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란 이러한 과정의 연속안에서 나를 생성, 소멸시키는 '자기성찰의 실체화'이며 자기정화의 지속을 위한 '의식적 각성의 습관화'다. 나 하나 다듬고 키우는 과정은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사실 지독하게 어려웠던 것은 맞다. 고통스럽기도 했고 숨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빅터프랭클의 말처럼 '내 고통이 가치없어지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주1)'이었다.
고통은 이유가 있어서 내게 온 것임을 알기에,
고통이 내 인생에서 할 일을 하고 나가줘야 쾌락으로 갈 수 있음도 알기에
그렇게 매일 매일 이 과정속에서 나를 키워왔던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변하고 싶다.', '습관을 바꾸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대다수가 변하지 못하여 바뀌지 않는다. 습관은 새로운 습관에 의해서만 바꿀 수 있다. 바꾸고 싶은 습관이 있다면 기존의 습관을 버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새롭게 투입시키고 싶은 행위에 초점을 맞춰 반복하면 기존의 버리고 싶던 그 녀석은 이내 소멸된다. 관심두는 쪽이 무조건 커진다. 이 과정이 자기의심부터 자기충만까지, 즉, 습관을 만드는 변화다.
참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는데 이제 알았다.
고래고래 소리쳐봤자 자기 하나도 못 바꾸는 미련한 나일지라도
일단 내게 묻혀진 또는 내가 묻힌 때부터 벗어버리면 오롯한 내가 드러날 것이고
그렇게 산다면
위대한 존재가 설계해놓은 가치있는 어떤 인생에 어울리는 내가 되어 내 인생이 나를 주인으로 택해주겠지.
그렇게 감사한 맘으로 내 인생에 미안하지는 않도록 나를 연마해가면 되겠지.
그러기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세워두는 자기의심부터!!!
그리고
몽테뉴가 시킨대로!
내 골통에 설사제를!
아..
내 머리 속의 오물부터 깨끗이 비워내자!
제발...
내 판단 내려놓고
일은 일이 가게끔 좀 놓아주자...
* 낭독을 좋아하기도 하고, 책을 읽어도 기억하지 못하고, 책을 늘 들고 다닐 수도 없고 해서만들어놓은 영상입니다.
벼룩과 두더지를 보살펴 주는 자연의 질서는 벼룩이나 두더지 같이 자연이 자기들을 지배하는 대로 두는 참을성을 가진 인간들도 역시 보살펴 준다. 우리는 아무리 이러저러하며 고함을 질러봐도 목이나 쉴 뿐이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기는 못한다. 그것은 숭고하고 무자비한 질서다.
우리가 공포를 품고 절망하면 대자연에게 짜증을 내기해서 우리를 도와주도록 청해오기는 커녕 우리의 구원을 지연시키게 한다. 그는 건강뿐 아니라 병에도 제가 할 길을 가게 할 의무를 진다. 그는 한편의 정이 쏠려 마음을 타락시키고 다른 편에 권익을 해야 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는 질서가 무질서에 빠진다.
순종하자 맹세코 순종하자!
대자연은 순종하는 자들을 인도한다.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자연이 그들의 광증과 의학을 두루 뭉쳐서 잡아 끌어간다. 그들의 골통을 훑어낼 설사제를. 그들의 뱃속을 훑어 내는데 쓰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주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