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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15. 2024

나는 신을 만났다.

나홀로 유럽여행 - 에필로그

2023. 11. 2

한국에 돌아와 1일이 지났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 유럽에서 꽤 오래 지내다온 것 같지만 고작 10일 혼자 골목구경하고 온 것이 다입니다. 산 것이라곤 우리나라에서 구하기 어려운 소포클레스와 디오네게스의 동상이 전부이고 본 것이라곤 브런치에 올려드린 관광지에서의 유적지와 수많은 인파, 지중해의 검은 바다...     

          

별 건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 유럽나들이는 이리로 가는 제게 저리로 가도 된다는 확신의 단단함을 심어준, 저에게 아주 특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 특별함을 정리해보려 합니다.


우선, 계획과 의도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떠난,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가야 해서, 그리 흘러가는 것이라 가게 된 것이었고 나의 의도가 있다면 ‘나를 그대로 내려놓아보자. 느껴지는대로 느끼고 오자.’는 것뿐이었습니다. 마실가듯 로마로 가서 집앞의 유람선타듯 올라탄 지중해크루즈를 타고...


결과적으로 저는 목적하는 바를 이루고 왔습니다. 

가슴 속 버블이 마구마구 솟구치는 상태로 가야할 길을 걷는 다리에 줘야 할 힘을 얻어 돌아왔으니까요.     


둘째, 5년만의 나들이였습니다. 

여러번 브런치에 쓴 글들이지만 저는 집순이, 밥순이입니다. 집과 집앞카페에서 글쓰고 코칭하는 것이 하루의 전부인.. 어딜 가고, 누굴 만나고, 무엇을 보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진정한 친구인 고독과 만나기 위해 의도적 단절을 선언하고 자발적 고립을 택한지 5년여가 흘렀고 그 사이에 매일 새벽독서, 1년 8개월전부터는 매일 새벽 5시 브런치글 발행을 지켜내면서 글을 잘 쓰고 싶어졌습니다. 글에 대한 욕구, 아니 글에 대한 욕구는 나를 해체하고 재발견하려는 욕구겠지요. 이는 점점 강해져 있었거든요.      

          

혼자 유럽을 돌아다니면서 나의 욕구는 너무나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커져감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고립의 연장선상에서 유럽으로 공간이 바뀌었을 뿐, 여행의 의미라고 한다면 자발적 고립과 고독의 결말이라고나 할까... 결과라고 할까... 결정이라고 할까...                    


5년만에 나간 세상은 너무나 달랐습니다. 세상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속에 던져진 내가 너무나 달라졌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선 이래야 하고 저기선 저래야 하는, 이런 정신적 구속이 내게 전혀 없다는 걸 알아냈으니까요. 나는 거기서도 나였고 여기서도 나였으며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는 지중해크루즈위에서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읽고 쓰고였으니까요.                     


마실가듯 떠난 유럽, 반바지 하나 달랑 들고 간터라 매일 같은 바지를 입고 저녁엔 속옷과 양말, 티를 빨아널고 말려야 했으니까요. 초저녁 잠시 자고 늦은 저녁 일어나 5층 카페로 자리로 이동해서 밤새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재미, 이 재미는 ‘재미’라는 단어로는 부족합니다. ‘쾌락’이라고 하면 좀 더 어울리려나요.... 무인도에 혼자 남아도 저는 이렇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외롭거나 불편하거나 음식이 입에 안맞다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이 저의 정신의 기후는 늘 맑고 쾌청했으니까요. 가끔 구름이 지나가긴 했지만 구름의 정체는 하늘이 날 상대로 숨박꼭질을 하자는 의도이자 나에 대해 새로운 사실 내지 무지 내지 인식의 한계를 느끼게 할 침울 정도였지, 고통스럽거나 부자연스럽거나 불편함은 아니었으니까 어쩌면 구름은 쾌청한 날씨속 장식 정도라고 해도 무관할 듯 합니다.                    


셋째, 이런 말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니 있는 그대로의 표현으로 저는 천운을 타고 났음을 알아버렸습니다. 왜 이런 진귀한 사실을 이제야 알게 하셨는지 약간의 원통함이 느껴졌지만 내가 천운을 타고난 주인공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만으로 내가 짊어져야 할 산같은 삶의 짐이나 무게가 한 순간에 별 거 아닌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모든 것은 이유를 지니고 등장하여 이유를 남기고 자기 길을 가게 될 것이니 내가 무거워하든 가벼워하든 하등 상관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심장을 강타하더니 혈액을 타고 온몸으로 돌며 나와 일체가 되었습니다.      


나는 그저 나의 길을,      

막막하지만 

내가 쓰고자 하는 글,      

남기고자 하는 정신,      

쓰이고자 하는 삶이      

제대로 갈 수 있도록 지금처럼 걸으면 그만이라는 

단순한 영원성

도 얻었습니다.      

