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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9. 2023

꿈은 현실이 됨을 증명해줄테니
너의 꿈을 현실로 만들렴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2

지난 글에서 네 신체와 정신, 영혼의 연동을 이해했다면 이제 그것들이 어떻게 무엇으로 세상에 발현되어야 하는지를 얘기할거야. 오늘도 긴 엄마의 이야기를 찬찬히.. 잘 읽어주길 바란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진리란다. 우선 너의 정신에 이 진리를 결코 움직이지 못하도록 매어놓길 바란다. 다시 말하지만, 꿈은 현실이 된단다! 누구나 이 진리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아무나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닐거야. 그래서, 엄마는 누구에게나 가능한 이 진리를 논리적으로 네게 알려주면서 네 인식속에, 그리고 무의식속에 단단히 뿌리박아 네가 꿈을 현실로 만들길 바래.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면 '네가 스스로 꿈을 이룰 수 있는 정신과 마인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닐까?

 

    

자, 준비됐지?



첫째, 세상은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의 원리에 의해 가동된단다. 

원인은 결과를 위해 작용하는 힘. 결과는 작용된 원인으로 드러나는 실재. 네 주변의 사물들을 보렴. 바람이 불면 나뭇잎이 흔들리지? 인과다. 후~ 불면 촛불이 꺼지지? 인과다. 뭔가를 툭 치면 넘어지지? 인과다. 책을 보면 모르는 것을 알게 되지? 인과다. 

그리고, 지금 너의 모습은 네가 지금까지 선택한 모든 것이겠지? 인과다. 

모든 현상은 원인이 되는 자극에 의해 반응인 결과로 드러난단다. 


인과는 무형이든 유형이든, 대자연이 움직이는 원리야

너는 반응하는 존재일 뿐이지. 

원인에 반응하여 결과를 이끌어 내는. 반응하는 존재.

     

춧불을 끄려면 그만큼의 입김이 들어가야 하지? 나뭇잎이 흔들리려면 그 강도만큼의 바람의 세기가 필요하겠지? 뭔가를 넘어뜨리리면 그만큼의 힘을 가해야지? 모르는 것의 정도에 따라 책읽는 양은 다르겠지? 

여기서 우리는 

원인과 결과는 같은 크기와 질량을 서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또한, 전원인 후결과. 

즉, 연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도 알 수 있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연결이라는 것을 이해했다면 

자, 이제 이 둘을 한꺼번에 바라보렴.


결과가 그리 나오려면 그리된 원인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원인에는 결과되어질만큼이 이미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지. 이해되니? 원인을 이리 주면 결과는 이리 나온다. 원인을 저리 주면 결과는 저리 나온다. 내재된 힘이 전제되어야 그 힘만큼 후에 드러난다. 그치?   

  

이 단순한,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인과의 원리에 의해 들어간만큼 나오게 되어 있고 나온만큼 또 들어갈 수 있어. 이러한 이치에 따라 바라는 것(꿈)이 네 내면에 투입되면 그것만큼의 결과(현실)가 드러나게 되어 있지. 반대로, 어떤 결과(현실)를 원한다는 것은 이미 결과를 드러내게 할만큼의 양질의 원인(꿈, 바람)이 투입되어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이 단순한 논리가 머리로 이해되었다면 이제 엄마는 말 다 한것이야. 인간은 '논리'가 이해되면 그 방향으로 이끌리게 되거든. 논리적으로 이해되었는데도 행동을 안한다? 그건 선택이니까... 뭐... 하지만, 너는 어리석지 않지. 너는 충분히 광활한 내면의 소유자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못한다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문제란다. 논리적으로 이해됐는데도 감각적으로 안 믿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너는 바보가 아니야. 논리가 이해됐고 감각도 그리 될 것 이라는 느낌이 든다면 네 꿈을 현실로 이룰 수 있는 것이야!


인간은 욕구의 동물이며 욕구란 '바라는 바', 즉 꿈이야. 꿈이 없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가 되며 그래서 꿈이 없으면 살아있는 시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지. 거듭 말하지만,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 진리이며 진리는 누구에게나 적용되고 그 '누구'중에 너도 있길 바란다. 단, 누구에게나 적용되지만 좀 전 말했던 원인과 결과 사이에 위치하는 '반응'. 이 반응에 의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야. 

     

자, 이제 '반응'에 대해 얘기해볼까? 

