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에 대하여
이틀전 새벽 독서모임의 토론에서 재미난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데카르트(주1)의 '어려운 무언가에 봉착할 때 연역하여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다시, 그렇게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방법으로 어려운 길에 도달하라'는 절대진리를 말했으며
여기에 나는
'그거 모르는 이가 어딨다고? 원래 천재는 어려운 것을 단순한 명제로 정리한다. 세상의 진리가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나는 것처럼 유치원생도 다 아는 것들이다. 문제는 삶에 어떻게 대입하느냐다.'로 시작하여 나약한 정신과 강인한 정신을 비유하는 강의로 이어졌다.
모두가 재밌게 들어주었던 내용인데 한분이 늦잠(ㅋㅋ)으로 30분정도 함께 하지 못해 그 분께 전하고 싶은 맘이 컸고 또한 새벽토론 이후 나는 어떠한가에 대한 잔재도 남아 글로 옮기기로 했다. 또한, 이 글을 쓰는 내가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나에게서 아직도 떠나지 않는 나약한 정신, 언제든 자기를 드러내고 싶어하는 이 정신에게 내게서 떠나라 경고하는 의도도 다분한 글이다.
지금부터 거론할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에 대해서는 그저 수많은 이들을 코칭으로 만나며 이들을 암묵적 경험으로 분석하고 비정량화된 숫자로 통계내본 결과이며 아마 이런 사람... 곁에 한둘정도는 있을 듯한 독자의 개인적 경험에 기댄 서술로 읽어주길 바란다. 글이 다소 거칠지만 이해를 바라면서...
또한 혹여 이 글이 마치 자신을 겨냥하는 듯하다면
조금 단단해지길, 그렇게 정직하고 진솔한 인간으로
스스로를 성장시키길 바라는 의도도 첨가해본다.
일단 자기 주인이 혀를 움직일 때부터 정체가 드러난다. 정신과 정신의 표출구인 말과 행동이 매끄럽지 않고 어딘가 맞지 않다.
가령, 정신의 소유자가 서있는 현위치가 1인데 가야할 곳이 10까지라면 데카르트의 명제대로 3에서 머뭇거릴 때 다시 연역하여 1부터 2까지 어떻게 갔는지, 2부터 3까지도 1~2를 가본 경험을 토대로, 그렇게 4,5,6...의 과정을 가면 10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인데 대부분 그리 하지 못한다. 왜냐?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3%밖에 안된다는 하버드와 예일대(주2)의 결과를 앞뒤 잘라 산술적 계산으로만 접목시켜 97%는 그리 못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주인이 목표를 상실케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젤 먼저
주인의 근성부터 잃게 만든다.
그럼 나약한 정신의 주인이 지닌 '근성'부터 되짚어 보자.
일단 10까지 목표를 세운다.
왜냐?
정신이 약하니 상대적으로 감정이 강하다.
감정적으로는 저 사람도 하니 그 사람도 하고 쟤도 해냈다 하니 나도 할 수 있다고 10까지 목표를 세운다. 하지만, 3까지만 가다 멈춘 경험으로 만들어진 나약한 근성이 3이 되면 멈추게끔 입력된 잠재의식과 손을 잡고 정신을 무너뜨리기 시작한다. 근성이 3까지이니 4는 미지의 두려운 세계다. 그러니 망설일수밖에, 뒤를 돌아볼수밖에. 당연하다. 그럴 수 있다.
때를 노렸던 나약한 정신이 기지개를 펴고 활동을 시작하면 대충 주인은 이렇게 행동하게 된다.
가보지 않은 4앞에서 몸에 베인 관성은 멈추라, 돌아가라 하지만 쪽팔린다. 그러니 목소리가 커지고 논리없는 이얘기 저얘기 다 끌어내어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한다. 아니면, 숨는다. 목표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유야무야 그냥저냥 넘어간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에서 자신이 소리쳤던 것이 잊혀지도록 시간을 번다. 자, 우겨서 드러내든 숨든 쪽팔리는 '감정'에 휘둘리는 정신은 감정에 처참하게 지배당하고야 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를 '자신이 없었다'라는 애처로움으로 마무리지으니 참...나약한 정신은 시작부터 수월하다.