              

참.. 나에게 잘 살고 있다고 말해주는 또 다른 나도 만났습니다. 나에게 기특하다고, 장하다고, 잘해왔다고, 인정한다고, 지금처럼 가면 된다고, 그리 말해주는 또 다른 내가 곳곳에서 나를 기다렸습니다. 한국에서가 아니라 유럽에서 머물다 그제서야 날 만났는지, 아니면 여기서도 있었는데 거기서야 내가 알아본 것인지, 여하튼 만났습니다.


천운을 타고났구나를 느낀 시점은

한국에서 로마로 가는 비행기안에서부터였습니다. 유럽행 비행기를 타기 3일전과 2일전, 이틀을 응급실에서 보냈습니다. 5년만의 병원행이었지요. 다소 무거운 진단을 받은 상태여서 갈까말까를 살짝 망설일 법도 한데 오로지 직진밖에 모르는 성격탓에 혹시나 싶은 대비책으로 진통제를 잔뜩 챙겨들고 그냥 정해진대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가끔 살짝 열이 올라 심장이 쪼그라들기도 했지만 왠걸. 13시간의 비행 내내 글쓰고 책읽고에 빠져서... 세상에 어쩌면 그렇게 글이 잘 써지던지.. 


인터넷도 공간이동도 그 무엇도 불가능한 작은 좌석에 앉혀진 구속이 저의 정신에 완벽한 자유를 주었습니다. 13시간동안 자지도 않고 주는대로 다 먹고 와인까지 3-4잔 마시면서 내 안에서 비집고 나오려 다투는 글들을 써주느라 제 손가락이 고생 좀 했으니... 마치 그 공간은 나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듯 그렇게 뭐에 홀려서 시작부터 느낌이 아주 좋았고 참으로 운이 좋구나. 정도로 그 예감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여행내내 저는 천운이구나.를 매번 확신했습니다. 자정경에 일어나 11층 선상에 나가 검은 바다를 바라보고 5층 카페에서 해가 뜰때까지 글을 썼던 나로서는 이를 눈으로 매일 목격했습니다. 그렇게 커다란 크루즈가 흔들릴 정도로 비가 오고 파도가 거셌지만 오전 7시경부터는 차차 먹구름이 걷히며 태양이 자신을 드러내는 겁니다. 처음 몇 번은 우산을 챙겨나갈까.. 싶다가도 3일이 지났을 때부터는 ‘오늘도 쨍쨍할걸’이라는 말도 안되는 확신이 제게서 솟아나는 겁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근거가 있었다니까요. 

저는 매일 새벽 5년간 태양마중을 나갔습니다. 

이런 정성에 태양은 5년만에 외출한 제게 자신을 드러내며 응답해주는거죠. 

‘내가 널 알아’하면서요.     

그렇게 이번엔 자신이 저를 마중나온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거창한 발견입니까?     

이 얼마나 거대한 몸짓입니까?     

이 얼마나 거룩한 관계입니까?   

......  


머리로 이해되는 인과만이 진정한 타당일까요?

천만에요. 이 세상에는 예상되는 일 외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수두룩합니다.

머리가 아닌, 느낌으로 받아들여지는 인과, 비합리가 어쩌면 더 신비롭고 신성한 타당이 아닐까요?


천(天)운(運).      

하늘이 날 알아보다니....               

누군가가 이 말을 듣고 비약이라고, 또라이라고, 그저 우연이라고, 이래저래 말한들 저는 무시하겠습니다. 가슴 속에서 깊게 느껴지는 영혼의 신호에 저는 더 믿음이 가니까요. 의지가 되니까요. 이렇게까지 깊이있게 반갑고 눈물나도록 환대받는 기분은 처음이었으니까요. 괴테(주2)의 말대로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 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싶고.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길 바라며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요... 


넷째. 어딜 가나 책과 노트북을 어깨에 매고 다니는 나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그랬습니다. 책장에서 손가는대로 꺼내어 들고 간 책 4권. 특히 볼테르는 내가 여행지에서 느껴야 할 것, 깨지고 깨우쳐야 할 것들을 마치 준비해놓은 듯 나에게 들이밀었습니다.      

내가 느끼는 불행에 대해..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해..      

그리고 거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의 현실에 대해...      


왜 내가 볼테르를 가져갔는지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얇았고, 읽었던 책이지만 기억에 없었고, 그렇게 손이 가서 가방에 넣은 책이었는데 정교하게 나의 시선과 관점과 걷는 보폭에 일치하며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특별한 기적은 

마지막 날 이뤄졌습니다. 

