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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 나라에선 돈 없으면 똥도 못 싸!"

국경의 밤, 걸어서 키르기스스탄으로

by 미나리즘


"다시는 부모님과 여행하지 않겠다."


몇 해 전, 나는 굳게 다짐했었다. 그런데 그 다짐이 무너졌다. 이번 여행은 다섯 명으로 시작해 세 명으로 끝이 난다. 알마티에서 시작해 부모님과 함께 일주일간 카자흐스탄 곳곳을 여행한 뒤, 부모님을 한국으로 배웅하고 나면 우리 세 식구만의 본격적인 배낭여행 시작된다.


카자흐스탄 1주일 / 키르기스스탄 3주일, 다섯에서 셋으로 이어지는 한 달 여정


아이가 막 걷기 시작할 때(두 돌)부터 우리는 매년 삼대가 함께하는 캠핑카 여행을 떠났다. 좁은 캠핑카 안에서 한 달씩 부대끼며 캐나다와 서유럽, 동유럽을 달린 여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만큼 값진 추억을 남겨주었다. 그러나 네 번째 장기 여행지였던 뉴질랜드에서 결국 갈등이 터지고 말았다. 서로 다른 생활 리듬, 쌓여가는 피로와 고집은 사소한 문제를 크게 키웠고,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진심으로 다짐했었다. 다시는 부모님과 장기간 여행을 함께하지 않겠다고.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마음속에 더 크게 남은 것은 앙금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 세 모녀가 쪼그리고 앉아 눈도 보이지 않게 환하게 웃던 얼굴, 부모님 두 분이 아이처럼 그네를 타며 웃던 모습, 손녀에게 예쁜 풍경을 건네던 할머니의 눈길, 힘겨운 트레킹 끝에 나눈 한 모금의 시원한 물맛... 갈등은 날카로웠지만 세월 속에 조금은 누그러졌고, 끝내 지워지지 않은 것은 함께 했던 온기였다.


세월이 지운 건 갈등이었고, 끝내 남은 건 함께했던 온기였다.


그래서 이번 여름, 우리는 다시 '함께' 길을 나섰다. 부모님께는 손녀와 함께하는 또 한 번의 시간을, 아이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눌 소중한 기억을 선물하고 싶었다. 떠남과 남음이 교차하는 한 달, 다섯 명으로 시작해 세 명으로 끝나는 여정의 무게를 우리 부부는 기꺼이 다시 짊어졌다.


하지만

그 무게는 여행 내내 우릴 시험에 들게 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은 여행을 마주하는 나의 태도 자체를 바꾸게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계획대로 움직이기보다, 그때그때 흐르는 순간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멈춰 선 순간에 바람의 결을 느끼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백 속에서 여행의 깊이를 찾곤 한다. 그러나 부모님과 함께할 때만큼은 그런 여유를 잃고 만다. 발걸음을 맞추고, 피로와 불편을 살피며, 끊임없이 조율하는 또 다른 내가 된다.


부모님과 함께한 일주일은 분명 따뜻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딸인 나조차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는데, 사위인 남편의 입장은 또 어땠으랴. 시종일관 애쓰는 그의 얼굴은 종종 지쳐 보였고, 그 무게는 오죽했을까... 싶다.

부모님과 함께한 일주일이 막을 내렸다. 여행은 큰 다툼 없이 잘 마쳤고, 새로운 추억도 남았지만 그만큼 조율을 위한 긴장 속에 지낼 수밖에 없었다. 출국장 앞에서 부모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는 순간, 이별의 허전함 속 묘한 해방감이 고개를 들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 지나가버렸다는 아쉬움과 이제 진짜 우리, 아니 나의 여행이 시작된다는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버스에 에어컨이 없다길래 손부채를 하나 가져갔는데, 하필 문구가.. ^^;


여행의 공기가 달라졌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곧장 알마티의 사이란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흘렀다. 부모님과 함께였을 때는 시간표와 동선을 촘촘히 계산하며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오늘 밤 계획은 단 하나, 야간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는 일뿐이었다. (내일 묵을 숙소조차 정하지 않았다.) 촘촘한 계획이 없다는 것, 여행의 흐름이 달라졌다는 뜻이다. 다행히 야간 버스 출발 전, 알맞은 시간에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빵 몇 개와 물, 음료수 등을 챙길 수 있었다.