반응은 감각적으로 먼저 다가와. 어린아이들은 '나는 수퍼맨이 될거야'라고 꿈꾸지. 수퍼맨을 봤고(시각), 따라하니 될 것 같고(오감 및 초월된 감각) 그래서, 자신은 믿는거지, 수퍼맨이 될 수 있다고. 그래서 목에 보자기를 두르고서는 높은데서 막 뛰어내리잖아. 즉, '반응'은 감각에서 관념으로, 관념에서 행동으로 이동하여 나타나는 증상인 것이지.

     


둘째, 관념은 믿지 않아야 할 대상이야. 

'관념'이라면 관성적으로 네게 자리잡은 생각을 말하는 것인데 이 관념이 네게 자리잡힌 연유가 과연 너 스스로 만든 것인지 남 또는 무언가에 의해 너도 모르게 자리잡힌 것인지 네 머리속을 한 번 들여다보렴. 우리는 이 관념이 실상과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아주 잦은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어. 경찰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관념화되어 있지만 실제 그러지 않은 경찰도 많고 배가 아주 많이 나온 여성은 임산부라고 관념화되어 있지만 다른 이유로 그리 된 것일 수도 있고 저 옷은 나에게 안 어울릴거야 라고 관념화되어 있지만 막상 그런 스타일이 잘 어울릴 수도 있잖아. 실제 아주 과거에는 비타민이 인체에 해롭다고 알려졌었어. 그런 지배적인 관념이 있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비타민을 안 먹었겠지. 지금은? 비타민은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되지. 혹 또 모르지. 이러한 이론적 진실이 또 어떻게 오류로 밝혀질지. 

    

고대 로마시절에는 신의 원죄를 인간이 대신 치러야 한다는 지배적 관념때문에 신앞에 자신을 세워두고 죄를 벌받기 위해 스스로 아주 가혹하게 채찍질을 했어. 지금은?. 우습지만 엄마가 어렸을 때 북한의 누구에겐 혹이 있는 줄 알았단다. 그렇게 배웠으니까. 그런데 자란 후 실제 사진을 보니 혹은 없더구나. 


하려던 얘기로 돌아가서 관념은 그다지 믿을만한 것이 못된단다

이렇게 일상에서 우리는 관념에서 벗어난 많은 것들을 경험하는데 

과연 관념을 믿어야만 하는 것일까? 

아니면 과거의 사고덩어리인 관념을 배제시킨 채 

네 앞에 놓인 현상을 제대로 다시 판단한 후 미지의 미래를 추론하는 것이 더 나을까?      


기존관념을 배제시킨 후 네가 주입시킨 관념으로 네 정신을 채워나가길 바래. 정확하게 진실을 알고 그 진실의 본질을 알 때까지 관념은 의심해야 할 대상이야. 관념에 따라 반응(행동)하게 되는 것이니 네가 스스로 네 관념을 조절하는 것부터가 중요해. 기존관념 중 냅둘 건 냅두고 조절할 것은 조절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관념에 따라 행동, 행동에 의해 결과가 나타나니까.     


이런 관점에서 '꿈은 현실이 아니야' 또는 '꿈이 현실이 되는 것은 어려워',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허상이나 망상이야'라는 관념이 혹시 네게 자리잡혀 있다면 이는 네가 스스로 그리 주입시킨 것인지 아니면 너도 모르는 사이 네게 자리잡힌 것인지 쉽게 가늠이 될거야. 만약 네 스스로의 의지로 그리 관념화해놓은 것이 아니라면 일단 배제시키렴. 그리고 네 주변에 꿈을 꾸는 사람, 꿈을 이룬 사람들을 떠올리렴. 그러면 너에게 새로운 상상이 등장할거야.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사람은 꿈의 크기만큼 실현할 능력을 이미 가지고 있구나!'라는 감각이 관념으로 새롭게 자리를 잡겠지. 그렇게 자리잡은 관념대로 너는 판단하고 행동하게 되겠지.     

이 세상에 단 한사람이라도 꿈을 이룬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실적으로 증명된 현실이야. 이 세상에 꿈을 이룬 사람을 한명이라도 아니? 그렇다면 너도 할 수 있는거야! 주변을 둘러봐. 한 사람만이 아닐걸! 수없이 많아. 네 관념 속에 '에이, 내가 뭐라고...', '에이, 엉뚱한 생각말자' 등등이 네 꿈을 방해하는 것이지 네가 꿈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결과되어지기 위해 네 안에서 크고 있을걸!   