이쯤에서 조금이라도 '신독(주3)'의 개념이 있는 자는 어떻게든 끙끙대 보지만 결국 정신이 진다. 정신의 패배는 신체가 젤 먼저 알아채고 반응한다. 아파지는 것이다. 두통이 오든 소화불량이 오든 골치아픈 일이 오든. 자, 완벽한 방어막이 생겼다. 어떤 일을 하는데 '아파서'라고 하면 대부분 아무 말도 못하고 일단 몸부터 챙기라 하니 아주 근사하고 완벽한 커튼 뒤에 자신을 숨길 수 있게 된다. 어떤 도전 앞에서 아픈 것은 나약한 정신이 초장부터 바라던 바다.
이상하게 뭘 하려고만 하면 아픈 사람, 돌발상황이 생기는 사람이 있다. 결국, 나약한 정신이 올바르게 가려는 정신의 뒷다리를 걸어 자빠뜨린 것이다. 신체가 정신을 상대로 사기쳤거나. 나약한 정신은 이렇게 성공적으로 자기목표를 향해 더 힘차게 돌진한다.
주춤거리는 주인은 이내 멈춰서서 '내가 왜 10까지 간다고 해서... 내 주제에.. 내가 왜 이런 걸 괜시리 도전해서..'라는 발상에 딱! 걸려든다!!!
캬~~! 이 순간!!!!
무언가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바로 꿈이다!
10을 이뤘을 때 성취하게 될, 소망하던, 원하고 바라던 그것이 사라진다. 게다가 혼자 사라지지도 않는다. 4부터 10까지의 목표들도 안개로 가리고 길까지 흐트러뜨려 길을 잃게 만들어버린다.
주인을 길잃은 양으로 만들어 버리는 나약한 정신.
이제 이 정신이 주인을 인도할 길은 1,2,3밖에 없는 도돌이표인생길이다.
그런데. 결코 진공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은 나약한 정신의 주인에게 괘씸죄를 묻는다. 길을 내줬는데도 갈 줄을 모르니, 신체가 멀쩡한데 정신이 굴복하니...그래, 그냥 나약하게 살아라! 해버린다. 얼쑤 신이 난 나약한 정신은 꿈과 길과 목표가 사라진 그 빈자리에 잽싸게 무언가를 채우는 데, 바로바로 '자기합리화', 즉 '변명'과 '후회'다.
'나도 하려 했는데', '이러이러한 것때문에 내가 못해낸 것인데', '생각해보니 그건 내가 원한 것 같지도 않고'.... 바보같은 자기합리화를 껍씹듯 질근거리는 탓에 관성만 더 질겨지는 어리석은 짓을 주인이 아무런 자책없이 하게 만든다. 이 때부터 나약한 정신이 이끄는 '도돌이표인생길'은 씹다 뱉은 다양한 맛, 다양한 컬러의 '자기합리화'껌으로 장식된다. 화려한 컬러덕에 본색을 잃게 되니 이야말로 '무지(無知)'인 상태로 '무지(無地)'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자기합리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약한 정신은 목표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한다. 더 박차를 가해 짜짜짠...!
주인의 본성을 가차없이 파헤치는데.
10까지 갈 수 있겠다고. 해보겠다고, 이번만큼은 성공해 내겠다고, 자기 자신을 이대로 두면 안될 것 같다고, 간절하다고, 진심이라고...
1주전, 1달전 보였던 간절함, 다짐, 각오, 선포, 기대 등등등... 주인의 인격을 찢고 구겨 허공으로 던져버리는 강력한 본성,
'자만'이 등장한다!
10까지 가는 이들이 거저 그 곳에 도달하는 게 아니다.
10만큼 가기 위해 참고 기다리고 아파하며 간다.
그런데 3만큼만 가본 자기가 뭐라고 그리 빨리, 쉽게 10에 도달할 것이라 믿었단 말인가.
'자기합리화'가 진짜 '합리적'이라고 믿는 무지의 자만,
모두가 자신의 변명에 고개 끄덕이며 속아줄 것이라는 상대를 기만하는 자만.
그 자만의 그림자가 자신을 덮친지도 모르면서 인생 만만하게 본 자만.
간절하게 바라면서도 도전없이 갈 수 있을 거라는 세상의 원리를 상대로 사기쳐도 된다는 자만.
창날을 갈지 않고도 목표점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과대망상적 자만.
