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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23. 2023

'수준'은'기준'부터,
'기준'은 '기분'말고 '기본'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6

위아래를 쳐다보며 사는 것은 비겁한 짓이야. 

위를 본다는 것은 너 스스로 자신을 하찮게 보는 것이며 아래를 본다는 것은 네가 어떤 결과에 대해 우쭐거리는 자만이 시작됐음을 증명하는 셈이지. 


또한, 우쭐대기 위해서 인색해지겠지. 

왜? 

계속 우쭐댈 수 있어야 하니까. 

나눌 수가 없어져. 

그리고 계속 더 많은 걸, 더 좋은 걸 보여줘야 하니까 가짜가 되기 십상인 길로 가는 거야. 


그러니, 수준이 어쩌구하는 말에는 동참하지 말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말길 바란다. 굳이 수준을 논하려면 자신의 인격적인 수준부터 점검하길 바래. 

    

너희들이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운전면허증부터 취득했지. 

대학에 들어갈 때도 어떤 기준과 자격이, 

자동차 운전에도,

하다 못해 동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더라도 이력서로 자격을 검증받잖아.

어떤 일이든 자격(자질의 격, 수준)이 갖춰져야 해.     

그런데 우리 대다수가

인간의 자격, 인격에 대한 자격증은 있는지 없는지, 

자신을 들여다보는 것에는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니?


운전면허증보다 내 인격이 하찮아서인가?

아니면, 제대로 면허증따고서도 신호무시하며 맘대로 운전해도 된다는 것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태어날 때 자격증따위 필요없었으니

인격없이 살아도 된다고 착각하는 것인가?    

우리 한번 생각해보자.


음... 창조주가 우리를 세상에 내놓을 때는 모두에게 일정 수준이상의 자격을 갖춰서 내보냈다고 여겨. 본능, 본성과 같은 것이지. '인간'이라는 최소한, 그리고 무한한 자격말야. 그것을 살아가면서 깎아먹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 (자)격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 (인)격적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아무튼 결국, 

'수준'을 논하려면 자신의 '인격'부터 논해야 해.

남과 비교되는 수준은 처음에 말했듯이 오히려 너 자신을 하찮게 보거나 우스꽝스럽게도 우쭐거리는 인간으로 전락시키지.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을 재단하고 검열하며 스스로 갈고 닦은 인격은 그 자체로 너를 빛나게 할거야. 그 자체로 너의 수준이 드러나.     


그러니, 지금처럼 명품에 눈길주지 말고 일상이 명품이 되는 삶을 사는 쪽으로 가라. 명품이라면 흔히 말하는 무슨 브랜드들일텐데 어떤 이들은 명품을 정말 가지고 싶어 하면서도 명품가진 사람들을 속물이라 비웃지. 그런데 그 명품을 소유한 사람의 수준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마트에서 물건사듯 그렇게 명품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에겐 명품샵이 마트인거야. 그런 삶까지 자신의 삶을 올려놓으면 그건 그저 일상이 되지만 그런 수준이 안되면서 명품 하나 걸친다고 결코 명품인생이 되는 건 아니야. 


몇백만원받는 월급으로 최고급승용차를 몬다거나 겨우 생계를 유지할 정도를 벌면서 명품 가방을 들거나 하는 것은 자신을 더 자존심없는 사람으로 증명하는 행색일뿐이야. 그 명품의 값을 치르기 위해 수개월간 다른 누군가의 노예로 스스로를 구속시킬만큼 자신이 그 명품 하나만도 못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 명품을 들면 자신의 인격도 명품이 될 것같은 무지한 사고의 소유자인가?

     

수준에 맞게 소비하고 소유하는 사람이 되어라.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관계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많게, 크게 소유하고 싶다면

너 자신의 수준부터 높여야 해.


그래서 말인데.

수준을 높이고 싶다면 

기준이 높아야 한단다.

기준은 말 그대로 시작점이니까.     

기준은 기분에 의해 정하는 것이 아니라 

네 삶의 기본이 무엇인지를 알고 정한 선(線)이어야 해.

 

기준.

기분이 아니라 

본이다! 

'너'의 인격의 시작점이지.


그렇다면, 기준을 어떻게 잡는 것이 좋을까? 여기에서 한가지 꼭 명심해주길 바라는 게 있어. 아니, 외워두길 바래. 절대 거스를 수 없는 원리라는 것이 있거든. 원칙은 관습과 사회, 문화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원리는 변하지 않아. 흔히 이치라고도 섭리라고도 진리라고도 하지.      

  

세상은 양극에 의해 움직인단다. 어둠이 있으면 빛이 있고, 낮이 있으면 밤이 있지. 아래가 있으면 위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고.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고 차가움이 있으면 뜨거움이 있지. 양극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겠지만 설명하자면 이 지면으론 모자라니 간단히 이 정도로 넘어가고 여하튼, 이런 이유로 네가 누리고 싶은 것이 있다면, 즉,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누릴만한 대가를 먼저 치러야 해. 즉, 의무를 먼저 이행해야 한단다.      