바티칸공화국으로 들어가 성베드로성당에 발을 디디는 순간. 나는 무릎을 꿇을 뻔했습니다. (실제 꿇지는 않았습니다. 관광객에 치여서 꿇을 수도 없었고.) 이 때의 강렬하게 뛰던 가슴의 진동이 아직도 남은 듯 합니다. 말도 안되는 광경이 내 앞에서 벌어진 것이지요.

'교황 집전미사'중이었습니다.               

나는 결혼 후 20여년이 넘도록 냉담자였습니다. 종교를 너머 신을 냉정하게 외면했었고 형이상학을 거부했었습니다. 종교를 핑계삼아 뭔가를 바라는 비굴함도 있는 듯 하여 상당히 거리를 두었었는데 3-4달 전 새벽에 이번주부터 가야겠다는 갑자기 스치는 강렬한 이끌림으로 다시 주일미사를 나가게 되었고 매주 빠뜨리지 않고 갑니다. 


주모경을 외울 때는 나도 모르는 감정에 눈물이 흐르고 '기도‘란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뤄졌음을, 그리고 앞으로 이뤄질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참의미를 가슴으로 느낀 순간부터 나의 기도의 방향은 오로지 감사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겨우 3-4달, 방황하던 내가 그 분의 품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걸어가고 있는데 세상에, 교황님집전 주일미사라니요!!! 이런 말도 안되는 기적이 내 앞에 펼쳐진 것이었습니다. 시간과 장소감각이 완전히 소멸된 상태로 다니던 저였기에(그저 보여지는대로, 닿는대로 느끼는 것에 집중하는 여행이었거든요)   


내 입에선      

'저에게 왜 이러시는 겁니까?'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아.. 당신... 도대체 당신은 날 어디로 데려가시려고 이리 큰 것을 제 앞에 들이미십니까?'라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성 베드로성당을 둘러 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미사가 시작되었기에 성전으로 들어가진 못했지만 거대모니터의 제일 앞까지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나는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아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오후에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지만, 그 전에 콜롯세움도 트래비분수도 봐야 하지만 나는 미사를 끝까지 참여하는 게 가장 우선이었기에 그저 두 손모아 바라보고 그대로 나를 맡긴 것입니다. 기적을 경험한 순간이었다고 해도 저에게 과언이 결코 아닙니다.               


기적같은 우연을 필연으로 여기는 나의 사고방식에 나는 의심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이유를 지니고 내 인생으로 개입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형이상학은 형이하학에서 실현되고 형이하학에서 '우연'처럼 비춰지는 것이 형이상학에서 필연으로 해석되는 것을 나는 오히려 더 신뢰합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이는 내가 해석할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밝혀둡니다. 


나보다 더 큰 존재가 나에게 내미는 현상을 내 작은 머리가 어찌 이를 우연과 필연, 둘 중 하나로 재단하겠습니까? 나는 그저 내게로 오는 모든 이유 앞에서 나름의 추론을 거부하고 그것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그저 받아들이고 묵묵히 따르는 것이 전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감히 나는 이번여행의 결론을 

'신을 만났다'

로 표현하려 합니다. 이 말은 종교적인 얘기가 아닙니다. 그저 나를 움직이는, 우연에 우연을 거듭 발생시키는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거론입니다.   


계획도 의도도 없이 유럽을 가게 된 순종의 기적.     

5년만에 응급실행으로 2일을 보내고 다음 날 떠난 여행이지만 먹고 자는 것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서 단 한순간도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던 육신의 기적.     

내가 걸어왔던 시간들 안에 고통이라 여기는 불행들이 감히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그렇게 지금의 내가 단단해져 가고 있음을 매 여행지마다에서 느끼게 해준 깨달음의 기적.     

매일 밤새 쏟아지는 비가 그치고 아침이면 태양이 나를 마중나와주는 보상의 기적.     

아무런 기대없이 발을 들인 성베드로 성당에서 교황님집전미사를 드린 영접의 기적.     

며칠째 이번 여행을 활자로 보여주며 나의 동반자가 되어준 볼테르(주1)와 함께 한 인연의 기적.     

여행의 느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해 쩔쩔매는 날 대신해 한문장을 보여준 괴테의 글을 만난 공감의 기적.  


이 모든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어찌 기적이 아니라고, 어찌 천운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천운을 타고난 나를 내가 감히 소홀하게 여겨서야 되겠습니까?

가슴이 터질듯했던 나의 경험을 별 것 아닌 그저 우연이라 취급해서야 되겠습니까?

영혼이 나를 보호해주고 정신의 맑은 기후를 유지시켜주는 자연의 혜택을 나몰라라 해서야 되겠습니까?     


이러한 모든 필연들을 내가 만든 것입니까?      

여행을 가는 것부터 무엇을 보고 어디로 가서 어떠한 느낌을 가질 지 나의 계획은 단 하나도 없었으며 설사 계획이 있었다 한들, 이 모든 현상들은 계획밖에서 벌어진 기적들이었으니 저의 머리속에서 벌어진 것들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하고 위대한 존재의 손길이 아니라면 이러한 일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요?     