창날가는 것을 수치로 여기는 사람은 실상 자신을 겁쟁이로 여기는 것(주4)인데 말이다.
'자만'이 정신과 가슴을 강타하기 시작하면 무서운 강도와 속도로 정신을 부러뜨린다. 부러진 정신은 너덜너덜대며 이성을 절뚝거리게 하고 결국, 절뚝거리는 이성은 올바르게 판단할 기능을 잃었으니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신뢰를 잃게 된다. 어느 누구도 자만의 옷을 입은 나약한 정신에는 곁을 주지 않는다.
주인을 길잃은 양이 되어 홀로 남게 하는 것이 나약한 정신의 목표였으니
목표를 달성한 이 정신은 주인의 온몸을 점령한 채 편안해한다.
더 비참한 얘기로 이어가 보겠다.
이제 나약한 정신은 굳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자만'은 자신만 모르는 '치매'다. 신뢰잃은 주인은 치매까지 걸렸으니 나약한 정신이 자신에게 뭘 해도 모른다. 이제 이 정신은 자동시스템을 가동시킨다.
왜냐? 우기면 상대가 알겠다 하고 큰목소리 내면 상대가 좋은 게 좋은거라 넘어가고 아프다하면 상대가 오히려 챙겨주기까지 하니 우기거나 큰소리치거나 아픈 습관으로 인생이 돌아간다. 자신만 자기 모습을 보지 못하며 자기 속에 갇혀 만족하는 질병에도 걸린다. 불치병이다. 난치병이다. 이 고질병의 합병증은 '자기해석'이다. 합리와 논리와 이성이 결여된 자기만의 해석.
소통이 아닌 자기해석만, 설득이 아닌 주장만, 이성이 아닌 감정호소만, 극복이 아닌 퇴보만 줄줄이 이어져 어떤 시간의 터널을 지나고 뒤돌아보면 주변에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없다. 베푸는 영혼이 없는 곳에서만 등장한다는 퇴보(주5)까지 주인인생에 진입시켰으니 나약한 정신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다! 그 때가 되면 성찰하고 나아지겠지? 천만에! 4까지 가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그 때 남는 것은 원망과 분노, 회환과 좌절감밖에 없다.
치매에 불치병까지 걸린 주인은 절대 혼자를 못견디는 데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래서, 누구 하나를 pick한다. 지금껏 자신에게 결코 no를 하지 않았던, 그저 착하디 착한 또는 만만한 누군가를 정해 자기 스토리를 털어놓으며 이해를 구한다.
내가 아파서 어쩌구저쩌구. 그런데 나한테 이럴 수 있는거냐? 너 좀 생각해봐라. 어쩌구저쩌구...
주머니 가득 넣어온 하소연과 너스레, 비교와 비난, 한탄과 원망을 마구마구 꺼낸다. 게다가 눈물까지 뚝뚝 흘리면서. 웃다 울다 한다. 그렇게 픽당한 이는 나약한 정신대신 이 환자를 위해 열일하게 된다.
아.. 도대체 이 이야기를 앞에서 들어주는 이는 왜 '괜찮다. 지금까지 참 잘해왔다.'는 말도 안되는 호응을 해대는 것인지... 이런 사람때문에 나약한 정신의 자동시스템은 더 잘 돌아가니 이 정신은 흐뭇하기 그지 없고 너무 편안해 안주해도 되겠다는 안정감까지 얻는다.
그러다 심심할때쯤 이왕 시작한 일 화룡점정을 찍기로 한다.
주인에 대한 목표는 충분히 이뤘으니 이제 주변을 감염시키기로 작정한다.
시대에 맞게 자신의 자동시스템을 플랫폼으로 확장, 그렇게만 된다면 더 이상 자신이 나서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도 나약한 정신이 하나둘 퍼져나가는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긍정보다 부정이 12배 속도로 빠르게 퍼진다는 속설대로라면
1사람만 나약한 정신 제대로 만들어놓으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강인한 정신은 한번 투입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힘을 요하지만 말이다.
플랫폼에 익숙해진 현대인들답게 예상은 들어맞았다.
단순한 sns에 떠도는 정보와 덧글만으로도,
심지어 소소한 커뮤니티가 자발적으로 생성되기도 하니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주변이 감염되어간다.