조금 더 쉽게 풀어볼까? 네가 어렸을 때 사탕을 달라고 조른 적이 많아. 그 때마다 밥을 먹으면 사탕을 먹을 수 있다. 또는 치카치카를 1일 3번하는 날엔 사탕을 주겠다. 고 했어. 밥을 먹거나 치카치카를 하는 것이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사탕은 보상이지. 의무를 먼저 이행하면 권리(사탕)를 누릴 수 있어. 의무는 선택할 수 없어. 해야 하는 것이니까. 하지만 권리는 선택할 수 있어. 사탕이 먹기 싫으면 안 먹어도 돼. 권리는 선택이거든. 권리를 가진 자에겐 항상 자유가 주어지지.     


반대로 권리먼저 누리고, 즉, 사탕만 많이 먹고 치카를 안한다면 앞으로 너에게 사탕을 줄 수 없게 되지. 치카(의무)를 하지 않고 순간의 즐거움(권리, 보상)을 먼저 누리면 네가 의무를 할 때까지 달콤한 사탕은 먹을 수 없게 돼. 자유로부터 멀어지지.      


한마디로, 

해야할 것 먼저 / 하고 싶은 것 나중.

          

이런 의미에서 너에게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기준은

해야할 것 먼저, 하고 싶은 것 나중.

가야할 곳 먼저, 가고 싶은 곳 나중.

먹어야 할 것 먼저, 먹고 싶은 것 나중.

읽어야 할 책 먼저, 읽고 싶은 책 나중.

봐야할 것 먼저, 보고 싶은 것 나중.

들어야할 말 먼저, 듣고 싶은 말 나중.

이해해야 할 것 먼저, 이해시키고 싶은 것 나중.

이런 식이지.     


이렇게 3달 정도 너의 일상의 의무들을 행한다면 그게 너의 기준이 될 것이고 그 기준점부터 점점 더 책임감있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어. 그런 사람의 삶의 격은 높아질 수밖에 없지. 인격은 곧 삶의 격이니 당연히 너의 수준도 높아지지.     


보여지는 것으로 수준을 논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수준을 채워가렴.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증상, 현상이란다.

그 어떤 보이는 것도 보여지는 이면이 제대로 채워지지 않는다면 허상에 불과하단다. 

허상은 사실이 아니야.

아무리 근사한 명품, 명함, 명색으로 자신을 치장해도 금방 들통나버리는 참 꼴사나운 가여운 모습이 되지.


기준을 제대로 잡으면 수준(인격)은 저절로 높아져.

'어떤 사람의 계획이 자신이 양심을 만족시켜온 인격이라는 원동력으로 그 계획을 실행한다면, 지금의 어떤 힘도 막을 수 없는 원동력, 아니 올바로 해석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는 원동력의 거대한 흐름의 도움으로 성공을 향해 나아간다(주)'는 것을 엄마는 체험으로 알고 책에서도 숱하게 접했단다.

기준이 너의 양심, 그리고 인격의 기본으로 자리잡힌다면 수준이 저절로 높아질 수밖에 없어. 

너도 모르는 무한한 에너지가 너를 더 필요한 곳으로 이끌테니까 말야.

     

엄마는 그래서 늘 조심스럽단다.

매일 쓰는 글, 그리고 코칭과 강의가 두렵기도 하고 위험하다고도 여겨. 

명품핸드백같은 것은 잠깐의 보여지는 것에 그치겠지만 글이나 강의는 사람의 정신에 침투하는 것이라 함부로 내뱉을 수가 없어. 그래서 매일 새벽독서를 하는거야. 출력(글이나 강의)보다 더 많이 입력(독서)되지 않으면 요란한 명품핸드백으로 나를 포장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너도 너의 나이에 맞게, 너의 기준을 세워보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너무 어른스러울 필요도 없고 철없는 어린아이같아서도 안될 것이야.

그저 그 나이에 딱 맞는 너의 기준을 스스로 세우고 그 기준아래로는 자신을 허락하지 않기를 바란다.

너 스스로 자신을 존중해주지 않으면서 세상이 널 존중해주길 바라면 안돼.

그러니 너 스스로 기준에 맞지 않게 삶을 꾸리지 않도록 '너'와 '너의 삶'을 분리시켜 삶을 바라보렴.  

    

너의 기준.

사고와 건강과 정서와 관계의 기준.

학생이면 학생으로서

사회인이면 사회인으로서

어른이면 어른으로서

시민이면 시민으로서

인간이면 인간으로서의 기준.      

그 기준부터 스스로 정하고 거기서부터 출발한다면

너의 수준은 제 속도로 높아질 것이야.


자, 꼭 명심하렴

기준은 기분에 따라 왔다갔다 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이 기준이어야 한다.


주> 나폴레온힐, 황금률, 비즈니스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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