다섯 명이 함께할 때의 분주한 호흡이 옅어지고, 세 명만 남은 자리에 여백이 스며들었다. 단지 인원이 줄었을 뿐인데, 공기의 결마저 달라진 듯했다. 다섯 명이 맞추던 촘촘한 리듬은 사라지고, 우리 셋의 느릿한 발걸음이 이번 여행의 새로운 호흡을 만들어냈다.


적응력 만렙의 열 살 배낭여행자


"엄마, 이 나라에선 돈 없으면 똥도 못 싸!"


밤 10시 15분,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키르기스스탄 촐폰아타로 향하는 야간버스가 출발했다. 대부분의 여행자는 비슈케크를 거쳐 이동하지만, 성수기에만 운행되는 이 직행 버스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우리는 그 길을 택했다. 8월 9일, 에어컨이 없는 버스 안. 덥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천장의 작은 창문 틈으로 스치듯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아이는 내 무릎에 기대 뒤척이다 잠이 들었다.


어느새 나도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새벽 두 시가 조금 넘어 버스 안의 불빛이 켜지고, 차 안이 술렁였다. 느낌상 국경에 도착한 듯했지만, 이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멀뚱히 눈만 껌뻑이는 있던 우리에게 앞자리 대학생이 영어로 안내해 주었다. "내려서 출국 수속하고, 다른 버스를 타야 해요.” 끔뻑끔뻑. “음... 그냥 저를 잘 따라오세요." 끄덕끄덕. 우리는 그녀를 뒤따랐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자다 깬 몸으로 힘들 법도 한데, 본인의 주황색 배낭까지 야무지게 챙기고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우와! 걸어서 다른 나라로 가는 거야?" 그 호기심에 가득한 눈동자를 보며, 이 아이는 이미 세상을 품을 준비가 되었음이 느껴졌다.


카자흐스탄 - 키르기스스탄 국경의 밤, 걸어서 국경 넘기


국경 앞 화장실에서 잠시 줄을 섰다. 입구에는 돈 받는 사람이 앉아 있었고, 아이는 익숙하다는 듯 100 텡게를 내밀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화장실에서 돈을 받아?"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엄마, 이 나라에서는 돈 없으면 똥도 못 싸!"


그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국경을 제대로 넘을 수 있을까 긴장했던 몸이 한결 풀렸다. 길 위에서 불쑥 터지는 이 가벼운 웃음이 날 다시 길 위로 불러낸다. 농담 같은 아이의 말은 낯선 풍경에 부딪히며 당연함의 경계를 깨뜨리고 세계를 새롭게 배워가는 언어였다.


아이의 짧은 한 마디 속에 여행의 본질이 숨어있다.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 낯선 규칙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결국 웃음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먼 길을 다시 나선 이유였다. 국경을 넘는 새벽의 발걸음은 단순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익숙함을 뒤로하고 한 발 더 나아가는 경험이었다.


여행, 불편함을 감수하고 낯선 규칙을 받아들이며, 결국 웃음으로 넘기는 일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
낯선 규칙을 받아들이는 일,
그리고
결국 웃음으로 그것을 넘어서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이 먼 길을 다시 나선 이유였다.



바뀐 버스를 타고 두 시간 여를 더 달려 "촐폰아타!"라는 기사님의 외침에 우리는 짐을 챙겨 내려섰다. 분명 휴양 도시라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의외였다. 해변도, 호수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휑한 도로와 나지막한 건물들뿐이었다. 여기가 맞나 싶은 의문과 함께, 몸은 피곤했고, 머리는 멍했다. 나는 누구고, 여긴 어디인가.


분명 이식쿨 호수의 청량한 풍경을 기대했건만, 우리를 맞이한 건 텅 빈 공기와 막연한 낯섬이었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내 옆에 섰고, 남편은 배낭을 짊어진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는 분명 국경을 넘어왔지만, 진짜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는 아직 알 수 없는, 미지의 한가운데였다.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를 합니다.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 거예요. 사진은 최대한 현장 느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라봅니다.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중앙아시아 여행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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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