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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Dec 20. 2023

이제 '정신의 깁스'를 풀어야겠다

'지식', '이해'에 대하여

알고자 하는 데 알지 못한다면

잘못된 길을 가고 있거나 

아직 길을 찾지 못한 것. 


길을 찾지 못하면 차라리 무지를 유지하며 계속 찾을 때까지 가면 되겠지만 혹여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이는 지식의 오류나 함정에 빠져 오히려 가지 않았던 것만도 못할 수 있다. 


게다가 쓸데없는 곳을 헤매느라 소모 내지 마모된 정신은 쓸데없는 행동으로 기운을 다 써버리고 결국 제대로 된 지식 앞에서 스스로가 가둔 자신의 오류로 반박하는, 민망한 자신이 노출될 지 모를 일이다. 


이는 오랜 기간 깁스를 하고 있던 다리는 깁스를 풀어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또 다른 운동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식의 고착은 다리깁스보다 더 무섭게 내 정신을 둔화시킨다.  


지식에 대해 거론하면서 데카르트의 규칙들을 피해갈 수는 없다. 

데카르트는 그의 제1규칙(주)에서 아주 명확하게 규정했다.     


'많은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그것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학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중략

오히려 지식을 증대시킬 수 있다는 희망 못지않게 지식이 감소될 수 있다는 염려도 크기 때문이다

(중략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만을 신뢰해야 한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으면 그냥 믿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는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의심하지 않아야 할 것에 대해 의심하고 호기심을 내세우며 탐구하는 정신은 오히려 기존에 지니고 있는 지식마저도 오염시키는 위험한 짓인 것이다!    

 

우리가 지식으로 습득해야 할 것은 뭘까?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탐구해야 하며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수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중심을 알고 여러 변수의 관계들을 파악해 본질의 공식을 찾아내는 정신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언어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나와 너의 혀가 전해주는 언어속에 다양한 의미의 속내가 담겨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과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이 세상 모든 존재가 원자로부터 생성소멸하며 진화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법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세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거대하게 존재하는, 대법(大法)의 원리가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예체능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나의 신체와 정신영혼의 협음은 세상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에 조화로워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생물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이 땅의 조화를 위해 탄생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경제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내가 사는 이데올로기에서, 내가 번 1원에는 응당하게 치른 대가의 가치와 분배되어야 할 누군가의 몫이 공존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정치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이를 행하는 자로써 정의와 소신공공의 선이 기준이어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지질과 천문학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세상 모든 대자연 속에 내가 있고 그들에게 내가내가 그들에게전부를 허락해야 함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그렇게

인간을 의심하고 탐구하여 

개개인은 모두 가치로운 존재로서 개개인이 사고해야 할 덕과 윤리의 기본이 있음을 의심하지 말 것이며 

우주를 의심하고 탐구하여 

에너지순환 속에서 나도 무언가로 우주의 한 부분을 채워야 할 의무가 있음을 의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껏 거론한 수학에서 우주까지 모든 것이 연...으로, 비선형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어떤 하나가 다른 개체와 개별적, 나아가 전체로 연결될 수 있음을 의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지식'을 '이해'수준으로 확장시켜 지식에 '신뢰'의 의복을 입히는 것이다.     

도형, 구구단, 원소기호, 국민체조, 영양소와 같은 가장 단순한. 즉, 의심조차 할 수 없는 기초, 기본, 근원들을 기준삼아 내가 심취해있는 개별적, 부분적인 탐구를 철학을 비롯한 인간중심의 모든 탐구로 연계시켜 삶의 진리를 이해하는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시작으로 자신의 천재(하늘이 부여한 재주)를 세상에 발현해야 한다! 이러한 창조야말로 인간으로서 응당히 해내야 할 정당한 창조이며 세상에 이롭고 유용한 창조로서 자체의 힘을 지니게 된다. 


계단을 밟지 않고 꼭대기에 오를 수는 없지 않은가. 지식은 그래서 기초부터 단계별로 차근차근 시간과 함께 쌓여갈 때 정작 '의심할 필요조차 없는 절대근원지식을 발견하게 되고 이는 더 큰 지식'으로 나아갈 또 다른 시작이 된다. 그리하여, 지식습득의 활동은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를 연쇄적으로 연결짓고 그 연결을 가속화, 본드화시켜 부피를 보태고 밀도있게 압축시켜 또 다른 지식 진화를 위한 시작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정신활동이어야 

우리는 지식을 '이해(理解)'한 것이며 

이해가 발현될 때 지식을 '습득(習得)'한 것이며

이렇게 창조된 나의 천재성이야말로 감히 '창조(創造)'라 이름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심하고 들여다봐야 하는 지식은 지독하게 탐구하고 

탐구대상의 근원을 발견하면, 

즉,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지식까지 도달하면 

거기서 더 이상 탐구를 멈춰보자. 


데카르트의 논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의심하라!'에 꽂혀서 모든 것에 의심하는 것이 무언가를 탐구하는 위대한 정신인 듯 착각하며 의심, 즉, 호기심에 대해 고뇌하는 자신을 찬양할 지 모르겠지만 데카르트는 '의심이 안되는 것만 신뢰'하라는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다.     


가령, 새벽 독서모임에서 한 회원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라는 사람이 우주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어떻게 내가...블라블라'. 나는 '멈추세요.'했다. 우주에 자연에 세상에 모든 만물 가운데 내가 존재하니 어떤 인과에 의해서든 연계되어 있고 수많은 철학과 물리학 등의 학문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진리로서 언급하니 '내가 우주만물과 연계되어 있구나.'는 더 이상 파헤칠 수 없는 근원지식이다. 그러니, 그냥 수용해야지, 내가 왜 연결되어 있는지(근원에 대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따지고 들지 말라 했다. 그러한 탐구의 에너지를 '연결된 무엇'을 찾는 방향이나 '연결되어 있는 나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와 같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으로 향하게 하면 된다.    


의심이 많으면 호기심이 많고 호기심이 많으면 지식의 오류도 많다. 

거둬내면 진실이 보이겠지만 

어리석은 내 정신은 오류를 오류로 보지 못하고 

설사 봤다 하더라도 진실을 보기 전에 오류를 거둬내는 데에 기운을 다 써버리기도 하며 

게다가 오류를 찾아 제거에 성공하더라도 정작 거둬낸 자리에 무얼 채울지 몰라 끙끙댄다.      


이제, 내 정신이 좀 부지런을 떨어야겠다.

이제, 그간 날 고착시킨 내 정신의 깁스를 좀 풀어야겠다.

이제, 진짜로 내 정신이 정신 좀 차려야겠다.


정신의 눈은 의심이 필요한 곳을 제대로 조준하고 

정신의 힘은 조준된 그 곳의 깊은 탐구를 위해 육체를 인내시키고 

정신의 활동은 조준한 그 곳의 지식들을 제대로된 순서로 배열시켜야 하며 

정신의 추구는 배열된 탐구의 대상이 나의 사상체계를 구축하여 유용한 쓰임이 되게 하는 그 지점에 있어야 하겠다.     


주> 데카르트, 방법서설, 1997, 문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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