나는, 창작물이 세상의 평가를 받는 것에 개의치 않고 그저 내 것을 드러내는 것만이 내가 해야 할 것이라면 죽을 때까지 해도 좋으리란 생각에 도달한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에 나는 유일하기에 내 안에서 나온 것은 무조건 독창적일 수밖에 없으며 이것만으로도 존재가치는 충분하니까. 


서서히 '혼자'가 되어 가는 이 길은 외부로부터 나를 고립시키더니, 내부의 나를 찾아 다시 태어나게, 그리고 표현하게 하는 아주 많이 낯선 경험을 선물했다. 이 낯섦이 어렵거나 거북스럽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러운 쾌락임을 깨닫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쾌락을 즐기는데 나는 푹 빠져있다. 


분명 나는 글쓰기의 특별한 훈련을 받은 적도 없고 그렇다고 타고난 재능이 일찌감치 발견된 것이 아니었으며, 게다가 나름 살면서 덧입혀놓은 프레임덕에 '글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사고가 나를 지배했지만, 무언가가 내게서 자꾸 탈출을 시도하는 것을 막을 재간은 없었다. 하지만, 제대로 나오지 않는 찜찜함과 나오는 것들의 양이 적은데다 언어적으로 서툰 표현때문에 속상한 시간들이 지속될수록, 고립은 나에게 더욱 더 이 작업에 고집부리고 집착하게 만들었다.


고립을 택한 후 고독이 밀려오는 시간들은 

지금, 나를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켰다.

고립을 택했기에 분리가 가능했고

분리가 되었기에 내 안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게 되었음을 나는 경험으로 체득하게 되었다.

어제 '문제해결에 대한 소고'에서도 쓴 바 있지만 내게로 오는 모든 문제, 통증, 갈등, 생각, 사람, 정보, 기타 것들은 나에게 와서 해야할 기능들이 있으니 내게로 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나를 그 모든 것들로부터 분리시켜 '나를 관리'하는 것에만 신경써야지 내 인생에 개입해야 하는 나름의 이유로 내게 온 그것들의 '역할'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직관적으로 내게로 오는 생각, 

내 안에서 나오려는 창조물들,

예상치 않게 등장한 문제, 

관계와 함께 늘 등장하는 갈등,

어느날 갑자기 날 아프게 하는 통증,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 듣게 된 정보, 

그리고 지금 내가 미처 감지하지 못하는 내게로 온 모든 것들이

나의 관여없이 그것들이 내 인생에서 해야 할 역할들을,

되도록이면 가속도를 내어 해치우고 가길 바라는 맘뿐이다. 

하나 더 바래도 된다면 

그것들이 내 인생에 개입한 이유와 그로 인해 내가 치르는 대가에 걸맞게 

지금 이 자리의 나를 

그것들이 데려다 놓기로 작정한 그 자리로 제대로 날 데려가주길 바란다.


외부와의 의도적 단절

나를 고독한 고립으로 견인했고

고립은 나에게로 온 모든 것들로부터 나를 분리시켰으며

분리는 나의 정신과 내 안을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내 모든 감각으로 전해주고 있다.


릴케가 말한대로 '분수같은 존재. 자기 자신으로 가득차 자기에게만 전념하는, 즉 무관심한 상태'에 내가 자리한 것이라면 좋겠다. 작은 화분에서 뿌리뽑혀 갑자기 흙이 털리고 밝은 햇살의 눈부심과 같은 느닷없음을 당하는 묘목처럼 나에게로 느닷없이 온 것들이 '거목이 되기 위한 묘목' 길이라면 좋겠다. 그렇게 내 죽는 날까지 서 있어야 할 그 자리로 가는 길이라면 좋겠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큰일날 뻔했다.

이렇게 큰 우주를 품은 나를 몰라볼 뻔했다.

이렇게 다양한 색을 지닌 나를 외면할 뻔했다.

이렇게 지독하고 치열한 나를 가만둘 뻔했다.

이렇게 내게로 온 것들을 내가 방해할 뻔했다.


공부하길 참 잘했다.

나는 여전히 내가 궁금하다.

앞으로 '내가 모르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지

앞으로 '무섭게 내게로 오는 것들로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깊을 것인지


공부하길 참 잘했다. 

오늘 새벽 공부하다가 찍은 내 책상



#공부 #릴케 #괴테 #김주원교수 #지담북살롱

이전 02화 '문제'를 마주하는 내몸 운영방식 4가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