  


셋째, 자연은 한치의 오차도, 오류도, 거짓도 없이 씨를 심으면 열매를 맺는단다. 

자연을 창조한 거대한 존재는 아주 치밀한 계산에 의해 움직이거든. 인간의 시각과 지각으로는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광대한 범주에서 이유(원인)를 드러내고 결과를 만들어내지. 자, 우리가 그 거대한 존재를 이해하기 버거우니 가까이에 있는 화분을 바라보자.


화분에 씨앗을 심어봤지? 심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니? 잘 자라주길, 예쁜 꽃이 피길 바라지? 씨앗은 원인, 꽃은 결과. 그 작은 씨앗을 한 번 떠올려보렴. 어떻게 그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 씨앗에서 싹이 나고 줄기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잎이 생기고 꽃이 피고 비바람과 해충을 이겨내고 벌과 나비를 초대하고 마지막에 꽃인 자신의 결과를 희생하며 잉태된 여러개의 씨앗을 다시 땅에 뿌릴까? 원래의 작은 씨앗에는 이미 미래의 과정과 결과가 알고리즘처럼 프로그밍되어 있었던 것이야. 비바람과 해충을 이겨내는 능력까지 모두.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든 원자들에 의해 세상은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다 내재되어 있는 프로그램에 의해 자신만의 창조의 길을 가게 된단다.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한 후 수많은 단어들이 생성되고 소멸되었지. '진화해석학'적인 관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어라도 지금까지 인류와 함께 존재해온 단어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해. 인류에 필요하기 때문에 존재해왔다는 것이지. '지혜', '창조', '소망', '가치'.. 수없이 많은 추상적인 단어들. '꿈'도 그 중 하나야. 이유와 가치가 없었다면, 인간에게 무용했다면 벌써 소멸되었을 언어야. 그래서, '꿈'이라는 단어에도 프로그램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어.     


'꿈'을 씨앗에 비유해 봐. 인간은 누구나 꿈을 지니고 태어나지. 조금 근사하게 표현하면 '인간은 욕구의 본능'을 이미 가지고 태어나. 무언가를 추구하는 동물인거지. 배고프면 먹고 싶고 기면 걷고 싶고 피곤하면 쉬고 싶고 무언가를 갖고 싶으면 가지려 하고.. 이런 본능적인 욕구. 꿈은 그 가운데 가장 큰 욕구야.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라고 해도 되겠지. 자신의 본성적인 욕구, 즉, 자아에 대한 욕구인 '꿈'은 누구나 손에 쥐고 세상에 나와. 누군가는 그 것을 '삶'이라는 터전에 심고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누군가는 씨앗도 심지 않고 그저 걷는 거야. 이 차이는 아주 다르겠지?

     

씨앗을 제 아무리 화려한 통에 고이 보관한다 한들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해. 꿈을 가지고 태어나도, 즉, 자신이 가지고 있어도 다 이뤄지지 않는 것도 이와 같지. 가슴속에 간직하고만 있는 꿈은 그저 허상일 수 있어. 또한, 씨앗은 조건이 맞지 않아도 열매를 맺지 못해. 사막의 선인장이 추운 북극에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꿈도 그에 걸맞는 조건들이 필요해. 그리고 하나의 씨앗에서 많은 열매가 맺힌다면 그만큼 많은 씨앗이 창조되겠지? 이는 생명의 종족보존이라는 모든 생명체의 기본욕구에 의해 그리 되는 것이야. 여러개 중에 어떤 것은 바람에 소실되기도, 어떤 것은 땅에서 말라죽기도, 또 어떤 것은 누군가의 먹이가 되기도, 그렇게 가혹한 운명들을 피해서 운좋은 하나의 씨앗이 열매를 맺는거야. 


잣나무 한그루에서 열리는 잣은 수백개가 넘어. 청솔모가 먹고 사람들이 주워가고 바위틈이나 돌 위에서 죽기도 하고. 그래도 남은 잣이 땅에서 자기 운명대로, 프로그래밍된대로 잣나무가 되어 다시 수백개의 잣을 열매로 맺는 것이야. 너에게도 아주 많은 꿈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을거야. 그 중 어떤 것들은 환경에 의해 소실되기도, 망가지기도, 좌절되기도 하겠지만 결국 하나의 튼실한 꿈이 열매를 맺게 되지. 꿈은 꿀수록 커지고 하나의 꿈은 또 다른 꿈을 견인한단다.


