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취미

4장. 진심을 다했지만, 남은 게 없을 때

by 미나리즘
진심이었다

나는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걸 좋아한다. 아니, 그 과정의 시간을 좋아한다고 하는 게 맞겠다. 머리핀을 만들고, 슈링클스로 키링을 만들고, 점토를 조물딱 거리는 시간. 잘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 고요한 몰입의 순간이 좋다. 손이 바빠지면 마음이 잠잠해졌다. 그렇게 취미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그중 유독 마음 한켠에 걸리는 취미가 하나 있다. 레진아트. 맑고 투명한 액체 안에 반짝이는 조각들을 가두어 굳히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은 우주가 손안에 생겨났다. 처음엔 정말 예뻤다. 설레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굳은 후에는 작은 보석을 꺼내듯 조심스레 껍질을 벗기곤(탈형) 했다. 한동안 영롱한 레진아트의 세계 속에서 행복해했다.


"이건 예쁜 쓰레기야!"


하지만 그 반짝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완성된 작품들을 쳐다보다가, 가만히 한숨을 쉬고는 서랍 깊숙이 밀어넣었다. 그 안에 담긴 건 반짝임이 아니라 애매함이었다. 너무 예뻐서 버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크게 실용성도 없었다. 남 주기도 애매하고, 폐기하기는 더 어렵고... 환경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니 쉽게 손이 가질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예쁜 쓰레기’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나는 그걸 조용히 접었다. 시간과 마음을 들였지만, 남은 건 결국 죄책감 인 것 같았다. 반짝이던 건 사라지고, 나는 더 이상 레진 작품을 만들지 않았다. 망한 취미…


아무 쓸모 없지만 한때 반짝였던 감정들.
그건 어쩌면 옛 사랑과 닮아 있었다.


그 즈음, 문득 오래전에 스쳐간 '사랑들'이 떠올랐다. 처음엔 참 눈부셨다. 아무것도 아닌 대화에 웃음이 나고, 그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들이 설렜다. 하지만 그리 오래 가진 못하고 끝이 났다. 몇 번의 연애가 있었지만, 서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이 달랐고 그 다름은 끝내 우리를 이어주지 못했다. 결론적으로 '망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시절을 후회하진 않는다. 그때의 나는 진심이었으니까.






우리는 종종 사랑이나 취미조차 성과로 판단하려 든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만큼 열심히 시간을 쏟았으면 결과가 있어야 하지 않아?"

취미란, 실패해도 괜찮은 영역이다. 잘하지 못한다고 해서, 뭔가가 남지 않았다고 해서 그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건 아니다. 내가 만든 것이 서툴고 어설플지라도, 그 몰입의 시간은 내 안에 깊이 남았다. 예쁜 쓰레기였을지 모른다. 끝이 시작만큼 아름답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 시간을 통해 나를 돌보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 하얀 종의 위에 선을 그리고, 조용히 무언가를 붙이고, 꿰매고, 조립한다. 쓸모 없을지 몰라도, 그 안에는 나의 하루와 감정이 고요히 배어 있다.


망한 취미가 결국은 나를 만들었다. 그 진심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사라졌지만 낭비되지 않은 마음. 끝났지만 충분히 살아 있었던 시간. 사람도, 취미도, 오래 남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순간 분명히 빛났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몰입을 쌓아간다. 결과 없이 충분한, 진심 하나로 가득 찰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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