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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4. 2023

당신, 참 박하십니다.

새벽독서 1800일을 앞두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매주 일요일 아침미사를 드린다.

미사 중 주기도문의 첫운을 뗄때마다

나는 울컥한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우리 아버지..'라고 불렀을 뿐인데

늘 그렇다.

콧속이 시큰거리고

아주 재빨리 눈에 눈물이 고인다.


내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가슴미어지는 통증을 가져온걸까?

나의 간절함을 이루도록 도와줄 이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밖에 없어서일까?

그런데

왜 여태 나는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을까?


주기도문을 수십년째 읊고 있는데

깊게 음미하였다기보다 그저 외운대로 습관처럼 뱉었었다.

그런데 왜 유독 요 몇달,

미사중의 주기도문에서는 계속 울컥하는지...

과거에 없던 경험이기에 내가 왜 이러는지 도통 알 길 없으나


혹여...

추측건데...


내 안에서 간절하게 원하는 갈구. 인 것도 같다.

내 안을 꽉 채운 고독과 외로움. 인 것도 같다.

나로써 살기에 버거운 탄식. 인 것도 같다.

나외엔 의지할 데가 없어 튀어나오는 애청. 인 것도 같다.

내 안에 켜켜히 눌러놓은 욕망의 고백. 인 것도 같다.

내 안에서 아직도 내보내지 못한 잔재. 인 것도 같다.

어쩌면...

당신에게 '왜 여태인지'... '원망'인 것도 같다.


하지만, 

교만한 자부(自負)가 아니라

겸손한 자부(自負)인 것만은 분명하다.


가야할 곳을 알기에 휘청거려도 가려는 의지와

가야할 곳을 모르면서 이쯤에서 안주하고픈 자만의 경계에서

전자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바라는 것'은 기도가 아닌 것을 압니다.

'믿는 것'이 기도이며

믿음으로 걷게 해주신 '감사를 드리는 것'이 기도인 것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속엔 아직도

엉킨 실타래와 맥없이 풀려버려 소용없는 실들이 난무하여,

이를 여태 탓하면서 어쩌지 못하는 어정쩡한 내가 들어있어,

이것들 좀 걷어내 달라고, 거두어 달라고 떼를 씁니다.


그런데. 

당신, 참 박하십니다.

어찌 이토록 맹목적인 인간에게 이리 박하십니까.

도대체 어떻게 쓰시려고 여태 박하십니까.

제대로 쓰이기 위해 아직도 더 가야할 길이 있어 박하십니까.


그래도 오늘은 당신께

나의 갈구와 고독, 탄식과 애청, 고백과 잔재를

그냥 거기 성전 한켠에 내던지고 나오니

당신의 천사들에게 거두라 명하십시오.

그렇게

나의 우격을 한번은 눈감아 주십시오.


나는 그냥 매일 하던대로

내 할일은 할것입니다

이 모든 심정을 외면 아닌,

인정한 채

그냥 갈 길은 갈 것입니다

가슴을 텅 비우고

어제처럼 오늘도 그리 살 것입니다


그러니 의 투정 한번 받아주십시오

그러니 힘에 겨운 지금 우격한번 거둬 주십시오.

그렇게 곁에 두고 길을 내어주신다 믿게 하셨으니

내 우격을 눈감아 주십시오.


어쩌나.. 이래도 되나...

맘쓰지 않고 무시하고 지나쳐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나의 우격을 한번, 또 한번...

눈감아 주십시오...


* 12/21일부터 전체적으로 연재요일을 개편하오니 아래를 참고바랍니다.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철학'에게 '부'를 묻다]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 지담놀이터입니다. 매일 독서로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놀이터,

  삶과 사유, 사람이 함께 하는 곳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https://cafe.naver.com/joowon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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