지금까지 3가지의 이유를 들어 꿈이 현실이 됨을 논리로서 네게 이해시켰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잠깐 엄마가 너무나 좋아하는 키케로의 글을 읽어볼래?    


 

무화과의 그토록 작은 씨앗에서, 또는 포도씨에서, 또 그 밖의 온갖 과일과 식물의 작디작은 좁쌀 같은 씨앗에서 그토록 큰 줄기와 가지를 자라게 하는 그 힘에 대해서는 더 말해 뭐하겠는가? (중략) 포도나무는 원래 가지가 늘어지는 성질이 있어서 받쳐주지 않으면 땅에 닿게 되는데, 그래도 똑바로 서 있으려고 덩굴손으로 뭐든지 닿기만 하면 껴안고 올라간다네. 몇 번이나 미끄러지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기어 올라가는...  - 키케로 인생론(2009, 동서문화사)        


포도씨는 오로지 포도를 열매맺는 것만이 유일한 꿈이야. 오로지 자신이 되는 것. 이를 위해 그래도 똑바로 서 있으려고 손에 닿기만 하면 껴안고 올라가는거지. 꿈이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정체이며 현실은 자신을 증명해낸 결과야. 포도씨앗이 포도로서 자신을 증명하듯 너의 꿈도 자신을 증명해내기 위해 어떤 굴곡도 오를 수 있는 힘을 지닌 채 네 안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가 살면서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이미 네 주변에 널려 있어. 자연에게서 우리는 삶을 배울 수 있단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니 당연한 말이지만...네가 포도나무에게서 배워야 할 것을 꼭 삶에 적용하길 바래. 감사히... 


어려서는 수퍼맨이 되겠다. 대통령이 되겠다. 축구선수가 되겠다. 수없이 많은 꿈을 꾸지. 꿈은 그런거야. 아주아주 많이 자주 다양하게 꾸기 시작하지. 그러다가 하나가 네 가슴에 딱! 또는 서.서.히... 씨앗으로 심어지면 포도나무처럼... 그렇게... 그렇게.... 그것이 현실이 되는거야. 그러니 꿈은 계속해서 아주 많이 꾸어야 해. 나이와 상관없어. 죽기 직전에도 꿈을 꿀 수 있거든.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양에 상관없이 꿀 수 있어. 머리로 재단하고 계산하지 말고 많고 다양한 꿈을 꾸렴!!! 


혹 이쯤에서 씨앗은 보이는 것이고 꿈은 보이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심냐고 네가 물을 수 있겠다 싶은데..

'창조'라는 개념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지. 

창조는 기존에 없었던 것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야. 

무형이 유형이 되는. 

아이디어도, 컨텐츠도 모두 무형의 것이야. 

우리 인간은 모두 무형의 것을 유형으로 창조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어. 

어디에? 

네 온몸에. 

특히, 가슴에.      


자, 네 주위를 둘러보렴. 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 먹는 것, 입는 것,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 건물들, 모두 생각이라는 무형에서 만들어진 유형의 것들이야. 그리고 조금 보태자면, 이 유형한 것들이 다시 무형이 되지. 누군가의 호기심(무형)이 어떤 디자인의 옷(유형)을 창조했다면 그 옷이 유행하게 되고 문화(무형)가 되는 거야. 문화가 되면 보편화되었다는 의미이니 다시 또 누군가는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이렇게 한 범주에서 창조가 거듭되다보면 체계가 생성되고 이 체계를 우리는 제도, 법, 관습이라고 부르게 되며 이 모든 과정에서 탁월한 누군가는 예술로 승화시켜 창조된 것들을 어떤 경지까지 끌어올리지. 무형은 유형으로, 유형은 다시 무형으로, 즉, 누군가는 무형에서 유형을 창조하고, 또 누군가는 유형에서 무형을 창조하는. 세상 모든 것은 창조에 의해 이뤄져. 창조는 개인의 꿈에서 시작되고. 이런 이유로 너의 꿈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이미 지니고 있는 것이고!     


