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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의 배낭여행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왜 그곳인가?

by 미나리즘


2012년 가을,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긴 여행을 떠났다. 10월에 출발해 이듬해 12월에 돌아오기까지, 꼬박 14개월. 지구별의 낯선 땅 위에 발을 디디며 걷고 또 걸었다.


"5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세계여행을 떠나자."


집으로 돌아오던 날, 우리는 다짐했다. 그 약속은 가볍지 않았고, 거짓도 아니었다. 그 여정을 통해 우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행복의 얼굴들을 마주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그런 시간을 또다시 함께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삶은 뜻대로 흐르지 않았다.


2020년, 아이가 다섯 살이던 해. 우리는 두 번째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마음이 들떠 있었다. 그런데... 전 세계를 멈춰 세운 '코로나'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 앞에, 우리도 결국 멈춰야 했다. 다시 떠날 날이 오길 바라며, 마음속 배낭을 잠시 내려놓았다.


2024년, 아이가 아홉 살이 되던 해. 떠날 준비는 끝났고, 마음도 이미 길 위에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한 걸음을 남겨두고,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가 우리를 다시 멈춰 세웠다. 폐암. '초기(1기여서 따로 항암은 하지 않았다.)'라는 말은 분명 위로였지만, 수술과 치료, 그리고 회복의 시간을 위해 이번에도 여행은 마음속 서랍에 넣어두었다.


아이가 두 돌을 지나고부터 우리는 매년 한 달 이상씩 함께 여행을 떠났다.


세계여행의 꿈은 두 번이나 무산됐지만, 그 사이에도 우리는 매년 길 위에 머물렀다. 아이가 두 살이던 해엔 캐나다에서 40일을 살았고, 세 살엔 서유럽을 캠핑카로 한 달간 달렸다. 이듬해엔 동유럽, 그 다음엔 뉴질랜드와 노르웨이. 팬데믹 시기엔 캠핑카로 100일간 조용히 전국을 떠돌았고, 또 그 다음 해엔 울릉도에서 50일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지난 10년간, 아이와 함께 해마다 한 달 이상씩 지구별 어딘가에서 살아보듯 여행했다. 낯선 곳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고, 마주보며 웃던 시간들. 아이는 지난 모든 여행을 ‘세계여행’이라 불렀고,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10살 딸과 함께, 다시 배낭을 멨다.


사실 남편은 자동차 여행을, 나는 배낭여행을 더 좋아한다. 지난 10년간은 어린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었기에, 캠핑카만큼 좋은 방식은 없다고 여겼고, 그래서 줄곧 바퀴 달린 집을 몰고 달렸다. 그런데 작년, 노르웨이 트롤퉁가에서 왕복 20km를 묵묵히 걸어낸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작은 배낭 하나쯤은 메어줄 수 있겠다.' 그날 이후, 나는 셋이 나란히 배낭을 메고 걷는 상상을 하곤 했다.


왕복 20km의 노르웨이 트롤퉁가 트레킹을 묵묵히 걸어낸 아이


상상이 현실이 된 건, 우연히 본 어느 사진(인스타그램 피드) 때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이 인스타그램 DM으로 풍경 하나를 보내왔다. 에메랄드빛 호수 위로 햇살이 반짝이고, 끝없이 이어진 초원 뒤 설산을 머금은 하늘까지... 낯설지만 매력적인 순간이 담긴 프레임 안에는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이 있었다. 낯선 언어와 풍경, 미지의 문화가 가득한 곳, 가 본 적 없는 땅. 그래서 더 끌렸다.


"가자! 이번엔 배낭을 메고!"


아이에게 조심스레 이번 여행 계획을 말했다. "이번엔 캠핑카가 아니라 배낭 메고 걷는 여행이야. 좀... 힘들 수도 있어." 조용히 눈을 반짝이던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엄마, 아빠랑 같이 가는 거잖아!" 아이의 한 마디에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그 다음부터 우리는 매일 상상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를 말을 타고 달릴거야. 쏟아지는 별 아래에서 잠이 들고, 진짜 양치기 소년을 만날 수 있어. 호수에서 하루 종일 수영을 하고, 이름 모를 들꽃과 별들이 말을 걸어 오겠지."


열 살된 딸과 함께, 각자의 배낭을 멘 세 사람


"아이와 함께해도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믿음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이번 여행은 나의 신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여정이리라.



열 살 딸과 함께 떠나는
한 달간의 중앙아시아 배낭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솔직히 말해, 이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어른도 선뜻 나서기 힘든 중앙아시아 배낭여행 길을, 열 살 아이와 함께 걸었다. 높은 고도, 거친 길, 낯선 언어와 처음 먹어보는 음식... 예기치 못한 상황들까지. 매일이 도전이었고, 매일이 이야기였다.


앞으로의 연재를 통해, 그 우여곡절 가득했던 하루하루를 생생히 나눌 예정이다. 아이와 함께 길 위에서 웃고 울었던 순간들, 예상 밖의 변수들과 그 안에서 자란 마음의 조각들을 솔직하게 담으려 한다.


함께 걸어가는 이 기록이, 누군가의 다음 발걸음에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함께 걸어가는 이 기록이, 누군가의 다음 발걸음에 작은 용기가 되길 바라며.


� 연재 안내
란 패밀리의 기록을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 그 마음에 힘을 얻어 조심스레 연재를 시작해봅니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여행기를 전해드릴게요. 글을 읽는 분들께 작은 온기를 더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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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