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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오늘 길바닥에서 자는거야?"

엉망진창으로 시작된 여행

by 미나리즘
촐폰아타!


기사 아저씨가 "촐폰아타(Cholpon-Ata)!"라고 외친 곳에 덩그러니 떨궈졌다. '호숫가 마을'이라 들었건만, 눈앞에 펼쳐진 건 흙먼지가 날리는 휑한 도로였다. 황량한 길 위에 서자 배낭은 더욱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고, 밤새 달려온 지친 몸은 바람 한 점에도 휘청였다. 그제야 오늘 묵을 숙소조차 예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엄마, 우리 오늘 길바닥에서 자는 거야?"


아이의 목소리가 생각을 끊었다. 분명 이 장면을 읽으며 '아이와 저렇게 무모한 여행을 해도 괜찮을까?'하고 걱정스레 고개를 젓는 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니의 얼굴에 걱정과 두려움은 없었다. 모든 것이 그저 여행의 일부라는 듯,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볼 뿐.


아이는 늘 그랬다. 예기치 못한 난관 앞에서도 불안 대신 '난 엄마아빠를 믿어!'하는 눈빛으로 웃어주곤 했다. 아이의 미소는 흔들리는 길 위에 선 우리 부부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길 위의 불안마저 여행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꼬마 여행자


사실 우리 부부에겐 이 상황이 낯설지 않다. 13년 전, 414일 동안 세계여행을 했을 때도 우리의 방식은 같았다. 세계여행의 첫날 숙소만 정해두고, 이후엔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현지에서 방을 구했다. 전체로 보면 현지에서 직접 방을 구한 경우가 80%, 미리 예약한 경우가 20%쯤 되는 듯하다. 우리에게는 이 방식이 더 자연스러운 여행의 리듬이었다.


다만,

그때(2012년)와 지금(2025년)은 확실히 달랐다.

당시 터미널 앞에는 '삐끼'라 불리는 사람들이 몰려와 자기네 숙소로 오라며 손짓하곤 했다. 버스 도착 시간에 맞춰 서 있던 그들의 호객은 여행 풍경의 일부였다. 그래서 이번에도 당연히 몇 명쯤은 있겠거니 했지만, 세월은 변해 있었다. 이제는 열에 아홉이 인터넷으로 예약하기 때문에 그들의 손짓은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는 여전히 발품을 믿는 여행자일 뿐인데, 세상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가 숙소를 미리 예약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첫째, 온라인 예약 사이트(부킹닷컴이나 아고다 등)를 통하면 같은 숙소라도 현장에서 직접 구하는 것보다 더 비싼 경우가 많다. 둘째, 사진과 실제가 달라 낭패를 본 경험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편은 매트리스 상태나 방 안의 환기 상태처럼 사진으로는 알 수 없는 부분에 예민한 편이라, 직접 확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경험상 축제 기간이나 연휴가 아닌 이상, 마을 전체의 숙소가 다 차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발품을 팔며 직접 눈으로 확인한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숙소를 선택하는 방식을 고집해왔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키르기스스탄, 촐폰아타의 첫 숙소


하지만 베테랑 여행자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거리엔 숙소 안내판 하나 보이지 않았고, 이른 새벽의 적막 속에 문을 두드려 열어줄 곳도 없어 보였다. 흙먼지가 가라앉은 고요한 길 위에서, 막막함이 스쳐갔다.


"방 있음" 푯말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 내외


사실 버스에서 내릴 때 아주머니 한 분이 푯말을 들고 서 있었지만, 읽을 수 없는 글자라 그냥 지나쳐 버렸다.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본, 국경을 넘는 버스에서 도움을 주었던 학생이 다가와 그 아주머니가 호스텔 홍보를 나온 거라며 소개해주었다. 세 명이 함께 잘 수 있는 방이 있다고 했다. 가격은 2,400솜. 한화로 약 38,000원.


평소 같았으면 주변을 더 둘러보고 다른 숙소와 비교했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주변에는 숙소라 부를 만한 건물 하나 보이지 않았고, 삐끼라 할 만한 사람도 그 아주머니 한 명뿐이었다. 무엇보다 야간 버스에서 내린 시간이 새벽 여섯 시 반. 이 시간에 발품을 팔아 숙소를 찾는다고 해도 당장 체크인을 허락해줄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아주머니를 따라나섰다.


과거의 여행 장면 속에 아이가 뿅 하고 나타난 듯 했던 키르기스스탄 여행


낡은 여관, 빛이 되어 등장한 아이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간 방엔 반쯤 꺼진 매트리스 위 촌스러운 꽃무늬 담요가 덮여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 80년대 여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풍경. 나는 '여기면 됐지' 싶었지만, 매트리스에 까다로운 남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었다. 피곤이 모든 걸 눌러버린 순간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깊이 잠든 사이, 커튼 사이로 스며든 햇살이 방 안을 적셨다. 눈을 뜨니, 그 빛 속에서 라니가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그 순간, 13년 전의 세계여행이 겹쳐졌다. 허름한 숙소의 낡은 침대 위로 시간을 넘어온 아이가 빛처럼 내려와 자리를 채운 듯했다. 마치 오래전 여행 속 장면에 딸아이가 미리 찾아온 것만 같아, 설명하기 힘든 여운이 오래 남았다.


다음 글에서는 이식쿨 호수를 찾아 헤매는 여정이 이어집니다.


예측할 수 없는 여정,
내일이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더 설렌다.
내일을 몰라서, 더 기대된다.


미지의 나라, 알 수 없는 땅. 키르기스스탄의 첫날은 초라한 숙소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시작됐지만, 단단한 아이의 미소는 그 모든 불안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서툴렀고 조금은 막막했지만, 셋이 함께였기에 든든했다.


길 위에서 마주하는 모든 순간이 곧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불완전한 하루가 오히려 더 깊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여정, 내일이 어떻게 다가올지 알 수 없기에—우린 더 설렌다. 내일을 몰라서, 더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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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목·토 - 일주일에 세 번, 중앙아시아 가족 배낭여행기를 전해드려요. 사진은 최대한 현장 느낌이 잘 나는 것으로 골라봅니다. 중앙아시아 여행이나 아이와 함께하는 배낭여행에 대해 어떤 의견이든 댓글 남겨주세요. 연재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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