이제 나약한 정신의 주인 주변은 점점 같은 정신의 소유자들로 넘쳐난다.
아니, 내성있는 이들은 다 떠나고 감염된 이들만 남는 것이겠지.
끼리끼리, 유유상종.은 절대진리다.
'역시 진리는 통해!' 나약한 정신은 쾌재를 부른다!
부러진 정신, 절뚝거리는 이성으로 세상을 살려니
자기 속내 들어줄 이가 필요하고
난생 처음보는 사이라도 비슷한 정신의 소유자들이 모인 sns에 중독되어
위로로 둔갑된 하소연에 길들여지든
온갖 장애를 지닌 이성들과 만나 자기와 아무 상관없는 쓸데없는 논쟁에 열을 올리든...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먼지나 일으키고 질척대며 열심히 사는 착각에 빠진다.
이쯤되니 나약한 정신은 정말 할 일이 없다.
나약한 정신으로 무장된 한사람을 제대로 만들어놓으니
알아서 전체가 감염되어간다.
여기에 sns는 물론, 세대간의 단절, 일자리상실, 경제위기,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인 분위기까지 한몫해주니 이런 요지경이야말로 목표를 뛰어넘어 위대한 목표를 성취한 셈인 것이다!
대단한 혁명가가 나타나서 이 시대를 변화시켜줄 것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제학의 아버지 필립코틀러(주6)에게도 감사하고 더 이상 연금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라는 마우로기옌(주7)에게도 건배를, 두려워하지 않고 절대 양보하지 않는 소수로부터 세상이 바뀐다는 마거릿미드(주8)에게 키스를 퍼붓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세계 최고의 학자와 철학자, 사상가들이 현실의 위기와 대안까지 정성껏 알려주면 알려줄수록 나약한 정신으로 가득찬 세상은 현실직시보다 이들의 가르침을 오히려 우울과 불안을 감염시키는 바이러스 삼아 더 똘똘 뭉치는 계기로 만드니 말이다.
바로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신의 성장을 외치며 마인드를 강화하고
매일 도전하며 스스로를 배움으로 몰아넣는 자조모임의 주동자들.
어떤 부정도 이들에겐 한계가 되지 않는다.
어떤 타협도 용납하지 않는다.
정해진 과녁에 시선을 고정하고 화살을 당기는 긴장에도 경련이 없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가던 길에서 이탈하지 않으며
아무리 부드럽게 불러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더 높은 수준으로 자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하루를 사는 이들.....
세상을 바꾸는 소수의 집단을 간과했다가는 큰코다친다는 것을 잘 아는지라
나약한 정신은 비겁한 줄 알면서도 이들 자조모임에 자기 패거리 한둘 정도 심어
감염을 시도해보지만 이내 이 정신들도 강인한 정신으로 의복을 갈아 입으니
이들의 출현이 비록 수적으로 적고 드물다 하더라도
출현자체만으로도 나약한 정신은 떨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나약한 정신은 불안한 시대를 만나
정신을 소유한 모두에게
더 큰소리로 외친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가 지금까지 다소 거칠고 잔인하게 쓰긴 했지만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 주변에 한둘은 있을 것이다.
뱉은 말을 유야무야 넘기거나
하기로 한 것에서 이 핑계 저 핑계대거나
가기로 한 길에서 갈팡질팡 숨는
그런...
자기합리화에 아주 뛰어난 능력자.
모두가
내가 그런 나약한 정신의 소유자면 안된다는 정신이면,
모두가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가 되려 한다면,
그럼 되는 것 아닌가!
나만 아니면 된다.
나부터 아니면 된다.
나라도 아니면 되는 것이다!
결국,
다소 거친 글을 너그러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1> 데카르트, 방법서설, 1997, 문예출판사
주2> 하버드, 예일대의 3%법칙
주3> 신독(愼獨) : 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삼가함.
주4> 크세노폰, 키루스의 교육, 2015, 한길사
주5>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000, 책세상
주6> 필립코틀러, 다른 자본주의, 2015, 더난출판
주7> 마우로기옌, 축의 기원, 2020, 리더스북
주8> 니콜라스나심탈레브, 스킨인더게임, 2019, 비즈니스북스
[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철학'에게 '부'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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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5:00a.m. [느낌대로!!! 나홀로 유럽]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