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떠나는 배낭여행이 간절했던 이유
아이와 부모가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10년이라는 생각을 늘 해왔다. (사실 12~13년쯤은 될 거라 여겼는데, 지금 보니 딱 10년이 맞는 듯 하다.) 아이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예뻤지만, 특히 네뎃 살 무렵의 모습이 가장 선명하다. 조그만 몸으로 뭐든 “내가 할래!”를 외치며 세상에 맞서던 그 시절. 당시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는 내게 친정 엄마가 말했다.
“딱 고만할 때가 제일 좋지. 더는 안 컸으면 좋겠다.”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휴, 얼른 커서 내 손 덜 타는 게 좋지”하고 웃어 넘겼었다. 아이는 하루하루 꽃처럼 예뻤지만, 동시에 그 꽃을 돌보는 일은 나의 온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일곱 살이 지나자, 아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몸이 크는 속도보다 마음이 자라는 속도가 더 빨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행? 당연히 엄마아빠랑 가지!” 하며 망설임 없이 따르던 아이가, 만 10세가 된 올해는 “엄마아빠랑 가는 거면 어디든 좋아!”라는 말 뒤에 조심스레 덧붙인다.
“그래도… 친구들이 보고 싶을 것 같아.”
그리고 그 말은 곧 사실이 되었다. 실제로 여행지에서 친구와 선생님이 그리워 눈물을 훔치던 순간이 있었으니... 아이와 함께 떠나는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냥 이어질 것만 같던 온전한 교감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건강하게 자라기 위한 당연한 순리라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 한켠 자꾸만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마음의 성장뿐 아니라 머지않아 몸의 변화도 다가오리라는 걸 알고 있다. 앞으로 찾아올 신체의 변화(생리 등)로 인해 한 달 이상의 여행이 아이에게 불편이 될 수도 있음을. 그래서 이번 여름이야말로 아이와 함께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나기 가장 적절한 때라 판단했다.
딸 아이, 라니는 또래보다 작은 편이다. 체중이 30kg도 채 되지 않지만, 자그마한 체구 속에 놀라울 만큼의 다부짐과 단단함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아이와 동행하는 여행이지만 큰 고민 없이 한 달간의 배낭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낭의 무게는 여행의 현실이다. 사진작가인 남편의 카메라 장비만 해도 20kg이 훌쩍 넘고(노트북 포함), 옷과 신발까지 더하면 30kg에 달한다. 그는 카메라 캐리어와 1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아이는 3~4kg 남짓한 배낭을 멘다. 내 몫으로 8kg짜리 배낭과 13kg의 캐리어까지 더해져 결국, 여행은 이런 묵직한 무게로 시작된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 있어서 짐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음의 무게'다. 그 무게는 한 달 먼저 중앙아시아로 떠난, 아는 동생 부부가 여행길에서 보내온 카톡에서 비롯되었다.
"언니! 여긴 지금까지 다녀온 곳들과는 완전히 달라요. 일단 말도 안 통하고, 여행 난이도 자체가 고난도예요. 아이랑 오는 여행자는 단 한 명도 못 봤어요. 여길 라니랑 같이 온다고요? 정말 대단하네요."
이미 세계여행을 경험했던 동생이 전해온 소식에, 애써 외면하고 있던 걱정과 두려움이 와르르 밀려왔다. 우리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열 살 아이와 함께...?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걱정의 뒤를 바짝 따라온 건 전혀 다른 감정이었다.
나는 여전히 길 위의 삶을 사랑하는구나.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자, 두려움은 이미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어디든 함께 떠났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느리게 걸었고, 이름 모를 숲길에서도 함께여서 두렵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언제까지나 ‘함께’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이번 여정이 더 간절하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이번 여행은 단순히 ‘낯선 곳에 가본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아이가 부모를 믿고, 동시에 자기 자신을 믿으며 걸어 들어가는 낯선 땅. 이 여정은 아이에게도, 그리고 부모인 우리에게도 도전에 가까운 모험이다. (사실 아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카자흐스탄, 알마티행 비행기는 밤 11시 무렵 공항에 도착했다. 낯선 언어가 가득한 공간, 문을 나서는 순간 가슴 깊숙이 스며든 알마티의 공기. 분명 '낯섦'의 냄새였다. 언어와 문화, 밤공기의 밀도까지 전부 생경했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오래간만에 멘 묵직한 가방이 어깨를 짓누름에, 비로소 길 위에 있다는 실감이 가슴을 채웠을 뿐.
낯선 땅 위에서, 열 살 라니의 여름이 시작됐다.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기쁘게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앞으로 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게요.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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