이렇게 창조는 모두에게 가능하지만 자신의 가슴에 창조의 씨앗을 심고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기능이 담겨 있어. 굳이 기능에 대해 말하라면, 지식부터 기술까지 다양하겠지. 즉, 지식과 기술은 네 꿈을 현실로 만드는 길 위에서 필요한 도구이나 방법이니 인생을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는 것에만 올인하면 결코 안된단다. 지식과 기술을 꿈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꿈은 없는데 지식과 기술이 뛰어난 사람이 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 전자의 경우의 이들을 '목적있는 삶'을 사는 사람,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부르지. 


창의는 새로움을 위해 네 가슴에 심은 무형의 씨앗을 세상으로 드러내는 기능이며 

이 기능이 현실에서 필요하다는 것은 곧 '무형의 유형화'에 대한 증명이지. 

그러니 

보이지 않는 씨앗을 심으면 보이는 열매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믿어야 해.      


자, 꿈은 현실이 된다. 는 것이 점점 더 네 머리속에 각인되고 있겠지? 결코 의심없이 믿길 바란다. 그래서 많은 씨앗을 네 가슴에 심길 바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알려주고 싶은 단 하나가 있는데 지금껏 그랬듯 귀담아 들어보렴.     


처음 얘기를 시작할 때 인과에 대한 얘기를 했어. 원인과 결과 사이에 네가 할 일은 '반응'하는 것이라고도. 어떠한 호기심이 생기면, 즉,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면, 이게 원인이야. 그리고 시작이지. 호기심은 하나의 씨앗인거야. 좀 전까지 아무 것도 몰랐는데 방금 네 눈에 포착된 대상에게 호기심이 생긴거야. 그치? 네 경험이나 머리가 아니라 어디선게 네게 온거야! 

세상이 널 자극한거지. 

이 자극에 네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까? 

무시? 판단? 해결? 아니면...? 


여하튼, 네 인식이 이를 어떻게든 반응시키겠지. 말했듯이 '꿈은 허상이야'라는 관념이 있으면 무시를 택할 것이고 '꿈은 현실이야'라는 관념이라면 소중히 가슴에 심겠지. 세상이 네게 보낸 자극, 호기심은 결코 무시하지 않길 바래. 네 인식이 계산이나 비교따위의 것으로 거부하게 허락하면 안돼. 

이것이 꿈의 시작이거든. 

창조의 씨앗이거든.

     

앞서 거론한대로, '반응'은 관념을 행동으로, 행동은 결과로 이어지게 하는데,

'꿈의 크기(원인)-꿈의 현실(결과)' 

이 모든 과정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너의 가장 중요한 힘은 

바로 '믿음'이란다.

성서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고 싶구나. 

종교를 떠나 지금까지 말한 이치를 이렇게 근사하게 단 하나로 정리한 문장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가 없었거든.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

                                                                           (히브리서 11장 1절)


'믿는다'는 것은 

바라는 것(꿈)의 실상(현실)이요, 보이지 않는(꿈)것의 증거(현실)라잖니.     

꿈의 현실화,

이상(image)의 구체화,

무형의 유형화.


꿈은 현실이 된단다.

그러니, 꿈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일단은 꿈이 있어야겠지?

그러니. 꿀 수 있는만큼, 꾸고 싶은만큼, 결코 머리로 계산하지 말고 크고 다양한 많은 꿈을 꾸렴.

그리고 그 씨앗을 네 가슴에 심고,

믿으렴. 


씨앗은 자체에 이미 모든 비바람을 이겨낼 힘까지 내재하고 있으니

너는 씨앗을 가슴에 심고 너를 믿지 말고 네 '꿈'이라는 씨앗의 힘을 믿으렴.

너는 그 씨앗이 세상에 나오게 믿어주는 든든한 토양이 되면 된단다.

싹이 나고 열매가 맺히는 자연의 이치가 

자연의 일부인 네게서도 이뤄진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라도 가능하단다.

네가 꾸는 꿈은 반드시 현실이 돼.


원인과 결과는 같은 크기로 이미 존재한다고 앞서 했던 말,

결과로 얻고자 하는 크기만큼 이미 네 안에 그 크기를 만들어낼 작용의 힘은 내재되어 있다는 엄마의 말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믿길 바란다.

그리고 너는

기능인이 되는 것이지.

꿈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기능인. 

즉, 씨앗에게 양분을 제대로 제공하는 토양처럼 네 꿈이라는 씨앗이 현실로서 열매맺도록 제대로 너를 도구삼아 활용할 줄 아는 기능인. 지식과 기술을 연마하여 네 꿈의 크기에 적합한 능력으로 널 키우는 것이 네가 할 유일한 전부야.


