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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30. 2022

왜? 왜?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

'위선'과 '정의'에 대한 소고

내가 말한 대로 나는 행하는가?

그러지 않으면 거짓을 말하는 위선자다.

내가 아는만큼 실천하는가?

그러지 않으면 지적허영으로 포장된 위선자다.

내가 가르치는 것을 내 삶에서 보여주는가?

그러지 않으면 교육자라는 감투 뒤에 숨은 비열한 위선자다.

내가 주장하는 것을 나는 믿는가?

그러지 않으면 구라발로 남들을 현혹시키는 위선자다.

내가 배우는만큼 행동하는가?

그러지 않으면 영혼을 농락하는 위선자다.

내가 가는 길을 믿고 따르는가?

그러지 않으면 나도 나를 믿지 못하는, 나를 기만하는 위선자다.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내는가?

그러지 않으면 신뢰를 배신하는 위선자다.


내가 나를 기만하는 위선자는

세상이 자신을 기만하더라도 할 말 없다.

하물며, 타인이 날 기만해도 할 말 없어야 한다.


나는 나를 속이는데

왜 남이, 세상이 나를 속이면 광분하는가?

내가 내 영혼을 농락하는데

왜 신이 나를 농락한다고 분개하는가?

내가 나의 주장을 믿지 않는데

왜 남들이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오열하는가?

내가 나에게 정의롭지 못한데

왜 세상이 나에게 정의로워야 하는가?

나는 그리 살지 않았으면서

왜 내 자식에게는 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고 소리치는가?

나는 나와의 약속을 져버리면서

왜 남이 나를 배신하면 낙인찍어 평생을 원망하는가?

왜?

왜?

왜 그래야 하는 것인가?


위선떨지 않는 것을 한 단어로 '정의'롭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정의'를 꼭 존롤스나 마이클샌들에게 배워야만 안단 말인가?


위선.

타인에게서 찾지 말고

나로부터 찾아내어

나로부터 먼저 깨끗해져야 한다.

나로부터 먼저 정의로운 인간으로 당당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을 모방하고

모방은 행하게 하며

행하면 전염되고

전염되면 수가 늘고

수가 늘면 문화가 되고

문화가 되면 보편이 된다.


'정의로운 사회건설'이라는 진부하고도 난해한, 

너무 많은 거짓부렁의 난무에 희석된 이 단어가 제 가치대로 소생하려면, 

이 소생이 나와 내 자식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안다면,


나 자신부터 위선떨지 말자!

나부터 먼저다!

'개개인의 나'를 먼저 깨끗이 하면 제 아무리 소수의 사악한 악마가 설쳐대도

말 그대로 '정의로운 사회건설'이 되지 않을까?

내가 '사회건설'을 목소리높여 외치는 운동가를 자처하는 것이 아니라

나-조직-집단-사회-국가-글로벌-지구-우주라는 연결고리의 우선은 

'나'로부터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나같은 개인'이라고 나를 작게, 폄하하며 말하지 말자.

릴케의 말처럼 '한걸음만 내디뎌도 그것은 보편적인 것, 타당한 것, 인생의 기본 색채, 그 색채에 대한 충동, 그 색채가 사라지면 생겨나는 무한한 빛에 대한 충동이 될지도' 모르니까.

나는 전체이니까.

'이기'는 '이타'로 승화되니까!


물론, 나 역시 위선자다!

사람이 알고 저지르는 잘못이 10이면 

모르고 저지르는 잘못이 100이라는데

모르고 저지른 90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알고 저지른 10이 열, 백, 천, 만은 족히 넘을 듯하다.

내가 만일 아우구스티누스, 톨스토이, 루소처럼 '고백록'을 쓰게 된다면

이들처럼 단 한권만으로는 부족할 것이다.

나는 위선을 숨기고도 살 수 있었던 자기기만에 빠진 인간이었다.


마음과는 달리 칭찬해왔고

정신과는 달리 미소지었고

지성과는 달리 아는체했고

행동과는 달리 말이 거창했으며

영혼과는 달리 이재에 밝았었다.


주장과는 달리 용기없었고

꿈과는 달리 동굴을 좋아했으며

글과는 달리 눈이 어두웠고

진리와는 달리 원망이 많았다.


내 혀는 마음에 없는 말을 잘도 했으며

내 머리는 어떤 찰나 초스피드로 나의 것부터 계산했으며

내 눈은 봐야할 것에 눈감았으며

내 손은 잡아줘야 할 손을 힘들다 내쳤으며

내 다리는 넘어야 할 문지방에서 돌아섰으며

내 귀는 뛰어난 편집기술로 소리를 토막냈으며

내 심장은 뛰지 말아야 할 곳에서 마구 뛰어댔었다.


떨리는 심장과 손으로 

이 글의 발행을 누르고야 만다는 것은

'위선의 기만'에서 멀어지는 길을 걷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말은,

글은,

나에게서 나오는 순간 세상이 거침없이 낚아채니까.

세상에 대고 뻥치는 나는 되지 말아야겠지.

'발행' 두 글자가, 

'발행'하기로 한 새벽 5시가 오늘은 더 무섭다.


p.s. 

마치 

내가 습관을 만들었는데 습관이 나를 변화시키듯이

지금껏

내가 글을 만들려 끙끙댔는데 이제는 글이 나를 키워낸다.

드디어... 

선순환으로 굴러가는건가?



#위선 #기만 #원망 #브런치북 #지담북살롱 #김주원교수 #아우구스티누스 #톨스토이 #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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