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께

어버이날. 참 부족한 둘째딸이.

by 지담

매일 새벽 5시 발행을 위해 매일 책상에서 글을 쓰면서도 엄마아빠께 드리는 편지글은 처음이네요. 그러고 보니 참 제가 많이 인색했고 게을렀습니다. 당신들께 이리도 늦게 이제서야 제 마음을 전하니까요... 어쩌면 저의 게으름보다 저의 무지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음.. 그러니까... 부모의 사랑을 너무나 당연하게 받고만 있는, 이리 많은 혜택을 받았음에도 마치 권리처럼 누리고 사는. 그런 무지함이 제게 이런 잘못을 저지르게 한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으실 때

무뚝뚝한 딸이라, 둘째이기에 별 책임감도 없이 그렇게 지내온지라 언니나 외아들인 남동생이 다 알아서 하겠지 라고 그저 치부했던 시간들도 많았고 어떤 결정에 있어서도 나 하나쯤이야 싶은 안이함도 있었고 다 알아서 하실텐데 내가 무슨..이라며 은근슬쩍 회피하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가족 안에서 저는 그런 존재로만 지내도 괜찮았고 또 그렇게 별 목소리없이 지내주는 게, 목소리내는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주는 게 제 위치라고 여겼고 지금도 그리 여기고 있습니다.

잘하는 것인지 잘못하는 것인지 몰라요.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게 우리 가족안에서의 저의 위치인 듯 하여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당신들께 가진 사랑의 크기나 감사함의 농도는 그 어떤 누구보다 약하지 않습니다. 적지 않고 줄어들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더 커지고 있습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사회적으로 명명된 어떤 책임하에서 힘겨운 시간들을 보내며 당신들이 제게 어떤 존재인지, 얼마나 강한 힘을 주신 존재인지 제가 조금씩, 이 나이에 들어서야 이해하게 되어가니까요. 참 늦게 철이 드는 중입니다.


제 나이 정도되니 온통 부고 소식들뿐입니다. 부모님을 여의는 심정을 저는 아직 가져보지 못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연로'라는 단어가 너무나 어울리는 숫자를 살아가시면서도 전혀 연로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두 분이 보여주시는 육체적 건강함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를 지탱시켜주는 것이 어쩌면 정신의 강건함이 아닐까 싶어요. 어떻게 그렇게 한순간도 지침없이 하고 싶은 것이, 해내야할 것이, 또 하고야말 것이 생기는지 참으로 당신들의 정신은 제게 큰 기둥입니다. 저도 당신들의 나이, 80이 훌쩍 넘은 그 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을까 싶지만 당신들의 자식이니 그리 될 것이라 믿어봅니다.


자식들 통장도, 자식들 시간도, 자식들 지식도 그 어떤 것도 당신들은 손대지 않고 그렇게 당당하고 꿋꿋하고 정직하고 정확하게 살아가실 수 있는지 제 나이 50이 넘으니 이러한 '삶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저는 이제서야 압니다. 당신들보다 한참을 더 많이 배운 저에게도 '사는 능력'은 참으로 어렵고 버겁기도 한데 어찌 그리 가난하고 없었던 시절에서 지금의 모습까지 부모다움을 보여주시는지 저는 참으로 당신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사는 능력'이라면 지식을 넘어선 지혜이기도, 삶에 대한 경건한 애착이기도, 삶을 대하는 자세이기도, 자신의 삶에 대한 이해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성실한 행동들이 모두 기반이 되어야만 갖춰지는 능력이겠지요. 제가 분명 당신들보다 가방끈이 길지만 더 분명한 것은 방금 거론한 '사는 능력'에 있어서는 당신들께 아직도 무릎꿇고 배워야 할 점이 아주 많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배우고 싶은 부모로 계셔주셔서 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신들의 건강함에, 정신의 강건함에, 그리고 삶을 대하는 태도의 당당함에 깊이, 너무너무 깊어서 표현하지 못할 만큼 감사드립니다.


제게 큰 스승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까지 하면서 학교에서 많은 선생들이 저의 선생이었지만 솔직히 이들에게 스승이라는 호칭을 쓰지는 못하겠습니다. 제가 건방지고 모가 나서이기도 하겠지만 진짜 스승이 참 귀한 세상에서 아직 못 만난 것일수도 있구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스승과도 같은 몇 분을 알게 되었지만 이 나이에 이제서야 압니다. 제게 진정한 스승은 당신 두분이시라는 것을요.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려서부터 몸으로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을 가지는 것이 어떤 위력인지도 알게 해주셨구요. 가진 힘을 자식들에게, 손주들에게 나눠주시는 게 어떤 것인지도 보여주셨어요. 넘치게 보여주셨어요. 무엇보다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정신을, 그리고 태도를 어떻게 관리하며 노후를 살아가는지도 너무나 제대로 보여주고 계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의 미숙함으로 살면서 여러 잘못된 선택들, 혼란스러운 시기들을 거쳤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삶의 중심을 잡고 살고 있는 지금, 이 근본바탕에는 저를 키워며 보여주시고 저도 모르게 스며들어 있는 당신들의 삶이 아마도 제 내면에 잔잔하게 바닥을 이루고 있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인이 된 두 녀석을 키우면서 당신들과 같은 부모가 되어가는 중입니다. 그렇게 든든하게, 당당하게, 떳떳하게 아주 많은 시간 자식들과 함께 해야지.. 라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가치있게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덕분입니다.


소소한 수다로 즐겁게 해드리는 것도

살가운 대화로 지루한 시간 함께 보내드리는 것도

옆에서 재잘거리며 맛난 음식 나눠먹는 것도

별로 잘 하지, 아니, 거의 하지 않는 저이지만 그저 이런 성격이라서 자기 생에 굳은 심지 가지고 사는구나. 로 이해해주시고 그런 딸들이 저 말고도 둘이나 더 있으시니 제게선 또 다른 종류의 깊은 사랑을 받으시지요.


아마도 앞으로 두 분이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신 그 이후 하느님곁에서 저를 바라보실 때까지 저는 이렇게 중심을 지키며 제 삶을 잘 살아갈 겁니다. 아이들도 제대로 잘 키워낼 것이구요. 모난 짓이나 그릇된 성정으로 해를 끼치거나 손해를 입는 그런 삶은 살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끼칠 일은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잘 살아주는 것이,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그렇게 나이들어가며 존중받는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두 분께 드리는 사랑이고 효도라 이름할 수 있는 삶의 기본인 것을 잘 알기에 그리 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오랜만에 날이 화창합니다.

화창한 날, 같은 하늘 아래에서 지금처럼 살아주세요. 오래오래....지금처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당신들이 저의 부모님이시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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