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지기로 했다

12장. 디지털 없이 한 달 살아보기

by 미나리즘


요즘 우리는,
'심심하다'는 말이 사라진 세상에서 살고 있다.


잠깐의 정적이 찾아오면 자연스럽게 손이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며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는다. 지루함을 피하는 능력은 늘었지만, 그만큼 진짜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줄어든 듯하다. 나조차도 심심한 걸 잊고 지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심심한 순간이 오기도 전에 그 짧은 공백조차 견디지 못하고 자꾸만 도파민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셈이다.


올여름 여행지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리스의 햇살 아래 한 달을 살아볼까, 아니면 돌로미티의 능선을 따라 걷다 몰타의 바다로 이어볼까. 남편과 나는 여러 후보를 놓고 고민했다. 아이를 생각하면 영어 연수도 가능하고 바닷가에서 마음껏 수영할 수 있는 몰타나 그리스가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다.


하지만 오랜 대화 끝, 자연스럽게 입에서 나온 나라 이름은, 카자흐스탄. 우리 둘 다 요즘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자꾸 마음이 그곳으로 향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좋을 것 같은’ 여행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 부부가 가장 간절히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단순히 목적지만 다른 게 아니다. 평소 같았으면 최소한의 짐만 꾸리고, 영화 몇 편 내려받고, 정보는 블로그 후기와 유튜브 영상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은 도시를 벗어나면 인터넷이 잘 안 터지지 않고, 영어도 거의 통하지 않는단다. 아이에게도 미리 이야기했다.


“이번 여행은 지금까지와 조금 다를 거야.
우리가 직접 부딪히고 알아가야 해.”
“응, 괜찮아. 엄마 아빠랑 가잖아.”


아이의 짧은 대답에 마음이 놓이면서도 묘하게 울컥했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아주 오래된 감각을 되살려보려 한다. 무료한 시간을 회복하고, 인터넷 없는 공간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시간. 그래서 평소엔 짐이 될까 가져가지 않던 어반드로잉 준비물을 챙기고, 책도 넣는다. 드라마나 영화 대신, 펜을 들고 풍경을 그려보고, 책을 펼치고 조용히 읽는 순간을 아이와 함께 만들고 싶다. 이건 우리에게 주는, 작고 낯선 도전이다. 인터넷 세상과의 연결이 끊긴 그곳에서, 어떤 풍경과 감정을 만나게 될지 스스로도 궁금하다.


우리는 누구나 인터넷 속에서 살아간다. 일도, 놀이도, 인간 관계마저도 인터넷을 통해 이어지는 시대다. 그 안에 머무는 시간은 분명 편리하지만, 때때로는 그 바깥으로 한 발 물러서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번 여행은 그걸 실천하는 시간이다. 오래된 방식으로, 느린 감각으로, 다시 여행해보려 한다.


인터넷 없는 카자흐스탄의 초원과 호숫가에서, 우리는 진짜 얼굴을 마주보고, 진짜 대화를 나누고, 진짜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다. 불편하겠지만 그래서 더 기억에 남을 이 여름이, 디지털 세상에 익숙한 우리 가족에게 작은 전환점이 되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토요일이 있다」는 제목처럼, 저에게도 그런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 연재를 시작했고, 열두 편의 글을 쓰는 동안 제 나름의 토요일을 여러 번 만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시간들이 더는 글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떻게든 쥐어짜내면 몇 편쯤 더 이어갈 수는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는 잠시 멈추려 합니다.


대신, 10살 아이와 함께 낯선 땅에서 보내는 한 달의 기록을 시작하려 해요. 인터넷이 닿지 않는 곳에서 진짜 대화를 나누고, 심심한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여정을 써 내려가려 합니다. 그 안에서 다시 쓰고 싶은 말들이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자라나길 기대합니다.

이전 11화기부하는 아이 : 첫 마음을 건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