내 이성으로는 불가능한 해석이며      

내 감성으로는 담기 버거운 난생 처음의 느낌이며     

내 영혼의 바지런함이 내게 열매를 안겨주는     

그런.... 안정된 충만감...      


없었는데 채워지고     

채웠는데 비워지는.     

모순의 영원성...               

이는 신이 내게 자신을 보여주신 것이라 여깁니다.     


내가 다니는 모든 곳에 사람을 홀리는 정령(精靈)이 떠돌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내 가슴속에 이미 그 정령이 자리잡았는지, 모든 곳, 모든 시간이 천상에서의 시간같았습니다. '내가 여기 있다. 나는 널 보호하고, 너의 길을 마련해 두었으니 너는 그대로 그 길을 걸으면 된다... 지금처럼.'이라 말하는 소리를 온가슴으로 안고 왔으니 어찌 내가 여행지에서 무엇을 보고 사고 먹고 왔다는 것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둘 수 있겠습니까?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에서 펼쳐든 괴테의 책이 나를 대변해주어 나는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지금 내가 이런 심정인데... 내 감정과 내 안을 가득 메운 것들의 정체가 뭔지 모르지만 뭔가가 차오르고 어딘가로 가고 있고 무언가가 날 이끄는 느낌만 가득한데.. 이를 어찌 표현해야 할지 나는 모르는데 괴테의 힘을 빌어 다시 한번 표현해 봅니다.                              


자신의 모습을 따라 우리를 창조하신 전능한 분의 존재와 우리를 영원한 환희속에 떠돌게 하면서, 우리를 떠받들어주고 있는 절대 자비하신 분의 입김을 느낀다. 그럴 때면, 벗이여, 내 두 눈의 언저리에는 황혼이 서리고 나를 에워싼 세계와 하늘은 마치 그리운 애인의 그림자처럼 완전히 내 영혼 속에서 고이 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나는 그리움에 못 이겨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아아, 이렇게 벅차고, 이다지도 뜨겁게 마음 속에 달아오르는 감정을 재현할 수 없을까? 

종이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그대의 영혼이 무한한 신의 거울인 것처럼, 

종이를 그대 영혼의 거울로 삼을 수 없을까?'     

나의 벗이여, 그러나 나는 그 생각에 억눌려서 쓰러져버린다.

이런 현상의 장엄한 힘에 압도당하고 마는 것이다(주2).     


인간의 기억력이란 형편없음을 나는 다시 느낍니다.

이제 겨우 4달이 지났을 뿐인데 마치 오래전 일처럼, 마치 남의 일처럼 저는 이렇게 귀했던 10일간 내게 준 신성한 선물들을 벌써 잊고 있나 봅니다. 그렇게 많이 내뿜었던 버블들과 내 심장을 뛰게 했던 열정과 감동, 그리고 나에게 깨우침을 주었던 그 영혼의 손길들을 지금 나는 나의 삶에서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괴테의 말대로 나 역시 '나의 가슴에는 아직도 많은 힘들이 남아있고(주2)' 나는 그것을 어디에 써야 할지도 알게 되었고 약간이라도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오히려 불안해지는 마음을 달래려 뭐라도 찾아 해내야 하는 나의 천성에 걸맞게 내 가슴속에서 내게 미련두고 남아있는 이 많은 힘들과 내 머리속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이 많은 아이디어들에게 나는 더 세차게 손길을 내밀어야 함을 느낍니다. 나의 영혼이 나의 머리와 가슴에 이리도 강렬하고 커다란 손길을 내미는데 내 섬세함과 치밀함의 모순이 혹여 이 손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너무 커서 내 감각이 미처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나를 더 조심스럽고 진지하고 섬세하게 대해보려 합니다.


이렇게 다시 유럽여행의 일기를 적어보길 참 잘했습니다. 하지만 나에게서 멀어지려는 당시의 기억과 기억에서 샘솟는 감동, 감사의 매듭을 내 삶에 더 조여야할 필요를 느낍니다. 나 홀로 유럽 매거진은 이것으로 종료합니다. 함께 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여행지의 느낌을 실천하며 더 쓰임되는 인생으로 나의 삶을 살아내야겠습니다. 다음주부터 매주 금요일부터 발행되는 글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주1> 볼테르, 미크로메가스,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2010, 문학동네

주2>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999, 민음사


[지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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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 연재]

월 5:00a.m. [지담단상-깊게 보니 보이고 오래 보니 알게 된 것]

화 5:00a.m. ['부'의 사유와 실천]

수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 [MZ세대에게 남기는 '엄마의 유산']

금 5:00a.m. [나는 나부터 키웁니다!]

토 5:00a.m. [이기론 -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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