과거 네가 바래 왔던 꿈의 크기의 결과가 지금 네 현실이야. 더 큰 꿈을 꾼다는 것은 지금까지의 너보다 더 큰 네가 네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너는 네 안의 더 큰 너를 끄집어내야 할 숙제가 있지. 그 숙제를 해나가는 과정이 '성장'이야. 네가 꿈을 심고 믿는다면 네가 해야 할 일은 '너를 키우는 것'뿐이야.    

 

사람들은 뭔가를 바라면서도 꿈을 심지 않지.

심었다 해도 믿지 않지. '될까?'하며 자꾸 의심하지.

그러면서 자신은 운이 없다고, 되는 일이 없다고 한탄하지.

꿈이 현실이 되는 가장 기본적인 '심고', '믿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을 자학하지.

네 주변에 그런 이들이 많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자, 이제 간단하게 정리해볼까?


작용원인 : 호기심 -> 씨앗심기

반응 : 기존관념 배제 -> 기능인되기

결과는 :현실.

이 모두를 이끄는 힘 : 믿음.     


인간은 이해의 동물, 사고의 동물, 이성의 동물이라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으면 정신에 제대로 뿌리박히지 않아. '꿈의 현실화'를 논리로 알려줬는데 네가 너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이치로 이해되길 바란다.     


잔소리많은 엄마라 마지막으로 당부하건데


꿈이 현실이 되었다면, 즉, 원하는 바를 이뤘다면, 

이제 그 '현실화된 꿈'은 세상이 키워줄거야. 

세상이 키워주려면 '꿈'의 정체가 세상의 마음에 들어야겠지? 

세상은 뭘 원할까? 

어떤 꿈을 이뻐하고 키우고 보호해줄까? 

일단, 모두에게 이로워야 하겠지. 


좋은 것을 남에게 주고 싶듯이 이로운 것이어야 세상은 많은 이들에게 네가 현실화시킨 꿈을 퍼뜨리겠지. 그렇게 한 번 펼쳐진 꿈은 스스로 몸집을 부풀리고 스스로 자라나. 그러니 너는 그 것의 창조자로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는 것에 나태와 태만하면 안된다. 꿈은 인격의 크기만큼 자라거든. 세상은 결코 세상에 이롭지 않은 것을 그리 오래 널리 멀리 퍼뜨리지 않아. 


그리고 또 하나, 아침에 태양이 뜨고 철따라 꽃이 네게 좋은 향을 느끼게 하고 멋진 배경을 네 시야에 포착시키고 서늘한 바람으로 네 땀을 식혀주지. 세상은, 자연은 이 모든 것을 무상으로 네게 무한정 제공해. 그런데 말야. 무한정, 무상제공이라고 공짜가 아닌 것이야. 자연이, 세상이 네게 원하는 건 딱! 하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너 자신만의 것으로 세상을 당당하게 살라는 것! 

바로 꿈을 이루라는 것이야! 

이 단 하나가 무상, 무한정 받는 모든 권리에 대한 너의 의무야. 

결국, 꿈을 이루는 것은 네가 세상에 빚진 채무의 의무지. 

그러니,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      


지금까지 나눈 '꿈이 현실이 된다'는 단순한 이치와 

'왜 꿈을 이뤄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대로 이해했으리라고 여기며

너의 꿈을 키우고 드러내고 발현시킬 것을 당부하고 믿는단다.

엄마는..

지금..

엄마의 가슴에 '꿈을 현실화한 너'라는 씨앗을 심으련다..      

    



p.s. 

한 사람의 부모로서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공감을 얻고자 합니다. 

내 자식의 꿈만큼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내 자식의 꿈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세상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꿈을 키워주고 지켜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부모여야 합니다.


혹여 부모의 그릇된 인식이 내 자식의 꿈을 훼방놓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 자식이 꿈을 꾸길 원한다면

부모인 자신부터 꿈꾸십시오!

꿈은 지식이라 그대로 전염된답니다....


지담의 꿈, 지담자녀들의 꿈이야기는 이미 많은 분들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함께 이야기에 동참하실 분들을 초대합니다.

꿈과 사유, 인생, 삶을 나누는 곳, 지담북살롱 지담북살롱 : 네이버 카페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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